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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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든과 대화할 때 ‘금기어’(?) 된 11월 미국 대선

트럼프와 토론 후 지지율 추락… 후보 교체론도
외신, 바이든의 위기를 ‘방 안의 코끼리’에 비유

미국 수도 워싱턴에서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창립 75주년 기념 정상회의가 열려 세계 각국 지도자가 모여든 가운데 단연 눈길을 끄는 인물은 주최자인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다. 지난달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과의 대선 후보 토론에서 실망스러운 모습을 보이며 지지율이 떨어진데다 여당인 민주당 일각에서 후보 교체론까지 나오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바이든 대통령과 만나는 외국 정상들은 오는 11월 열릴 미 대선에 관해선 함구로 일관하는 모습이다.

키어 스타머 신임 영국 총리(왼쪽)가 10일(현지시간) 미국 백악관을 방문해 조 바이든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하기 전 인사를 나누고 있다. UPI연합뉴스

10일(현지시간) AFP 통신에 따르면 바이든 대통령은 이날 나토 정상회의 참석차 미국을 찾은 키어 스타머 영국 총리를 백악관으로 초청해 따로 양자 정상회담을 가졌다. 지난 5일 취임한 스타머 총리가 바이든 대통령과 만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마침 이날 유로 2024 4강전에서 잉글랜드가 네덜란드를 2-1로 격파하고 결승에 진출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스타머 총리에게 축하의 뜻을 전하며 “영국의 승리는 전적으로 신임 총리 덕분”이라고 덕담을 건넸다. 또 “우리 두 나라 관계는 전 세계 동맹국들 가운데 최고”라며 영국을 미국의 핵심 동맹으로 치켜세웠다. 이에 스타머 총리도 러시아의 침략에 맞서 싸우는 우크라이나 군사지원 등 국제사회의 주요 현안에 있어 미국과 뜻을 함께할 것을 거듭 다짐했다.

 

미·영 정상회담 내용을 보도하며 AFP는 이례적으로 두 지도자의 나이를 언급했다. 1942년 11월 태어난 바이든 대통령은 현재 81세, 1962년 9월 태어난 스타머 총리는 61세로 두 사람은 꼭 스무 살 차이가 난다. 이는 최근 트럼프와의 토론에서 실수를 연발한 바이든 대통령을 두고 미국 사회에서 ‘고령 리스크’가 불거진 점을 의식한 것으로 풀이된다.

10일(현지시간) 미국 백악관에서 나토 회원국 정상들을 위한 만찬이 열린 가운데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오른쪽)이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왼쪽 두 번째)를 묘한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다. 바이든 왼쪽은 옌스 스톨텐베르그 나토 사무총장, 오른쪽은 영부인 질 바이든 여사. AFP연합뉴스

AFP는 또 두 정상이 오는 11월로 예정된 미 대선에 관해선 아무런 언급도 하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이 상황을 ‘방 안의 코끼리’(elephant in the room)라고 묘사했다. 방 안의 코끼리란 ‘모두가 잘못됐다는 것을 알면서도 먼저 그 말을 꺼낼 경우 초래될 위험이 두려워 그 누구도 먼저 말하지 않는 커다란 문제’를 의미한다. 대선 후보 토론회 이후 바이든 대통령이 재선에 실패할 것이란 위기감이 커지고 있으나 정작 아무도 바이든 대통령 면전에서 이같은 우려를 표명할 수 없는 난처한 상황을 꼬집은 셈이다.

 

트럼프는 대통령으로 일한 2017년 1월부터 2021년 1월까지 4년 내내 나토 및 동맹국들과 불화를 겪었다. 미국 우선주의에 사로잡힌 그는 동맹으로 경시하며 ‘안보를 미국에 의존하는 무임승차자들’이라고 매도했다. 심지어 “유럽 동맹국이 러시아의 공격을 받아도 미국은 돕지 않을 것”이라거나 “미국이 나토를 탈퇴할 수 있다”는 발언까지 했다. 이에 나토 회원국 상당수는 4개월 앞으로 다가온 미 대선에서 바이든 대통령이 이겨 연임하길 바라고 있다.

 

하지만 트럼프의 승리 가능성이 높게 점쳐지면서 나토 회원국들 사이에 이른바 ‘트럼프 리스크’에 대비하려는 움직임이 활발한 것도 사실이다. 외신들은 나토 정상회의에 참석한 각국 대표단이 백악관 모르게 트럼프 캠프와 접촉하려 애쓰고 있다고 소개했다. ‘유럽의 이단아’로 불리는 빅토르 오르반 헝가리 총리 같은 이들은 공개적으로 트럼프를 지지하고 나선 상황이다.


김태훈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