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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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 정복’ 인간의 예지력, 미래 디스토피아 해결할 열쇠

시간의 지배자/ 토머스 서든도프·조너선 레드쇼·애덤 벌리 저자/ 조은영 옮김/ 디플롯/ 2만5800원

 

과학자들은 지구의 수명을 약 46억년으로, 최초의 생물체인 원핵생물이 약 38억~41억년 전에 기원했을 것으로 추정한다. 지구 위 생명의 역사를 대략 40억년으로 상정하고 이를 다시 한 달로 축소해 본다면, 최초의 영장류는 불과 10시간 전(약 6000만년 전)에 진화했으며, 인류가 현생 침팬지와 마지막으로 조상을 공유하고 갈라진 시점은 고작 60분 전(약 600만년 전)이다. 특히 사피엔스는 불과 2분 전에 등장했다. 6초 전에 최초의 달력을, 2초 전에 최초의 컴퓨터를, 0.5초 전에 시계를 만들었다.

저자 중 한 명인 토머스 서든도프 퀸즐랜드대학교 심리학과 교수는 인간과 동물의 근본적인 격차가 예지력(foresight), 즉 미래를 상상하는 능력에서 기인한다는 것을 밝혀내며 ‘멘털 타임머신(mental time machine)’ 능력이 인간 진화의 핵심적인 원동력이었다고 제안했다.

토머스 서든도프·조너선 레드쇼·애덤 벌리 저자/ 조은영 옮김/ 디플롯/ 2만5800원

인간은 자신이 계획한 대로 미래를 설계하며 다가올 기회와 위험을 대비한다. 예지력은 인류에게 주어진 가장 강력한 도구로, 사피엔스가 예지력을 발휘하기 시작한 이래 지구는 놀라운 진보와 격변의 시대를 맞이하게 됐다.

예지력으로 인해 인간은 지구의 정복자라는 호명을 얻었지만, 끔찍한 비극과 잠재적 재앙도 발생했다. 더욱이 예지력은 자주 실패하고 종종 위험한 결과를 초래한다. 당장 눈앞의 이익에만 집중하는 데 예지력을 발휘하는 까닭에 공동의 이익과 다가올 세대의 미래가 위협받는다. 기후변화, 팬데믹, 대량 멸종과 생물 다양성 감소, 광범위한 탄소 배출, 삼림 파괴, 해양 산성화, 플라스틱 오염, 핵전쟁 위기 등. 지구는 지난 1만년 동안 홀로세라는 안정된 상태에 있었으나 인간의 활동으로 자연의 평형상태가 뒤흔들리며 마침내 인류세가 시작됐다. 인류세를 살아가는 사피엔스의 예측 가능한 타임라인은 무척 절망적이다. 인간의 예지력은 도리어 인류세의 재앙을 앞당기고 있는지도 모른다.

저자들은 인류세의 위기를 극복하는 것도 예지력, 즉 멘털 타임머신 능력에 달려 있다고 주장한다. 머지않은 미래에 닥칠지도 모를 공멸의 디스토피아를 내다보며 멘털 타임머신 능력을 어떻게 발휘해야 하는지에 관한 몇 가지 제안을 덧붙였다. 그리고 “기후변화, 핵전쟁, 생명공학적 팬데믹은 우리 스스로 초래 직면하게 된 위협의 몇 가지 예에 불과하다”고 단언하며 지금 우리는 “돌이킬 수 없는 반환” 앞에 서 있다는 것을 거듭 상기시킨다.


이복진 기자 bok@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