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차선을 바꾸고 적절한 시기에 방향 전환할 상황이 조성됐다.”
한국은행이 드디어 ‘금리 인하’ 깜빡이를 켰다. 2021년 8월 기준금리 인상과 함께 통화 긴축이 시작된 지 거의 3년 만에 이창용 한은 총재는 공식적으로 ‘금리 인하 검토’를 언급했다.
일찍부터 금리 인하 기대감을 키워온 시장 참여자들은 ‘10월 이후 인하’ 전망을 앞당기지 않았다. 하반기로 갈수록 가계부채 증가폭이 커지고 부동산 시장과 금융 불안이 커질 것이라는 우려 탓에 한은이 깜빡이를 켜고도 실제 차선을 변경하는 데는 시간이 꽤 걸릴 것으로 분석된다.
◆3년 만에 금리 인하 깜빡이 켠 한은
한은 금융통화위원회는 11일 만장일치로 기준금리를 연 3.50%로 유지하기로 하고 통화정책방향 결정문에 ‘기준금리 인하 시기 등을 검토해 나갈 것’이라는 표현을 처음 언급했다. 3개월 후 금리 전망에 대해서도 “인하 가능성을 열어둬야 한다”고 답한 금통위원이 5월 1명에서 이번에 2명으로 늘었다. 이 총재가 통화정책방향 회의 후 기자간담회에서 조건부 ‘차선 변경’을 언급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한은이 긴축 기조 전환을 모색하는 배경엔 물가 안정에 대한 자신감이 자리한다.
6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전년 동월 대비 2.4%, 근원물가는 2.2% 각각 상승하며 둔화 흐름을 이어갔다. 이 총재는 “다른 어느 나라와 비교해도 물가 안정이라는 측면에서는 우리가 많은 성과를 이뤘다”며 “물가만 놓고 보면 금리 인하를 논의할 분위기가 조성됐다”고 설명했다.
다만 시장의 앞선 기대에는 경계를 분명히 했다. 이 총재는 “대다수 금통위원은 물가와 금융안정을 고려할 때 시장의 금리 인하 기대가 다소 과도한 측면이 있다고 본다”며 “수도권 부동산 가격의 오르는 속도가 지난 6월과 7월 생각보다 빨라져서 유심히 보고 있다”고 경계했다.
◆“금리 인하 빠르면 10월, 올해 못할 수도”
전문가들은 대부분 미국 연방준비제도(연준·Fed)의 9월 기준금리 인하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한은이 이르면 10월에 동참할 것으로 내다봤다. 일각에선 아예 올해를 넘길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올해 열리는 금통위 회의는 8월과 10월, 11월 세 차례만 남았다.
윤여삼 메리츠증권 연구위원은 “최근 국고채 3년물 금리가 3.1%대까지 일시적으로 하락했던 것은 이달 금통위 소수의견에 ‘8월 금리 인하’가 있을 것이라는 가능성을 감안했던 것”이라며 “이번 금통위 결과로 당장 8월 인하는 쉽지 않다는 것이 확인됐다”고 설명했다.
이어 “9월에 있을 2단계 스트레스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실시 후 가계부채 증가 속도가 얼마나 잡힐 수 있을지 여부가 10월 금리 인하 실시의 주요한 가늠자”라며 “2분기 경제성장률(GDP)이 전분기 대비 마이너스가 나온다면 통화 완화 압박이 높아질 수 있다”고 전망했다.
김정식 연세대 명예교수(경제학부)는 “미 연준이 9월에 금리 인하를 하지 않고 연기하더라도 한은은 10월에 인하할 것”이라며 “미국은 여전히 경기 호황이지만 우리는 아직 침체를 벗어나지 못하고, 하반기로 갈수록 대출 연체율 상승 등 금융불안이 심화되는 탓에 더 미루기 힘들 것”이라고 분석했다.
KB증권 임재균 연구위원은 11월 인하를 전망하면서 “외환시장의 변동성을 높일 수 있는 11월 미 대선을 앞두고 한은이 10월에 금리 인하를 단행하기에는 조심스러울 것”이라고 말했다.
LG경영연구원 조영무 연구위원은 “미국은 3분기부터 한두 차례, 한국은 4분기에 한 번 또는 안 할 수도 있을 것”이라며 아직은 금리 인하 여건이 충분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2.4%로 낮아졌지만, 경제주체들에겐 여전히 부담스러운 수준이자 내수와 소비 둔화의 원인이기 때문이다. 또 한은이 올해 경제성장 전망을 상향한 만큼 경기 침체를 금리 인하의 명분으로 삼을 수도 없다는 것이다.
조 연구위원은 “높은 경상수지 흑자에도 원·달러 환율이 안 떨어지고, 가계부채는 계속 늘고 집값 불안감을 떨칠 수 없는 상황에서 금리를 낮출 수 있겠나”라고 반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