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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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급종합병원 중증 수술 수가 높이고… 일반병상 최대 15% 축소

정부, 9월부터 구조 전환 시범사업

일반환자보다 중증·응급환자 집중
중환자실 수가 등 보상 대폭 확대
병상당 전문의 기준 신설도 검토

“사직 처리 시한은 15일까지”
빅5, 전공의들에 ‘최후통첩’

상급종합병원이 일반 환자보다 중증·응급환자에 집중할 수 있도록 일반병상 수를 최대 15% 축소하는 방안이 추진된다. 정부는 대신 중증 수술 수가 등을 대폭 인상해 보상의 균형을 맞출 방침이다. 아울러 의사·환자의 수도권 쏠림을 막기 위해 ‘과잉 병상’ 지역은 더 이상 병상을 늘리지 않도록 지방자치단체에 협조를 요청했다.

 

정부는 11일 정부서울청사에서 5차 의료개혁특별위원회를 열고 9월부터 상급종합병원의 구조 전환 시범사업을 시행한다고 밝혔다.

서울 시내 한 대형병원에서 의료진이 이동하고 있다. 연합뉴스

우리나라는 의료기관을 상급종합병원, 종합병원, 병원, 의원으로 구분하고 상급 병원으로 갈수록 난도가 높고 생명이 위중한 환자를 전문적으로 진료하도록 하고 있다. 그러나 의료기관 종류별 역할과 기능을 뚜렷하게 구분하는 의료전달체계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 이 때문에 상급종합병원부터 의원까지 비슷한 환자군을 두고 경쟁하며 병상 등 시설과 진료량을 급속히 늘렸고, 고비용의 숙련된 인력을 채용하기보다 전공의들이 당직 등 장시간 근로를 도맡는 구조가 굳어졌다.

 

의료개혁특위는 이에 의료기관별 역할·기능을 구분하는 등 ‘혁신적 의료공급·이용체계 확립’을 우선 개혁과제로 정했다. 동네 병의원은 정확한 진단과 충분한 예방적 관리를, 지역 종합병원은 중등증 이하에 대한 적시 치료를, 상급종합병원은 중증·응급·희귀 질환에 대한 진료 역량을 갖추도록 할 방침이다. 환자가 질환·중증도에 맞는 적절한 의료기관을 찾을 수 있도록 기관 간 유기적인 협력 관계도 구축한다.

 

정부는 이를 위해 상급종합병원부터 단계적으로 과제를 추진할 방침이다. 우선 시범사업을 통해 상급종합병원의 중환자실 수가, 중증수술 수가 등 보상을 강화하고, 상급종합병원이 본래 기능에 적합한 진료에 집중하면 더 많은 보상을 받는 ‘성과 기반 보상체계’를 도입한다. 또 응급진료를 위해 의료진이 대기하는 데 따른 ‘당직 수가’도 최초로 도입할 계획이다. 정부는 상급종합병원이 지역 병상 수급 현황, 현행 병상 수, 중증 환자 진료실적 등을 고려해 병원별로 시범사업 기간(3년) 안에 일반병상의 5∼15%를 감축하도록 할 방침이다. 이를 통해 평시 39% 수준(현 비상진료체계 상황 45%)인 상급종합병원의 중증환자 비율 평균을 50% 이상으로 끌어올리는 게 목표다.

서울의 한 병원에서 환자가 이동하고 있다. 뉴스1

정부는 병상당 전문의 기준 신설도 검토한다. 전문의 수를 늘려 전공의들이 과중한 근로 대신 수련에 더 많은 비중을 둘 수 있도록 하기 위한 차원이다. 이번 시범사업에 참여하는 상급종합병원은 전공의 연속 근무 최대 시간을 36시간에서 30∼24시간으로 감축해야 한다. 정부는 전공의 주당 근무시간도 80시간에서 60시간으로 단계적으로 감축할 계획이다. 아울러 상급종합병원이라는 명칭 개편도 검토한다. ‘상급’ 등의 명칭이 병원 서열을 암시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이에 더해 의료사고에 따른 의료진과 환자 간 갈등을 최소화하기 위해 ‘의료사고 예방위원회’ 위원장을 병원장이 맡도록 하고, 의료분쟁 조정제도도 개선한다.

 

이와 별개로 정부는 의사와 환자들이 수도권 대형병원으로 몰리는 것을 막고, 지역의료 체계를 유지하기 위해 대형병원들의 분원 설립도 제고할 방침이다. 보건복지부는 병상이 ‘과잉 상태’인 지역에 2027년까지 더 병상을 늘리지 않는 방향으로 병상수급 계획 및 관리계획을 수립할 것을 8일 공문으로 요청했다고 밝혔다. 현재 ‘빅5’ 병원 등이 수도권 신도시 등에 설립 예정인 6600여병상 규모의 분원 건립에 제동이 걸릴지 주목된다.

 

우리나라 인구의 절반 이상이 수도권에 거주하고 있고 수도권 인구가 늘어나는 상황이라는 점에서 의료 수요에 따른 병상 증설이 불가피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복지부는 “병상 과잉으로 분석되는 지역을 대상으로 공문을 보낸 것으로, 특정 병원들에 병상을 짓지 말라고 한 것은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서울 시내 한 대형병원에서 의료진이 이동하고 있다. 연합뉴스

한편 서울대병원 등 빅5 병원은 이날 일제히 전공의들에게 15일까지 복귀·사직 여부를 확인해달라는 문자 메시지를 발송했다. 그러면서 “기한 내 미복귀하거나 응답이 없으신 경우에는 복귀 의사가 없는 것으로 알겠다”고 덧붙였다. 기한 내 의사 표시가 없으면 사직 처리하겠다는 취지다. 다만 사직서 수리 시점이 2월인지 6월인지를 놓고는 여전히 논란이 되고 있어, 진통이 빚어질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전국의과대학교수 비상대책위원회는 즉각 보도자료를 내고 “지역 필수의료를 살리겠다는 정부의 공언과는 반대로 전공의는 복귀하지 않을 것”이라며 “대학 병원과 한국 의료의 붕괴가 빨라지고 향후 2년 간의 의료 공백을 초래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정우·정진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