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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륙의 바다 청풍호 품은 제천 웰빙여행 [최현태 기자의 여행홀릭]

제천은 조선시대 3대 약령시 중 하나/산 많아 풍부한 한약재 쉽게 얻어 약선 음식 발달/몸과 마음 건강해지는 제천시 먹거리 브랜드는 ‘약채락’/케이블카 타고 비봉산 정산 오르면 청풍호반 파노라마로/배론성지 연못은 단풍나무 어우러지는 아름다운 수채화

 

배론성지 연못.

한우떡갈비 한 입 깨물자 입안 가득 흐르는 촉촉하고 고소한 육즙에 동공이 무한대로 확장된다. 씹을 것도 없이 눈 녹듯 녹아내리며 사라지는 부드러운 식감이라니. 여기에 신선한 더덕구이와 자연이 산천에서 키우는 다양한 나물까지. 역시 여행을 맛으로 기억하게 만드는 ‘약채락’ 메뉴답다. 무더위에 지친 몸 달래고 원기 북돋워 주는 청정 식재료가 가득한 제천으로 힐링 여행을 떠난다.

 

세계일보 여행면. 편집=김창환 기자
세계일보 여행면. 편집=김창환 기자

◆약이 되는 채소를 먹으니 즐겁지 아니한가

 

충북 제천시 인증맛집 100선에 뽑힌 용두대로 대보명가로 들어서자 약초 냄새가 진동한다. 테이블마다 보글보글 끓고 있는 메뉴는 제천약초쟁반. 냄새만 맡아도 벌써 건강해지는 기분이다. 커다란 신선로 가장자리에는 어수리, 능개승마, 참취, 산뽕잎, 능이·표고·목이버섯, 죽순이 가득 쌓였고 가운데 담긴 넉넉한 육수가 향긋한 냄새를 풍긴다. 주인장은 “육수는 제천에서 나는 황기, 오가피 등 약초 16가지를 달여 만들고 산나물은 모두 농약이 제로인 자연산”이라며 “산야초와 능이·송이·표고버섯, 연자육·구기자·은행·잣·호두 등 각종 견과류를 넣어 음양오행의 균형을 맞췄기에 몸의 면역성을 길러준다”고 귀띔한다. 따뜻한 육수에 얇게 썬 1등급 이상의 한우(양지, 사태, 우설)를 살짝 데친 뒤 다양한 버섯을 얹어 입안으로 밀어 넣자 제천의 산과 들이 입안으로 잔뜩 밀려들어 오는 기분이다. 한약재를 잔뜩 넣어 끓인 육수는 간이 심심하지만 깊은 맛이 우러나 숟가락을 놓을 수가 없다.

 

대보명가 제천약초쟁반.
대보명가 제천약초쟁반 한우.

제천약초밥상도 대보명가의 대표 메뉴. 재미있는 것은 남자밥과 여자밥이 따로 있다. 남자밥은 원기를 북돋워 주는 약재를 다려서 지었고 여자밥은 혈행을 도와주는 약재를 사용한다. 특히 우리 콩으로 빛은 메주로 장을 담그며 2년 이상 발효한 된장과 집 간장, 수시로 짜서 만드는 국내산 들깨 기름만 고집한다. 여기에 방풍, 당귀, 오가피, 민들레, 달맞이, 더덕, 도라지, 산뽕잎, 곰취, 참취 등의 산야초와 동물성 단백질을 분해해 주는 아가위, 매실, 오디 그리고 식물성 단백질을 분해해 주는 돌미나리, 칡, 민들레, 곤드레 등의 효소를 천연조미료로 사용한다니 몸이 건강해질 수밖에 없다. 갓 지은 솥밭에 짭짤하고 쫀득한 김 장아찌 한 장 얹어 먹으면 맛의 신세계가 펼쳐진다.

 

대보명가 제천약초밥상.

제천 음식에 한약재가 많이 사용되는 것은 제천이 조선시대 3대 약령시 중 하나였기 때문이다. 산이 많아 풍부한 한약재를 쉽게 얻을 수 있었기에 음식에 약초를 넣어 먹으면서 자연스레 약선 음식이 발달했다. 제천시는 이런 약재를 활용해 대표 먹거리 브랜드를 개발했는데 ‘약채락’으로 약이 되는 채소를 먹으니 즐겁다는 뜻을 담았다. 약채락은 4대 약념(藥念)을 사용해 풍부하고 건강한 제천의 맛을 느낄 수 있다. 4대 약념은 황기를 사용해 24시간 숙성한 약간장, 제천 대표 약채인 당귀를 사용해 만든 약고추장, 양채를 활용한 약초페스토, 뽕잎으로 만든 약초소금을 말한다. 특히 약초고추장은 지역에서 생산되는 뽕잎, 황기잎, 오가피잎과 황기, 당귀, 오가피 추출액을 넣어 특허를 얻었다. 향긋한 약초 향이 입안 가득 퍼지면 밥이 아닌 보약을 먹는 기분이 든다.

 

약채락 성현 떡갈비.
약채락 성현 불타는 밤.

제천시가 선정한 약채락 음식점은 16곳으로 그중 청풍면 청풍호로 약채락 성현에서는 한번 맛보면 푹 빠지고 마는 ‘인생 떡갈비’를 만난다. 기름기가 좔좔 흐르는 주먹만 한 떡갈비 위에 고소한 깨와 파채가 솔솔 뿌려져 보자마자 식욕을 자극한다. 육즙 가득한 떡갈비 한 점 떼어 입안에 넣자 세상을 다 가진 듯 행복감이 밀려오는 맛에 탄성이 저절로 나온다. 성현에는 메뉴판에는 없는 비밀 디저트가 있는데 바로 ‘불타는 밤’이다. 밤톨 통째로 담겨 나오는 밤을 손님 테이블에서 불을 붙여 구워 먹기에 이런 재미있는 이름이 붙었다.

 

청풍호반 케이블카.

◆비봉산 올라 ‘내륙의 바다’ 청풍호 즐겨볼까

 

건강한 식재료 덕분에 원기를 되찾고 청정자연을 즐기러 비봉산에 오른다. 청풍호 중앙에 우뚝 솟은 비봉산 정상은 해발 531m에 달하지만 땀 흘려 등산하는 고생을 할 필요가 없다. 청풍면 물태리에서 비봉산 정상까지 2.3㎞ 구간을 운행하는 청풍호반 케이블카를 타고 10여분 만에 오를 수 있기 때문이다. 덜컹거리며 정류장을 출발한 케이블카는 고도를 높일수록 아찔하고도 아름다운 청풍호 풍경을 하나하나 펼쳐낸다. 비봉산 정상에 섰다. 날이 맑아 소백산, 금수산, 신선봉, 계명산, 황학산, 월악산이 청풍호를 겹겹이 에워싼 비경이 장관이다. 사방이 푸른 청풍호로 둘러싸여 마치 섬 한가운데 선 것 같다. 달 포토존에 앉아 사진을 찍으면 아름다운 청풍호를 배경으로 잊을 수 없는 시간을 남긴다.

 

비봉산 정상 청풍호 풍경.
비봉산 정상 모멘텀 캡슐.

청풍호는 1985년 충주댐이 준공되면서 만들어진 호수. 제천에서는 청풍호, 충주에서는 충주호라 불리는 청풍호는 내륙의 바다로 불릴 정도로 담수량이 엄청나다. 면적 67.5㎢, 평균 수심 97.5m, 길이 464m, 저수량은 27억5000만t에 달한다. 비봉산은 봉황새가 알을 품고 있다가 먹이를 구하려고 비상하는 모습과 닮아 붙여진 이름. 케이블카는 일반 캐빈과 바닥이 투명한 강화 유리로 제작돼 좀 더 아찔하게 청풍호를 즐기는 크리스털 캐빈 등 두 종류를 이용할 수 있다.

 

비봉산 정상 포토존.

청풍호를 좀 더 가깝게 즐기려면 청풍호 유람선을 타면 된다. 청풍랜드 청풍나루터에서 출발하는 유람선은 뱃길로 52㎞, 왕복 1시간 20분 걸린다. 현재는 청풍랜드 선착장을 출발해 수경분수, 케이블카, 청풍문화재단지, 폭포바위, 삼형제바위, 월악산, 금수산을 쾌적하고 빠르게 볼 수 있는 청풍호 쾌속선이 운항 중이며 왕복 20분이 걸린다. 청풍호 유람선 운영사는 청풍랜드를 출발해 단양팔경 중 옥순봉과 구담봉을 경유하는 대형유람선을 건조 중이며 8~9월 중 운행을 시작할 계획이다.

 

배론성지 연못.

◆연못이 아름다운 배론성지의 고즈넉한 여름

 

제천시 봉양읍 배론성지는 종교와 관계없이 제천 여행에서 손꼽히는 곳이다. 가을이면 붉게 타는 단풍나무와 연못이 어우러지는 풍경이 한 폭의 아름다운 수채화를 선사하기 때문이다. 꼭 가을을 고집할 필요는 없다. 여름에도 붉은 적단풍과 청단풍이 조화롭게 어우러지는 모습을 즐길 수 있다.

 

은총의 성모마리아 기도학교를 지나면 바닥에 비스듬하게 누운 나무십자가에 예수가 매달린 로사리오길이 등장한다. 왼쪽 언덕에는 우리나라 두 번째 사제인 최양업 신부 기념성당이 서 있고 성당 뒤에 조성된 최양업 신부 조각공원 벽화 30여장에는 그의 일생이 새겨졌다. 배론성지 가운데로 흐르는 구학천에 놓인 양업교를 지나면 본격적인 배론성지 순례가 시작된다. 연못에 놓인 아치형 다리가 뷰포인트. 다리 위에 서면 주변의 울창한 단풍나무가 함께 담기는 낭만적인 사진을 얻을 수 있다.

 

황사영순교헌양탑.
황사영 토굴.

배론성지는 초기 한국천주교회 역사에서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니는 곳이다. ‘황사영 백서’가 쓰인 토굴이 바로 이곳에 있다. 1801년 2월 황사영은 박해를 피해 토굴에 은신하면서 순교자들의 죽음을 세계교회에 전하고 박해로 무너진 천주교회의 재건과 신앙의 자유를 얻기 위한 간곡한 서신을 비단에 썼다. 그는 이를 중국 베이징의 구베아 주교에게 보내려 했지만 발각돼 체포됐고 그해 11월 서울 서소문 밖에서 순교했다. 백서는 현재 교황청 선교민속박물관에 보관 중이다.

 

성 요셉 신학교.

우리나라의 천주교 성직자 양성을 위한 첫 신학교인 성 요셉 신학교가 있던 곳이기도 하다. 1855년 초 프랑스인 푸르티에, 프티니콜라 신부의 지도로 10여명이 라틴어, 철학, 신학 교육을 받았다. 최양업 신부의 묘도 이곳에 있다. 그는 1849년 4월 중국 상하이에서 사제 서품을 받았고 불같은 열정으로 교회를 위해 일하다가 과로로 1861년 6월 문경에서 숨을 거뒀다. 최양업신부헌양기념탑을 지나면 황사영 토굴과 성 요셉 신학교가 모습을 드러낸다. 산비탈 아래에 파놓은 토굴에는 사람 하나 겨우 들어갈 아주 작은 공간에 나무 테이블만 덩그러니 남아 천주교 박해의 역사를 전한다.


제천=글·사진 최현태 선임기자 htchoi@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