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으로부터 꼭 40년 전인 1984년 7월12일 미국 정치사에서 기념비적인 일이 일어났다. 지금과 마찬가지로 그때도 대선 선거운동이 한창이었다. 현직 대통령인 공화당 로널드 레이건 후보와 겨룰 민주당 월터 먼데일 후보가 러닝메이트로 여성 정치인 제럴딘 페라로(당시 49세)를 선택한 것이다. 미 역사상 최초로 여성이 주요 정당의 부통령 후보가 됐다. 1979년 뉴욕주(州)에서 처음 연방 하원의원에 당선된 페라로는 3선 의원으로 정치 경험이 풍부한 편은 아니었다. 선거 결과 페라로는 낙선하고 공화당 조지 W H 부시 후보가 부통령 연임에 성공했다. 페라로 탓이라기보다는 대선 후보 먼데일이 레이건에 비해 워낙 인기가 떨어졌던 게 원인이었다.
이후 24년이 흘러 2008년 다시 여성 부통령 후보가 출현했다. 민주당 버락 오바마 후보와 경합하던 공화당 존 매케인 후보가 알래스카 주지사이던 세라 페일린(당시 44세)을 러닝메이트로 내세운 것이다. 알래스카 밖에서는 무명에 가까운 인물이었으나 자녀를 5명이나 낳은 점, 낙태 반대 의사가 확고하다는 점 등 보수 유권자들에 호소할 만한 장점이 많았다. 그런데 선거전이 본격화하면서 대통령에 이은 ‘2인자’ 부통령을 맡기엔 자질이 부족하다는 비판론이 확산했다. 고령의 매케인(당시 72세)이 젊고 패기 넘치는 오바마를 상대하는 것도 역부족이었다. 매케인의 패배와 더불어 부통령의 꿈이 날아간 페일린은 그 뒤 정치권에서 완전히 잊힌 인물이 되었다.
미 역사상 첫 여성 부통령의 영예는 2020년 민주당 상원의원이던 카멀라 해리스(당시 56세)에게 돌아갔다. 그해 11월 대선에서 민주당 조 바이든 후보가 현직 대통령인 공화당 도널드 트럼프 후보를 간발의 차이로 누르며 러닝메이트인 해리스도 백악관 입성의 기쁨을 함께 누렸다. 여성 부통령 탄생이 최초인 만큼 새롭게 ‘세컨드젠틀맨’(Second Gentleman)이란 표현도 생겨났다. 그때까지 부통령의 부인을 대통령 부인 ‘퍼스트레이디’에 이은 ‘세컨드레이디’라고 불렀는데 부통령의 남편이 출현한 이상 용어도 바뀌어야 했다. 해리스는 당선 확정 후 “여성 부통령은 내가 처음이지만 마지막은 아닐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에서 여성 부통령이 앞으로 계속 배출될 것이란 덕담이었다.
그 해리스가 최초의 여성 부통령을 넘어 사상 첫 여성 대통령에까지 오를 수 있을까. 조 바이든 대통령이 잇단 말실수로 지지율이 추락하면서 여당인 민주당 내부에선 후보 교체론이 강력히 제기된다. 대선이 4개월도 채 안 남은 시점에 후보를 바꾼다면 답은 부통령인 해리스뿐이란 게 정치권은 물론 언론의 판단이다. 바이든의 경쟁자인 트럼프가 벌써부터 민주당 대선 후보가 해리스로 교체된다는 전제 아래 선거 전략을 다시 짜기 시작했다는 소문도 들려 온다. 바이든이 대선 레이스 완주 입장을 고수하는 한 해리스에게 기회가 올 가능성은 낮다. 그러나 바이든만 마음을 비우면 미국 최초의 여성 대통령이 탄생할 확률이 최소 50%는 된다. ‘2인자’로서 대통령 눈치를 봐야 하는 해리스의 솔직한 속내는 무엇일지 못내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