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한의 폭우가 세계를 강타하고 있다. 멀리 갈 것도 없이 근래 우리나라 여름이 산증인이다. 여름 장맛비가 질서 있게 온다는 상식은 옛말. ‘역대급 폭우’ ‘물 폭탄’ ‘물벼락’ ‘폭포 비’ ‘극한 호우’ ‘집중 호우’ ‘국지성 폭우’ ‘핵폭탄급 비’ 같은 조어가 비정상적인 강우를 대변하려고 해도 폭우의 난폭성을 전달하기에는 역부족이다. 무슨 수로 전답이 진흙탕 자갈밭이 되고, 마을을 점령한 산더미 토사를 표현하겠는가. 집과 세간살이도 초토화되어 망연자실한 이재민의 심정을 뉘라서 알겠는가.
그러나 어떤 폭우에도 끄떡없는 아늑한 건물에서 권력자임을 과시하며 존재 이유인 소통을 송두리째 망가뜨리고 있는 국회 같은 별천지도 있다. 동양 최대라고 자랑했던 의사당에서 의논은 사라지고 껍데기 건물만 서 있는 꼴이다. 채 상병 특검 안건을 다루던 법제사법위원회 위원장(정청래)은 “위원장이 바라는 답변을 하지 않는다”고 증인들을 10분간 퇴장시켰다. 다른 의원(박지원)은 (퇴장인들이) “손과 한 발을 들고 서 있어야 한다”고 거들었다. 대통령 탄핵소추 청문회 건을 다루면서는 소수당 의원들의 발언 기회 요청을 묵살로 일관하다가 토론 중지 선언과 함께 안건을 통과시켰다. 모든 게 일사천리인 그 위원장은 ‘국회법 준수’ ‘퇴장’ ‘처벌’을 입에 달고 회의를 진행한다. 보건복지위에서도 기괴한 광경이 돌출했다. 장관의 답변 기회 요청을 꾸준히 무시하던 위원장(박주민)은 (답변을 들어보자는) 여당 간사의 지적에 얼굴을 찌푸리며 “위원장이 얘기하고 있습니다”라며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감정·분노 조절이 되지 않는 아이들을 다루던 옛적 텔레비전 화면의 왕림이었다.
‘국지성 물 폭탄’ 같은 극렬 지지자를 제외한 일반 국민은 이런 국회 운영행위를 조롱, 오만, 폭력, 횡포, 방탄, 일방통행으로 비판한다. 맞는 말이다. 그러나 더 큰 문제는 국회의 본질인 ‘소통생태계’의 파괴이다. 비판과 문제를 제기했으면 답변을 들어야 소통이다. 자기 생각을 주장했으면 다른 의견의 상대 주장도 들어야 소통이다. 국회가 경청 공동체라는 점을 명심하고 실행해야 소통공동체이다.
또한 국회에서 모든 소통행위는 서로 다른 생각이 왔다 갔다 하며 공존·공생하는 담론적이어야 한다. 담론(discourse)은 ‘서성거리기’를 의미하는 라틴어 디스쿠르수스(discursus)에서 비롯되었다. 타인을 배제하는 소통은 민주주의적 담론과 소통행위가 갖춰야 할 조건과 품격을 충족하지 못하여 “자폐적이고 외곬이며 교조적이다.”(정보의 지배’ 한병철) 대화와 타협의 건강한 소통생태계에서 도출되는 결정이어야 ‘담론성’을 획득한다. 지난 6월5일 개원한 22대 국회가 한 달여 동안 보여준 소통생태계 훼손이 이미 우려스럽다.
김정기 한양대 명예교수·언론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