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월남귀순자’로 불렸던 탈북민이 늘어나기 시작한 것은 1990년대 중반부터다. 김일성이 사망하고 자연재해로 식량사정이 나빠지면서 수백만명이 굶주리는 사태가 닥쳤기 때문이다. 이른바 ‘고난의 행군’ 시기다. 1993년 이전까지 연평균 10명 이내이던 탈북민 수는 1994년을 기점으로 50명 내외로 증가했다. 당시만 해도 가족 단위나 나홀로 탈북민이 많았다. 정부는 이들의 국내 정착을 돕기 위해 ‘북한이탈주민의 보호 및 정착지원에 관한 법률’(북한이탈주민법)을 만들어 지원에 나서기 시작했다. 그러자 2003∼2011년 탈북민은 연간 2000∼3000명 수준까지 급증했다.
이들을 부르는 용어도 달라졌다. 부정적 이미지를 불식시키고자 월남귀순자에서 귀순용사, 귀순동포를 거쳐 2005년에는 새터민으로 불렀다. ‘새로운 터전에서 삶의 희망을 갖고 사는 사람’이라는 뜻이지만 탈북민 단체가 반발하자 ‘북한이탈주민’으로 바뀌었다. 어제(7월14일)가 법 시행을 기념해 제정된 제1회 ‘북한이탈주민의 날’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기념식에서 북한의 인권문제를 강력히 규탄했다. 윤 대통령은 “북한을 탈출한 동포들이 강제로 북송되지 않도록 모든 외교적 노력을 다하겠다”며 “북한 주민은 대한민국 헌법상 국민으로, 국민을 보호하는 것이 국가의 가장 기본적 책무”라고 강조했다.
북한을 포함해 중국까지 겨냥한 발언이다. 유엔난민협약상 전쟁이나 폭력, 박해를 피해 자기 나라를 탈출한 사람을 난민으로 간주한다. 이 기준이라면 탈북민은 엄연히 ‘난민’이다. 이들을 생명이 위협받을 곳으로 추방·송환하는 건 협약 위반이다. 정당한 사유가 있어도 고문받을 우려가 있는 곳으로 추방해선 안 되는 게 고문방지협약이다. 중국은 이 두 가지 협약에 가입하고도 귀를 닫고 있다.
중국 내 탈북민 규모는 적게는 5만명, 많게는 20만명으로 추정된다. 지난해 10월 탈북민 500∼600명을 항저우 아시안게임이 끝나자마자 북송해 국제사회의 지탄을 받았다. 그러고도 최근 유엔 인권최고대표사무소(OHCHR)에 “경제적 이유로 입국한 북한 사람은 난민이 아니다”라고 했다. 강제북송을 계속하겠다는 의도다. 이제라도 주요 2개국(G2) 국가 위상에 걸맞은 상식과 지도력을 보여야 한다.
[설왕설래] 북한이탈주민과 난민
기사입력 2024-07-14 23:18:32
기사수정 2024-07-14 23:18:31
기사수정 2024-07-14 23:18:31
김기동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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