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1일 공정거래 자율준수를 내용으로 하는 공정거래법 개정 내용이 시행되었다. 작년 6월20일 ‘공정거래 자율준수 문화 확산’이란 조항이 신설된 지 1년 만이다. 동의의결제도의 확대, 조정제도 활성화 등과 함께 공정거래제도 운영을 다양화하려는 정책적 의지의 표현으로 볼 수 있다.
자율준수 프로그램(CP·Compliance Program)이란 기업이 공정거래 관련 법규를 준수하기 위해 자체적으로 제정·운영하는 교육, 감독 등 내부 준법 시스템을 가리킨다. 2023년 현재 742개의 기업이 도입·운영 중인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CP는 문자 그대로 자율준수 프로그램인 만큼 운영에 있어서는 기업의 자율적 노력이 가장 중요하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지난 20여년간 CP의 확산을 위해 노력해왔으며, 이제 법제화로 그 결실을 거둔 셈이다.
공정위는 2001년 1월 CP 제도의 장점을 업계에 소개했고, 같은해 3월 민간이 주축이 된 공정거래질서 자율준수위원회가 발족한 데 이어 공청회 등에서 의견을 수렴해 그해 7월5일 자율준수규범이 제정・선포되었다. 2002년부터 CP 모범운영 기업에 과징금 감경 등 일정한 인센티브를 부여했고, 2006년에는 기업들이 CP를 내실 있게 운영할 수 있도록 유도하고 운영 성과에 따른 차등적인 인센티브를 부여하기 위해 등급 평가제를 도입했다.
공정위의 CP 확산 노력의 핵심은 등급 평가에 있다. 등급 평가는 CP를 도입한 지 1년 이상 지난 기업 중 평가를 신청한 기업을 대상으로 한다. 해마다 1회 이상 운영 실적 등을 기준으로 기업별 등급을 산정하는 제도다. CP 운영 사업자를 대상으로 일정한 기준에 따라 평가해 등급을 부여함으로써 우수한 사업자에게 차별적 인센티브를 제공해 충실한 운영을 유도하는 게 제도의 목적이다.
2024년 공정거래백서에 따르면 CP 등급 평가 신청 기업은 도입연도(2006년)에는 60개였다. 2007년∼2012년 매년 40~50여개 수준을 유지하다가 최근 몇년 사이에는 10여개 수준으로 감소했다. CP 제도 및 과징금 감경 혜택의 법적 근거가 마련된 2023년에는 28개 기업이 신청해 ‘AAA’ 등급 3개사, ‘AA’ 등급 23개사, ‘A’ 등급은 2개사가 각각 받았다.
CP가 시행과정을 거쳐 법제화가 된 것은 공정거래제도 시행과 관련해 의미가 매우 크다. 물론 CP 제도가 시행된다고 해서 공정거래법 집행이 약화되거나 모든 것을 기업에 맡기는 결과로 가지 않는다.
CP가 광의의 공정거래제도로 정식 편입됨으로써 공정위에서도 이를 무력화시키는 방향으로 공정거래정책을 가져가기 어렵게 될 것이다. 지난 운영 경험을 보면 잘 나가던 CP 등급 평가제도는 인센티브가 없어지면서 내리막길을 걸었고, 최근 입법화가 되면서 다시 평가 신청 기업이 늘고 있다고 한다. 기업은 태생적으로 비용과 이득을 정확히 하는 조직이니 그럴 만도 하다는 생각이 든다.
기업의 자율준수 노력이 미치는 영향은 법원 판결에서도 나타나기 시작했다.
○○스틸은 비슷한 시기에 장기간 이뤄진 3건의 담합행위로 공정위로부터 약 320억원의 과징금 처분을 받았다. 그러자 주주들이 “대표이사의 감시·감독 의무 위반으로 과징금 상당의 손해가 발생했다”고 주장하면서 대표이사를 상대로 해당 금액 상당의 손해를 회사에 배상하라고 주주대표소송을 제기했다.
대법원은 “대표이사 및 업무 담당 이사들이 합리적인 정보 및 보고 시스템과 내부통제 시스템을 구축하고 그것이 제대로 작동되도록 하기 위한 노력을 전혀 하지 않거나 동 시스템이 구축되었다 하더라도 회사업무 전반에 대한 감시・감독 의무를 이행하는 것을 의도적으로 외면한 결과 다른 이사의 위법하거나 부적절한 업무 집행 등 이사들의 주의를 요하는 위험이나 문제점을 알지 못하였다면 이사의 감시 의무 위반으로 인한 손해배상책임을 진다”고 하면서 “높은 법적 위험이 있는 장기간의 가격 담합 등 위법행위를 방지하기 위해 대표이사가 합리적인 내부통제 시스템을 구축하지 않았다는 점 등”을 근거로 대표이사에게 손해배상 책임을 인정하는 취지로 판결했다(2021 11. 11. 선고 2017다222368).
이와 유사하게 대법원은 OO건설 소액주주들이 제기한 입찰 담합 관련 손해배상 소송 판결에서 “모든 이사는 적어도 회사의 목적이나 규모, 영업의 성격 및 법령의 규제 등에 비추어 높은 법적 위험이 예상되는 업무와 관련해서는 제반 법규를 체계적으로 파악하여 그 준수 여부를 관리하고 위반 사실을 발견한 경우 즉시 신고 또는 보고하여 시정조치를 강구할 수 있는 형태의 내부통제 시스템을 구축하여 작동되도록 하는 방식으로 감시 의무를 이행해야 한다”며 “다만 회사의 업무 집행을 담당하지 않는 사외이사 등은 내부통제 시스템이 구축되어 있지 않은데도 구축을 촉구하는 등의 노력을 하지 않거나 내부통제 시스템이 구축되어 있더라도 제대로 운영되고 있지 않다고 의심할 만한 사유가 있음에도 이를 외면하고 방치하는 등의 경우 감시 의무 위반이 인정된다”고 판시했다(2022.5.12. 선고 2021다279347).
즉 대법원 판결에서 내부통제 시스템 구축 의무 위반으로 이사의 손해배상 책임을 인정한 것이다.
기업 입장에서는 법 위반을 예방하고 자율준수 문화를 정착시키기 위한 노력이 선택이 아니라 필수인 시대가 되어가고 있다. 꼭 인센티브를 받기 위해서라기보다 법 위반을 예방하고 자율준수 문화를 정착시키는 계기로 삼는다면 일류 기업문화로 가는 초석이 될 수 있다.
공정위도 법 위반을 이유로 CP 노력을 인정하지 않겠다는 시각보다, 법 위반이 있었지만, 재발 방지를 위해 적극적 노력을 하도록 유도하는 방향으로 사고의 전환이 필요하다.
“해가 떴을 때 건초를 만들어라(Make hay while the sun shines)”
신동권 법무법인 바른 고문(전 공정거래조정원장) dongkweon.shin@barunlaw.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