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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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가만난세상] 일상이 된 불안, 빈틈 파고든 극우

한창 극우정당이 기세를 올리는 유럽 정세 속 유럽의회 선거와 벨기에 총선을 취재하기 위해 지난달 초 벨기에 브뤼셀과 겐트를 다녀왔다. 정치 관련 취재를 하러 왔으니 당연히 현지인들이 정치 현실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물어봐야 한다. 언제나 바쁘게 움직이는 한국인들과 달리 유럽에서는 한가하게 거리에서 시간을 보내는 사람들을 만나는 것이 어렵지 않다. 날씨만 좋다면 공원에서, 거리 벤치에서 한가롭게 시간을 보내는 것이 그들의 문화인 덕분이다.

겐트역 앞에서 한 젊은 청년을 만나 말을 걸었다. 외국인임에도 반갑게 인사를 받아준다. 그런데 다가올 선거를 언급하니 경계를 하기 시작한다. 유럽은 한국보다도 정치적 의사에 대한 프라이버시에 더 민감하다는 이야기를 사전에 들었기에 이런 반응은 어느 정도 예상하기도 했다. 당시 한창 여론조사 1위를 달리고 있는 극우정당 ‘플람스의 이익’에 대해 물었더니 강하게 적대감을 드러냈다. “나는 그들이 주장하는 것을 믿을 수 없다”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본인이 현재 벨기에와 유럽 정치 상황에 대해 생각하는 바를 털어놓기 시작했는데 그 이야기 속에서 젊은이의 ‘불안’을 여실히 느낄 수 있었다. 만성적인 경기침체와 저성장 등 현재 유럽의 현실이 시급히 해결해야 하는 문제라는 것을 인정하며 그렇지 못하다면 젊은 세대들의 미래도 순탄치는 못하리라는 것이다.

서필웅 국제부 기자

유럽에 만연한 경제적 어려움이 극우정당의 득세로 이어졌다는 것을 조금은 피부로 느낄수 있었다. 청년은 극우정당이 내놓은 정치적 해법을 믿지 못하기에 지지자가 되지 않았을 뿐이다. 청년과 달리 누군가는 극우정당이 내놓은 해법을 신뢰했을 것이고 그들에게 표를 던졌을 것이다.

겐트역 앞 청년뿐이 아니다. 벨기에에서 만난 많은 시민들이 모두 어느 정도의 ‘불안’을 안고 있었다. 이웃에 갑자기 늘어난 외국인들에 대한 불안, 코앞에서 치러지고 있는 전쟁에 대한 불안 등. 거리에서 만난 낯선 외국인에게도 쉽게 드러낼수 있을 정도로 그들의 불안이 일상이구나 싶었다.

이 불안을 극우정당들이 파고든다. 현지에서 좀 더 가까이 바라본 극우정당들의 정치적 구호는 대부분 외부의 문제를 비판하고 있었다. 국민이 처한 현실의 어려움의 원인을 이민자, 전쟁 등 외부에서 찾으며 대중의 지지를 넓혀가고 있었던 것이다. 정치인들은 외부를 공격하기만 하면 된다. 그런 접근이 불안한 이들에게는 위로가 될 수는 있겠지만 분명 사회가 병드는 방식이다. 결국 국민들의 불안감은 더 증폭할 테고, 사회는 악순환에 빠져 더 병들어 갈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생각을 한 이유는 당연히 한국에서도 언제든 생길 수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우리 주변에도 ‘불안’이 항상 떠돌아다닌다는 사실은 누구나 알고 있지 않은가. 불안한 정치와 경제로 도대체 우리 미래가 어디로 향할지 모르기에 마음속 깊은 곳에 항상 찜찜한 마음이 남아 있다. 만약 미래가 조금이라도 나쁜 길로 향한다면 외부에 대한 경계심이 심한 문화 속에 살아왔던 우리도 누군가에게 ‘적대감’을 가지라는 구호에 쉽게 넘어갈지 모른다.


서필웅 국제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