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학술지 네이처에 게재된 내용에 따르면 지구 기온이 상승하면서 전 세계 와인 산지 중 70%가량이 어려움을 겪을 것으로 전망된다고 한다. 특히 스페인과 이탈리아, 그리스, 미국 캘리포니아 남부와 같은 전통적으로 명성이 높은 와인 산지는 90%에 달하는 지역이 큰 타격을 입을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기후 위기는 주류 산업에 어떤 영향을 끼치게 될까.
일단 와인 맛이 달라진다. 재배 환경이 똑같지 않다 보니 맛도 같은 와인이 나올 수 없다. 특히 날씨가 따뜻해지고 가뭄이 일어나면 나타나는 대표적인 현상은 당도가 높아진다는 것이다. 당도 곱하기 0.57을 하면 알코올 도수가 나오는데, 높아진 당도에 알코올 도수도 높은 와인이 나오게 된다. 여기에 더운 나머지 열매가 일찍 익고 수확도 빨라져 포도의 풍미가 떨어지는 현상이 생긴다.
극단적인 예로 알코올 도수는 높고 단맛은 많고 풍미는 부족한 와인이 나올 수 있다. 어릴 적 할머니가 소주에 포도를 넣고 설탕을 추가해 만들어준 포도주와 같은 술이 나올 수 있다.
여기에 대표적인 와인 산지도 바뀌게 된다. 기존에는 프랑스, 이탈리아, 스페인이 중심이었다면 북유럽 국가들도 와인 산지가 될 수 있다. 벨기에, 네덜란드, 독일에 극단적으로 러시아, 나아가 북극과 남극 와인들도 나올 수 있다. 이렇게 되면 와인 문제가 아닌 지구 전체에 심각한 문제가 일어날 것이라서 상상하기도 싫다.
일단 현재 상황으로는 영국이 와인 산지로 등장하고 있다. 영국 평균 온도는 10도 전후로 프랑스처럼 13도 전후로 올라간다면 자리가 바뀔 수 있다. 기온이 좀 더 올라간다면 스카치위스키가 아닌 스카치와인으로 더욱 유명해질 수도 있다.
맥주 역시 기후 위기에 여러 영향을 받고 있다. 맥주의 주재료인 홉이 기후에 매우 민감하기 때문이다. 체코과학아카데미(CAS)와 영국 케임브리지대 과학자들로 구성된 공동 연구팀이 지난 10일(현지시간)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스에 게재한 논문에 따르면 유럽의 홉 재배량이 2050년까지 최대 18% 줄어든다. 연구팀은 홉의 품질을 좌우하는 알파산 함량도 최대 31% 감소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맥주에 홉을 넣지 않으면 되지 않을까. 그렇게 한다면 맥주가 아닌 식혜와 같은 맛이 난다. 보리 식혜가 되는 것이다.
또 지구 표면 온도가 4도 올라가면 프랑스의 보리 수확량은 2050년까지 18% 감소하고, 폴란드의 보리 수확량 역시 15% 감소할 것이라고 발표됐다. 이렇게 되면 보리가 아닌 쌀로도 많은 부분 대체될 수 있다. 바로 맥주가 아닌 ‘쌀 미(米)’자를 써서 미주(米酒)가 되는 것이다. 또 지구 최후의 작물인 옥수수가 맥주의 주원료가 될 수 있다.
이러한 것을 조금이나마 극복하기 위해 양조장 및 위스키 증류소는 다양한 환경 활동을 하고 있다. 특히 스카치위스키 증류소들은 숲 샘물이 무척 중요하기 때문에 이러한 것을 살리고자 노력하고 있다. 위스키를 만들고 남는 찌꺼기를 이용해서 전기 발전을 하는 것도 그중 하나다. 향후 기온이 높아지더라도 재배가 가능한 보리와 포도 품종 개방에도 적극적이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기후 위기가 단순히 와인이나 맥주 맛을 변하게 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는 것. 기후 위기로 술의 맛이 바뀌면, 우리의 삶도 바뀔 수 있다. 극단적이라면 우리 삶에 위협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 명욱 주류문화 칼럼니스트는…
주류 인문학 및 트렌드 연구가. 숙명여대 미식문화 최고위과정 주임교수를 거쳐 현재는 세종사이버대학교 바리스타&소믈리에학과 겸임교수로 재직 중이다. 넷플릭스 백스피릿의 통합자문역할도 맡았으며, 저서로는 ‘젊은 베르테르의 술품’과 ‘말술남녀’가 있다. 최근에는 술을 통해 역사와 트렌드를 바라보는 ‘술기로운 세계사’를 출간했다.
명욱 주류문화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