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장가에서 ‘새 영화 개봉일=수요일’이라는 공식이 서서히 깨지고 있다. 지난달 개봉한 ‘하이재킹’에 이어 한국 재난영화 ‘탈출: 프로젝트 사일런스’와 할리우드 신작 ‘플라이 미 투더 문’이 모두 금요일 개봉을 택했다. 9월 관객을 찾는 ‘베테랑2’도 일찌감치 금요일 개봉을 예약했다. 평일 소수 관객의 후기에 영화평이 좌우되는 위험을 피하면서 금요일에 첫선을 보여 휴일까지 흥행 동력이 이어지게 하려는 전략으로 풀이된다.
16일 영화계에 따르면 국내 극장가에서는 2010년대 중반부터 수요일 개봉이 관례였다. 그러나 올해 들어 목요일이나 금요일 개봉을 택하는 작품이 조금씩 늘고 있다.
여름 성수기를 노린 재난영화 ‘탈출: 프로젝트 사일런스’는 금요일인 12일 개봉했다. 고(故) 이선균 배우의 유작인 이 작품은 안개 낀 공항대교에서 100중 추돌 사고가 발생하면서 벌어지는 위기를 그렸다. 한 치 앞이 분간되지 않는 희뿌연 사고 현장에 설상가상으로 군사용 실험견 11마리가 풀려나면서 생존자들이 목숨을 위협받는 재난을 다룬다. 이 영화는 개봉일 10만여명의 관객을 동원한 데 이어 주말 이틀 동안 24만9500여명의 관객을 기록했다.
스칼릿 조핸슨과 채닝 테이텀이 주연한 영화 ‘플라이 미 투 더 문’도 같은 날 개봉했다. 이 작품은 1969년 미 항공우주국(NASA·나사)의 아폴로 11호 발사를 소재로 한다. 미 의회에서 달 착륙 관련 예산안이 부결될 위기인 가운데, 켈리(조핸슨)가 나사 홍보를 새로 맡으면서 변화를 몰고 온다. 이 영화는 ‘달 착륙 음모론’도 정면으로 다룬다. 켈리는 미 백악관 고위관계자의 협박에 가까운 지시로 달 착륙 실패에 대비한 ‘가짜 달 유영 영상’을 준비한다.
CJ ENM의 올해 기대작 ‘베테랑2’도 9월13일 금요일 개봉을 확정 지었다. 150만 관객을 넘긴 ‘하이재킹’ 역시 금요일인 지난달 21일 첫선을 보였다. ‘하이재킹’은 개봉일에 관객 9만9928명을 기록한 데 이어 개봉 첫 주말 이틀 동안 38만2400여명을 모으며 주말 흥행에 성공했다.
앞서 1000만 영화 ‘파묘’는 목요일인 2월22일 개봉했다. 장재현 감독이 베를린국제영화제 참석 후 귀국하는 일정을 감안한 선택이었다. 가족 애니메이션 ‘브레드이발소:셀럽 인 베이커리 타운’도 금요일인 지난 3월1일 관객을 찾았다.
국내 극장은 1990년대 말까지 토요일 개봉이 관례였다. 그러다 2000년대 초반 금요일, 2000년대 중반 목요일로 서서히 개봉 요일이 조정됐다. 영화 시장이 호황이던 당시에는 빠른 개봉을 통한 선점효과를 기대했다. 입소문이 나면 주말 관객이 뒤따라 늘어나리라 기대하고 개봉일을 하루씩 앞당겼다. 수요일 개봉이 시작된 건 2013년부터다. 2014년부터 매월 마지막 수요일에 관람료 할인을 하는 ‘문화가 있는 날’이 도입되면서 수요일 개봉이 굳어졌다.
최근 다시 금요일 개봉이 등장한 데는 영화시장 변화가 큰 영향을 미쳤다. 평일 관객수가 급감하면서 개봉일에도 상대적으로 적은 관객이 극장을 찾다 보니 소수 관객의 취향에 영화평이 좌우되는 ‘입소문 리스크’가 커졌다. 평일 개봉 후 영화에 대한 혹평이 많으면 오히려 주말 관객조차 놓치는 사태가 생겼다. 황재현 CGV 전략지원담당은 “다른 관객의 반응을 참고해 영화 관람을 결정하는 것이 최근 트렌드”라며 “수요일에 개봉했을 때 영화에 대한 평가가 안 좋으면 주말에도 기대보다 관객수가 저조한 면이 있다”고 설명했다.
반면 극장을 찾는 발길이 느는 금요일은 관객층이 두껍기에, 금요일 개봉 후 영화가 호평받으면 주말과 그다음 주까지 흥행에 탄력을 받을 수 있다. ‘플라이 미 투 더 문’ 배급사인 소니 픽쳐스 관계자는 “특정 관객이 국한된 수요일이 아닌 다양한 관객층이 모이는 금요일 개봉을 통해 주말 박스오피스에 힘을 주는 게 더 효과적이라고 판단된다”고 전했다.
‘탈출’ 배급사인 CJ ENM 관계자도 “극장 환경이 많이 변하고 있고 평일 평균 관객수가 적어지다 보니 금요일 개봉 사례가 생기는 것 같다”며 “‘탈출’ 같은 재난 장르 영화를 선호하는 10대나 여유 시간에 영화 한 편을 보려는 직장인 모두 금요일에 관람이 용이하기 때문에 개봉일을 금요일로 정했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