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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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쪽이'에 고통받는 교실…학부모 거부 땐 심리치료 못해 [심층기획-정서위기학생에 시달리는 학교]

ADHD 등 영향으로 폭력성·충동 행동
3년 주기 검사서 年 8만명이 ‘관심군’
5명 중 1명은 전문 기관 치료 안 받아
초등교사 95% “수업 진행 방해 경험”

상담 권하면 “애를 정신병자 취급” 항의
아동학대 인정 때만 교육 당국 개입 가능
교사들 “강제 치료 법적 근거 마련해야”
위기 학생 지원법 발의… 법안 통과 기대

초등학교 교사 A씨는 지난해 5학년 담임을 하면서 맡았던 학생을 생각하면 아직도 숨이 턱 막히는 것 같다. B군은 작년 초 전학 온 직후부터 각종 문제를 일으켰다. 평소엔 괜찮다가도 감정이 상하면 갑자기 소리를 치고 물건을 집어던지는 등 화를 주체하지 못했다. B군에게 교사의 지도는 전혀 소용이 없었다. 덩치가 큰 B군이 달려들 때면 A씨는 공포까지 느꼈다. A씨는 B군의 부모에게 여러 차례 상담을 권했지만, 돌아오는 것은 “왜 멀쩡한 아이를 정신병자 취급하느냐”는 항의였다. A씨는 “(B군은) 반에서 무법자였다. 자극하지 않는 것이 최선이어서 아이들은 물론 나도 B군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으려 조심했다”며 “아이가 두렵고 교사로서 할 수 있는 것이 없어 허탈했다”고 회상했다.

A씨의 두려움은 몇 달 뒤 B군이 다른 학교로 전학 간 뒤에야 사그라들었다. 하지만 찝찝함은 남았다. B군은 충동 조절 등의 치료가 시급한 상황이었으나 상담 한번 받지 않은 채 다른 학교로 옮겨갔기 때문이다. A씨는 “다른 학교에서도 비슷한 문제를 일으킬 것이란 생각을 하면 교사로서 안타깝고 나도 아이를 방치했다는 죄책감이 든다”며 “치료가 꼭 필요한 아이도 학부모가 거부하면 손을 쓸 수 없다는 것은 큰 문제”라고 말했다.

 

최근 주의력결핍과잉행동장애(ADHD) 등의 영향으로 폭력성, 충동 행동을 보이는 심리·정서·행동위기학생(정서위기학생)이 교실에서 문제를 일으키는 경우가 잇따라 발생하고 있다. 정서위기학생에게는 적절한 상담과 치료가 필요하지만, 학교는 ‘권고’만 할 수 있을 뿐 학부모가 거부할 경우 개입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 학교 현장에서는 정서위기학생에 대한 교육 당국의 적극적인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치료 거부’에 손 못쓰는 학교

16일 교육부에 따르면 정서위기학생은 심리적 원인이나 정신건강, 학교 부적응 등 정상적인 학교생활이 어려운 위험 요인을 가진 학생을 말한다. 교사들은 학교에서 이런 학생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는 입장이다. 교사노동조합이 지난달 실시한 ‘정서위기학생에 대한 실태조사’에 참여한 초등교사(1273명) 대부분이 학교에서 정서위기학생을 지도하고 있다고 답했다. 정서위기학생에게 수업 진행이 불가능할 정도의 방해를 받은 경험이 있는 교사는 95.1%(1210명), 교육활동 침해를 겪은 교사는 84.1%(1071명)였다.

경기의 한 초등학교 교사는 “교사의 교육과 지도만으로는 상태 호전이 어려운 아이들이 교실마다 적어도 1명, 많으면 2∼3명까지도 있다”며 “이런 아이들에겐 상담 등 전문적인 개입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학교는 매년 시행하는 ‘학생정서·행동특성검사’에서 전문기관 의뢰 등의 2차 조치가 필요하다고 나온 ‘관심군’ 학생과 교사가 필요성을 느낀 학생에게 전문기관 상담·치료를 권하고 있다. 3년 주기(초1·4학년, 중1, 고1)로 받는 학생정서·행동특성검사에선 매년 검사 학생의 4.5% 내외인 8만명가량이 관심군으로 분류된다. 지난해 검사에서도 173만1596명 중 7만6663명(4.4%)이 관심군으로 나타났다.

문제는 학교가 권고 이상의 개입을 할 수 없다는 점이다. 아무리 문제가 심각한 학생이라 하더라도, 보호자가 상담·치료를 거부하면 학교로선 더는 손쓰기 어렵다. 결국 학부모의 협조가 치료의 관건인데, 현장 교사들은 적지 않은 학부모가 교사의 치료 권유를 무시한다고 입을 모았다. 자녀의 상태를 인정하지 않으려 하거나 알면서도 치료 여력이 없다는 이유로 그냥 방치한다는 것이다.

서울의 한 초등학교 교사는 “주변에서 치료를 권했다가 학부모가 ‘우리 애를 무시한다’며 민원을 넣고, 심지어 아동학대로 고소하겠다고 협박해 교사들이 괴로워하는 사례를 봤다”며 “이런 아이가 반에 있으면 교사는 그냥 1년이 빨리 가기를 바라는 수밖에 없다. 아이는 치료를 못 받고 학년이 올라갈수록 상태가 더 나빠져 더 큰 문제를 일으키는 악순환이 일어난다”고 말했다.

실제 더불어민주당 백승아 의원이 교육부에서 받은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학생정서·행동특성검사에서 관심군으로 분류된 학생 5명 중 1명(21.2%·1만6288명)은 전문기관의 상담·치료를 받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경기는 관심군 학생의 전문기관 연계율이 63.2%, 서울은 72.7%에 그쳤다. 치료를 받지 않은 학생의 83.5%는 학생·학부모가 치료를 거부한 경우였다.

사진=연합뉴스

◆“‘동의 없어도 치료’ 법적 근거 필요”

학부모가 계속해서 치료를 거부할 경우 현재 교육 당국이 택할 수 있는 방법은 고발이다. 학부모의 아동학대(방임)가 인정되면 교육 당국이 학생에게 개입할 수 있어서다. 지난달 전북 전주에서 초등학생이 교감의 뺨을 때려 논란이 된 사건에서도 전북교육청은 학부모를 아동학대로 고발했다. 해당 학생은 2021년 입학 후 문제행동이 발견돼 교육청이 학부모에게 수년간 수차례에 걸쳐 상담·치료를 권했으나 학부모가 계속 거부해 온 것으로 전해졌다.

다만 아동학대가 인정되더라도 교육 당국의 개입엔 여전히 한계가 있다. 전주 초등생 사건도 결국 의료적 방임 아동학대가 인정됐지만, 학부모는 여전히 상담 등을 거부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학부모가 과태료를 내면서까지 자녀의 상담·치료를 거부한다면 교육 당국이 강제로 치료하긴 어렵다.

학교 현장에선 정서 위기학생의 진단·상담·치료 등에 보다 적극적으로 개입할 수 있는 법적 근거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크다. 학부모가 거부해도 문제가 심각한 학생은 치료할 수 있는 체계가 구축돼야 한다는 것이다. 조국혁신당 강경숙 의원은 지난달 이런 내용을 담은 ‘정서행동 위기학생 지원에 관한 법률’을 대표 발의했다. 강 의원은 “법안이 통과된다면 정서 위기학생에 대한 예방적 지원, 전문적 지원, 집중적·개별적 지원이 체계적으로 이뤄질 것”이라고 밝혔다.

교육부도 치료 근거 마련 필요성에 동감하고 있다. 교육부는 지난해 관련 내용을 담은 학생맞춤통합지원법 입법을 추진했지만 법안이 통과되지 못했다. 이번 국회에서 어떤 형태로든 관련 법안이 통과될 수 있도록 노력한다는 방침이다. 교육부 관계자는 “법에 근거가 있다면 지금보다 치료 개입이 훨씬 수월해질 것”이라며 “현재 정신건강 전문가를 현장에 보내 학부모에게 치료의 필요성과 중요성을 설득하고 있는데, 이런 노력도 함께하면서 어떻게 문제를 개선할 수 있을지 고민하겠다”고 밝혔다.


세종=김유나 기자 yoo@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