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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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없는 수단 내전 1100만명 피란… 국제사회 무관심에 절망 [세계는 지금]

아프리카 잊힌 전쟁

수단 정부, 아프리카 농경민 노골적 차별
다르푸르서 무력 충돌… 대량학살 이어져
국제사회 중재로 양측 2011년 평화협정

18년 지난 지금도 여전히 전쟁 휩싸여
가자·우크라 전쟁에 묻혀 관심 못받아
세계 지도자들도 적극적 목소리 사라져

2019년 쿠데타 함께한 RSF·SAF 반목
2023년 조직 지휘권 두고 무력 분쟁 터져
내전 확산… 역대 최대 규모 피란민 발생

내전 지속에 여성·아동 등 고통 더 커져
영양실조·질병·테러·성폭력 위협 노출
아동 1100만명 긴급 인도적 지원 필요

수단 정부는 중부 다르푸르에서 2003년 2월부터 아프리카 농경민들을 대상으로 노골적인 차별 정책을 펼쳤다. 비아랍계 부족은 차별을 견디다 못해 무장투쟁단체를 구성했고, 수단은 내전 상태로 빠져들었다.

2006년 4월 정치인, 올림픽 선수 등 유명인사를 비롯해 수천명의 인파가 미국 워싱턴 내셔널몰에 모였다. 이들의 주장은 다르푸르 지역의 대략 학살을 막기 위한 국제적 관심을 촉구하는 것이었다. 당시 일리노이주 상원의원이었던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은 낸시 펠로시 전 하원의장과 함께 처참한 수단 내 상황을 알리고 국제사회가 적극적으로 나설 것을 함께 요구하기 위해 목소리를 높였다.

 

상원의원이었던 조 바이든 대통령도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가 수단 내 대량학살을 막기 위해 개입할 것을 촉구하는 법안을 의회에 제출하며 “분쟁을 종식하기 위해 군사적, 외교적 조처를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미국 등 국제사회는 연일 분쟁을 멈추라는 목소리를 냈다. 미국은 다르푸르 사태를 대량학살로 공식 규정했고, 카타르, 유엔, 아프리카연합(AU) 등은 평화협정에 합의하라며 압박했다. 전 세계 30개 도시에선 ‘다르푸르 행동의 날’이란 이름으로 평화를 촉구하는 시위가 대규모로 벌어지기도 했다.

수단 정부군(SAF)과 준군사 조직인 신속지원군(RSF) 간 내전이 1년 넘게 이어지고 있는 수도 하르툼에서 지난해 5월1일 폭격을 맞은 건물 위로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다. 하르툼=로이터연합뉴스

국제사회의 압박으로 2011년 7월 수단 정부와 아랍계 부족은 유엔 및 AU 관계자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카타르 도하에서 평화협정을 체결했고 약 8년간 이어진 분쟁을 끝냈다. 하지만 양측의 충돌로 약 40만명이 숨지고 250만명 이상의 피란민이 발생한 뒤였다.

18년이 지난 지금, 수단에선 또다시 내전으로 수많은 목숨이 희생되고 있다. 수단에선 지난해 4월 시작된 내전이 16개월째 이어지고 있다. 하지만 이번에는 집회도, 유명인사의 메시지도, 외부 군사 개입 촉구도 없다. 세계 지도자 중에서도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내는 사람을 찾아보기 힘든 실정이다. 국제사회의 외면으로 오늘도 힘없는 여성과 어린이들이 고통스러운 하루를 보내고 있다.

◆또 한 번의 전쟁… 달라진 온도

수단에서 활동 중인 구호 단체 관계자들은 수단 분쟁이 우크라이나와 팔레스타인 가자지구 전쟁보다 너무 소홀하게 다뤄지고 있다고 비판한다. 국제위기그룹(ICG)의 지역 전문가인 앨런 보스웰은 지난 5월28일 미국 외교안보저널 포린폴리시에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와 우크라이나 같은 위기에 집중하는 수준을 보면서 그 에너지의 5%만 수단과 같은 상황에서 사용할 수 있다면 얼마나 많은 생명을 구할 수 있을지 궁금하다”고 말했다. 그는 “수단에서 일하지 않는 사람들은 다르푸르가 기근 위기에 처해 있다는 사실을 모른다”며 “가자지구의 기근 위험에 대해선 모두가 알고 있다”고 호소했다.

부족한 관심에 구호품도 부족한 실정이다. 분쟁 1년을 맞은 지난 4월, 구호 단체들은 수단인을 돕기 위한 국제 인도주의 대응 계획 자금이 6%밖에 모이지 않았다고 밝혔다. 같은 달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기부자 회의에서 각국은 20억달러(약 2조7700억원)를 더 기부하겠다고 약속했지만, 이는 구호 단체들이 필요하다고 말한 금액의 절반에 불과하다.

◆주도권 경쟁 16개월 넘게 이어져

수단 정부군(SAF)과 준군사 조직인 신속지원군(RSF)은 권력 장악을 위해 지난해 4월부터 내전을 벌이고 있다. SAF의 수장인 모하메드 함단 다갈로 장군과 RSF를 이끄는 압델 파타 알부르한 장군은 2019년 함께 쿠데타를 일으켜 30년간 집권한 독재자 오마르 알바시르 전 대통령을 축출했다. 2021년 10월에는 과도 정부를 무너뜨리며 권력을 장악했다.

독재 정부를 공격하던 칼날은 조직 지휘권을 두고 서로를 향하게 됐다. 지난해 4월 SAF가 RSF를 편입하겠다고 하자 RSF는 반발했고 권력 분쟁이 시작됐다. 미국 등 국제사회가 중재를 시도했지만 SAF의 거부로 협상은 무산됐다.

전쟁으로 가장 큰 피해를 보는 건 힘없는 주민들이다. 유엔난민기구(UNHCR)에 따르면 내전으로 약 1100만명의 피란민이 발생했다. UNHCR에 보고된 피란민 중 역대 최대 규모다.

700만명 정도는 수단 안에서 살 곳을 찾고 있다. 이 중 400만명은 어린이다. 지난해 4월15일 아침 큰 폭발음을 들었다던 하르제 술라이만(32)은 영국 가디언에 “몇 주 후에 돌아올 수 있다고 생각해서 노트북과 휴대폰만 챙겨왔다”며 “(주변 사람들에게) 작별 인사도 하지 못한 채 1년이 지난 게 가장 가슴이 아프다”고 말했다.

200만명 이상은 이집트, 차드, 에티오피아 등 주변국으로 피란을 떠났다. UNHCR은 올해 피란민들이 리비아와 우간다로 향할 것으로 예상했다. 각각 14만9000명과 5만5000명 정도다. UNHCR의 글로벌 커뮤니케이션 책임자 이완 왓슨은 “난민들이 리비아와 같이 극도로 어려운 나라로 향하는 것은 사람들이 절망적인 상황에서 절박한 결정을 내리고 있다는 것을 말해준다”고 설명했다.

많은 피란민이 발생한 이유는 내전이 수도 하르툼을 시작으로 주변 지역으로 빠르게 번졌기 때문이다. 현재까지 내전은 다르푸르, 코르도판, 게지라 등으로 번졌으며 다르푸르는 또 한 번 핵심 교전지로 떠올랐다.

내전으로 폐허가 된 수단 동부 게다레프시의 피란민 캠프에서 14일(현지시간) 한 어린아이가 돌을 든 채 주위를 살펴보고 있다. 게다레프=AFP연합뉴스

◆전쟁과 무관한 아동·여성 피해 확대

여성, 아동 등 약자들의 고통은 더 클 수밖에 없다. 유엔은 전쟁으로 폐허가 된 수단에서 아동들이 영양실조, 질병, 사망의 위험에 놓여 있다고 경고했다. 세계식량계획(WFP)의 집행이사인 신디 매케인은 “수단 전역의 어머니와 아이들이 영양실조로 죽어가고 있다”며 “계속되는 전쟁으로 식량, 의료 지원, 쉼터 등 생존에 필요한 모든 것이 박탈당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세이브더칠드런이 분석한 자료에 따르면 수단 아동 2명 중 1명은 전선에서 불과 5㎞ 이내에 거주하고 있어 공습, 폭격, 총격 등 위험에 고스란히 노출돼 있다. 전체 2200만여명의 아동 중 절반은 긴급한 인도적 지원이 필요하며 1800만명은 학교에 가지 못하는 상황이다. 1000만명 정도는 폭탄 테러와 성폭력 등에 노출돼 있기도 하다.

특히 아동 영양실조가 심각하다. 중부 다르푸르에는 5세 미만 아동의 약 15.6%가 급성 영양실조로 고통받고 있다. 북부는 30%에 달하는 아동이 영양부족에 시달리고 있다. 로이터통신은 식량을 구하기 어려워지자 교전 지역에선 주민들이 흙과 나뭇잎을 먹으며 버티고 있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유엔은 영양실조가 질병과 함께 발병해 아동들의 상태를 악화시킨다고 지적했다. 영양실조가 질병 발병 위험을 높이는 동시에, 이미 몸이 아픈 아동이 영양실조에 걸릴 확률 또한 높다는 것이다. 세계보건기구(WHO)의 테워드로스 아드하놈 거브러여수스 사무총장은 “영양실조는 일회성 위기가 아니다”라며 “영양실조에 걸린 아동은 평생 발달 장애와 건강 악화로 인해 전염병에 걸려 사망할 가능성이 크다”고 경고했다.

성인 여성도 위험한 건 마찬가지다. 특히 임산부와 모유 수유를 해야 하는 여성의 경우는 더 우려스러운 상황에 놓여 있다. 구호 단체 국경없는의사회(MSF)에 따르면 임산부와 모유 수유 중인 여성 중 33% 이상이 영양실조 상태다. MSF는 영양실조가 자궁에서 시작된다며 여성이 임신 중인 상태라면 산모와 태아 모두 위험할 가능성이 크다고 강조했다. MSF가 수단과 국경을 접하고 있는 차드에서 운영하는 캠프 내 소아과 병동에는 합병증을 앓는 아이들과 E형 간염에 걸린 임산부 입원이 늘고 있다. MSF 병동 코디네이터 코둘라 하프너는 “많은 아동이 위생, 음식·물 부족으로 심각한 영양실조에 시달리고 있다”며 “이런 위기는 계속될 것이고, 이런 아동들을 더 많이 보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문제는 캠프에 도착하지 못해 도움조차 받지 못하는 사람들이다. 캠프에 있는 자원봉사자들은 “가장 절망적인 사람들은 최전선에 갇혀 있다”고 우려했다. MSF 미국 사무소장 에이브릴 베누아는 성명을 내고 “다르푸르 북부에서 재앙이 벌어지고 있다”며 “우리 팀이 파악한 바로는 매일 13명의 아동이 영양실조와 관련된 건강 문제로 사망하는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이들은 수단 내 도움이 시급하다며 정부가 인도주의단체로부터 들어오는 원조를 차단해선 안 된다고 촉구했다.


이민경 기자 min@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