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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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K먹방은 잔혹극이 되었다 [이지영의K컬처여행]

영국에서 공부하던 시절 일본어를 전공하던 영국 여학생을 알고 지냈었다. 그 소녀는 일본에 가서 일본 남자와 결혼해서 살고 싶다는 막연한 꿈을 꾸고 있었다. 일본의 젠더 상황에 대해 막연하게나마 알고 있던 나는 그 소녀에게 일본 남자와의 결혼은 만류했지만, 결국 그 소녀는 졸업 후 일본으로 가서 일본 남자와 결혼하였다.

 

최근 충격적인, 비통하게도 너무나 익숙한 사건이 있었다. 유명한 K먹방 유튜버 쯔양을 협박하고 갈취한 전 남자친구 및 사이버 렉카들 사건이다. 쯔양의 전 남자친구이자 전 소속사 대표의 교제폭력, 사생활 동영상 협박 그리고 그 사실을 알고 공개하겠다고 협박한 사이버 렉카들이 쯔양으로부터 돈을 갈취한 사건이다. 교제폭력 및 사생활 동영상 협박을 당한 다른 여성들처럼 그 모든 것을 쯔양 역시 홀로 견뎌야 했다. 국가의 도움을 제대로 기대할 수 없었다.

 

경찰청에 따르면 교제폭력 신고 건수는 지난해 7만7150건으로 2020년에 비해 57%가 증가했다. 그러나 놀랍게도 신고 건수 중 절반 정도는 현장에서 종결되고, 구속 수사에 이르는 경우는 간신히 2%대에 그칠 뿐이라고 한다. 더군다나 교제폭력의 경우 피해자와 가해자를 분리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도 없다. 즐겁고 신기한 마음으로 그녀의 먹방을 보던 수많은 해외 시청자는 이제 한국 사회가 여성의 안전에 얼마나 취약한 나라인지 알게 되었을 것이다. 그런 비통한 사실을 알게 된 누군가에게 이제 한국은 더는 맛있는 K푸드의 나라, 멋진 K컬처의 나라라고 느껴지지 않지 않을까.

 

특정한 나라의 문화에 호감을 가지고 빠진다는 것은 그저 취미로 즐기는 콘텐츠의 문제만을 의미하지 않을 때가 많다. 일본 아니메(애니메이션)에서 시작된 호감은 일본 문화 및 일본산 물건에 대한 호의로 바뀌고 나아가 일본이라는 나라 전체에 대한 호감으로 바뀐다. 이와는 반대 방향이지만 한국 사회의 불평등하고 폭력적인 젠더 현실에 대한 자각은 K콘텐츠가 만들어내는 화려한 환상까지도 깨버릴 수 있다.

 

일본을 사랑해서 일본 남자와 결혼까지 했던 그 영국 소녀는 사실 몇 년 후 이혼하고 다시 영국으로 돌아갔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 나는 모른다. 하지만 나는 그 사건이 어떤 상징처럼 느껴졌다. K콘텐츠가 사람들을 끌어들이더라도 그 관심과 사랑을 유지할 수 있으려면 결국 우리 사회가 진짜 매력적인 사회가 되어야 하는 것 아니겠는가. 우리에게 남겨진 과제는 한국 문화에 다가온 이들이 떠나가지 않을 사회를 만드는 것이 아닐까.


이지영 한국외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