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밝히는 세계사―문학, 철학, 역사를 넘나드는 최소한의 경제 교양/ 차현진/ 문학동네/ 1만9000원
경제는 어렵고 골치 아픈 것으로 취급된다. 하지만 경제를 뜻하는 영어 ‘economy’(이코노미)가 처음 우리말로 옮겨질 때 ‘먹고사는 일’ ‘재산을 늘리는 일’이라는 뜻의 ‘식화(食貨)’나 ‘화식(貨殖)’으로 쓰인 사실을 생각하면 경제는 따분하기보다 현실적이고 직관적인 것으로 보는 게 맞다. 살아가기 위한 행동과 살아가며 느끼는 감정이 결국 경제활동의 일부일 수 있다는 뜻이다. 또한 감정이야말로 경제의 흐름을 바꾸어 놓기도 했다. 저자는 역사적 사건들을 통해 이를 설명한다.
“질투는 개인의 문제일 뿐만 아니라 국가적 문제가 될 수도 있다. 미국이 국채를 처음 발행할 때 가장 큰 장애물은 질투였다. 독립전쟁 시절 식민지 정부가 발행했던 임시 채권은 액면가의 20∼25% 수준에서 거래되었는데, 헌법을 통해 새로 출범한 연방정부가 이를 새 국채로 교환해주겠다고 발표했다. 그러자 값이 두 배로 뛰었다. 그것을 이미 팔아버린 사람들은 배가 아파서 국채 발행을 극렬히 반대했다.”(139쪽)
우리나라 최초의 버블 붕괴도 질투와 탐욕이 작동했다. 6·25 직후, 재정을 건실하게 만들자는 쪽의 국채 발행을 두고 자제하자는 의견과 더욱 확대해 과감하게 재정지출을 늘리자는 의견이 맞붙었다. 하루가 다르게 국채 가격이 오르락내리락했고, 매매 차익을 노리는 투기꾼들에 의해 국채시장은 투전판이 되고 말았다. 그 와중에 국채 발행을 자제한다는 정부 방침이 발표되자 국채 가격이 폭등했다. 이에 국채를 이미 팔아버렸던 사람들은 기를 쓰고 반대했다. 극심한 반대에 정부가 열흘 만에 입장을 뒤집자 이번에는 국채 가격이 폭락했다. 집단 결제 불능 사태가 벌어지고, 금융 시장 전체가 혼란에 빠졌으며 우리나라 금융시장에 처음으로 버블이 터졌다. 그 중심에는 인간의 질투와 탐욕이 있었다.
“1958년 1월17일 정부는 거래소를 폐쇄하고 전날 체결된 국채 매매계약, 즉 42억환의 거래를 전액 무효화했다. 금융시장이 충격에 빠졌다. 대한민국 최초의 버블 붕괴 드라마는 국채가 주연, 질투가 조연이었다.”(140쪽)
질투와 탐욕 외에도 저자는 ‘공포와 혐오’ ‘배신과 분노’ ‘슬픔과 비참’ 등 다양한 인간의 감정이 돈에 영향을 미친 사건들을 다룬다. 이를 통해 비합리적으로만 보였던 돈의 행방과 경제 흐름이 왜 그렇게 움직일 수밖에 없었는지를 내보이며 경제사를 훨씬 입체적으로 조망한다.
다행히도 언제나 돈이 인간의 탐욕을 자극하거나 인간이 돈만을 추구했던 것은 아니다. 영국의 예가 그렇다.
맬서스가 주장한 인구론은 근현대 경제학사에 큰 영향을 끼쳤다. 인구론은 영국에서 노숙인들을 작업 터에 구금한 뒤 알량한 식사만 제공한 채 극심한 노동을 강제하는 근거가 되었다. 식량 부족의 운명을 타고난 인류가 사회적 약자에게는 공짜로 자비를 베풀 여유가 없다는 강박관념의 산물이었다.
이때 찰스 디킨스가 문학으로 반기를 들었다. ‘크리스마스 캐럴’의 구두쇠 스크루지는 꿈속에서 인부들이 혹사당하는 장면을 목격하고는 더 이상은 안 된다며 울부짖는다. 자신의 몰인정을 회개하고 주변 사람들에게 자비를 베푸는 해피엔딩으로 끝을 맺는다. 이 소설이 발표된 1840년대는 영국에서 차티스트 운동(노동운동)이 맹렬히 펼쳐졌다. 이에 따라 식량에 대한 수입관세가 철폐되어 생계비가 낮아지고, 여성과 아동의 노동시간에 규제를 두게 되었다. 산업재해조사가 시작된 것도 이 시기다.
“맬서스의 별명은 ‘인구(Pop)’이고, 디킨스의 별명은 ‘다정 선생(Mr.Sentiment)’이다. ‘인구’가 지은 ‘인구론’은 오늘날 더 이상 읽히지 않는다. 반면 ‘다정 선생’의 ‘크리스마스 캐럴’은 1843년 출판된 이래 지금까지 절판된 적이 없다. 결국 세상을 바라보는 냉정한 시각과 따뜻한 시각의 싸움에서 따뜻함이 이겼다.”(62쪽)
이처럼 돈에 탐욕 대신 인간다움이 투영될 때 새로운 역사가 쓰이기도 한다. 사실 역사에 돈이 최초로 등장할 때부터 그랬다. 화폐가 발명되기 전에는 물물교환을 통해 경제활동이 이루어졌다. 물물교환이 그 수단을 통일하고 규격화해 나타난 것이 화폐다. 하지만 오늘날 경제학자들이 화폐의 기원으로 보는 조개팔찌는 교환수단이라기보다는 기념 선물이자 고마움의 상징이었다. 돈이라기보다는 마음이었던 것이다.
“후대의 경제학자들은 멜라네시아인들이 이 물건을 교환수단으로 삼는다는 점에서 화폐라고 해석했지만, 오늘날의 화폐와는 성격이 크게 다르다. 조개팔찌(음왈리)와 자개목걸이(술라바)는 기념 이외의 용도는 없었다. 그러니까 원시공동체 사회에서 남태평양 원주민들의 교환은 사유재산을 가진 개인들끼리의 상행위가 아니라 일종의 문화적 행위였다. 문화활동에 쓰였던 물건을 경제활동에서 쓰는 지급수단, 즉 돈과 같다고 볼 수는 없다. 한마디로 음왈리와 술라바는 고마움의 상징이었다.”(16쪽)
대체로 경제를 논할 때는 미래를 예측하는 데에만 몰두한다. ‘미국이 언제쯤 금리를 낮출까?’ ‘비트코인이 미래의 화폐가 될까?’ 그런데 금리 예측에서 당장 살피는 것은 당장의 물가상승률일 뿐이다. 물가상승률을 보고 단순히 금리를 조절하는 것은 쉽다. 하지만 핵심은 물가 흐름을 파악하는 데 있다. 경제구조의 변화를 두루 살펴야만 비로소 물가와 금리의 향배를 알 수 있다. 경제정책을 결정하고 금융 상품에 투자할 때 미래만 예측할 것이 아니라 과거를 짚어야 하는 이유다.
책은 경제사에서 핵심 축으로 작동한 돈, 은행, 정책, 중앙은행 등에 ‘인간의 감정’이라는 새로운 요소 더하기를 시도한다. 저자는 경제사에서 인간의 감정이 남긴 획들을 이으며 인간의 역사가 곧 돈의 역사라는 사실을 그리고 그 역사가 곧 미래를 여는 단서임을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