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힘 7·23 전당대회 당원투표를 하루 앞둔 18일 한동훈 당대표 후보의 ‘입 리스크’가 막판 변수로 떠올랐다. 한 후보의 나경원 후보를 겨냥한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 사건 공소 취소 청탁’ 폭로가 당심의 역린을 건드리며, 당내 최대 계파 친윤(친윤석열)계의 반한(반한동훈) 집단행동에 빌미를 주면서다. 한 후보가 “신중하지 못했던 점 죄송하다”며 수습에 나섰지만, 당내에선 “당원 표심에 적잖은 영향을 끼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이날 국민의힘에는 지난해 12월 ‘한동훈 비상대책위원장 추대’ 이후 7개월 만에 친윤계가 공개적인 실력 행사에 나서며 팽팽한 긴장감이 흘렀다. 한 전 위원장의 전날 ‘나 후보가 법무부 장관이던 내게 패스트트랙 사건 공소 취소를 요청했고, 나는 거절했다’는 폭로가 계기가 됐다.
친윤계는 이에 “당대표 할 분이 맞나”, “선을 지켜라”라며 일제히 반발했다. 2019년 4월 공수처법, 공직선거법 등을 패스트트랙에 태우려는 민주당을 저지하려다 의원 및 당직자 27명이 기소된 집단적인 상처를 한 후보가 본인의 선거전에 이용하고, 야당에 먹잇감으로 던져줬다는 것이다. 당시 자유한국당(국민의힘 전신)은 원내대표였던 나 후보의 지휘 아래 소속 의원 전원이 국회 본청에 드러눕는 등의 강경 투쟁을 벌였다.
‘원조 윤핵관(윤 대통령 핵심 관계자)’ 윤한홍 의원이 신호탄을 쐈다. 윤 의원은 이날 국민의힘 의원 단체 채팅방에 “우리 당 대표가 되시겠다는 분이 하신 말씀이 맞는지 도저히 믿을 수가 없다. 앞으로 누가 당을 위해 앞장서겠나”라며 장문의 한 후보 비판글을 올렸다.
그러자 친윤 핵심 이철규 의원이 “한 사람의 말과 행동이 자신의 이익을 위한 것인지 아니면 자신이 속한 집단과 공익을 위한 것인지 분별하여 평가해야 할 것”이라고 맞장구를 쳤다. 친윤 김정재 의원도 “우리의 처절함이 비아냥의 소재로 전락하는 건 원치 않는다”고 질타했다. 세 의원 모두 나 후보와 함께 해당 사건으로 기소돼 재판을 받고 있다.
공개 비판도 이어졌다. 윤핵관의 맏형으로 불린 권성동 의원은 페이스북에서 “우리 당 의원 개개인의 아픔이자 당 전체의 아픔을 당내 선거에서 후벼 파서야 되겠느냐”고 질타했다. 직전 당대표인 친윤 김기현 의원도 “억울한 피해자가 된 우리 동지들의 고통에 공감하지는 못할망정, 2차 가해를 해서는 안 될 것”이라고 했다. 강승규, 강명구 등 대통령실 출신 의원들과 홍준표 대구시장, 김태흠 충남지사도 가세했다.
총선 참패 이후 구심점을 잃었던 친윤계가 ‘반한 대오’ 구축을 위한 ‘제2의 연판장’을 시도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왔다. 나 후보도 “해야 될 말과 하지 말아야 될 말에 대한 분별이 없는 것 같다”, 원희룡 후보는 “피아 구분을 못 하고 동지 의식이 전혀 없다”고 한 후보를 몰아세웠다. 윤상현 후보도 “선을 넘지 않았나”라고 지적했다.
야권은 이 같은 균열을 파고들며 공세의 소재로 삼았다. 민주당 박찬대 대표 직무대행 겸 원내대표는 “사실이라면 하나같이 묵과할 수 없는 심각한 범죄행위”라고 규탄했다. 조국혁신당 조국 당대표 후보도 “범죄 집단의 ‘자백쇼’를 보는 것 같다”며 고발 조치를 예고했다.
파장이 커지자 한 후보는 페이스북에서 “당대표가 되면 패스트트랙 충돌 사건 재판에 대한 법률적 지원을 강화하고, 여야의 대승적 재발방지 약속 및 상호 처벌불원 방안도 검토, 추진하겠다”며 사과했다.
그러면서도 한 후보는 기자들과 만나 “법무부 장관은 공소 취소할 권한이 없다. (사건) 당사자가 법무부 장관에게 공소를 취소해달라고 요청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며 기존 입장을 강조했다. 당내에선 “한 후보가 1차에서 과반 득표할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이번 일로 결선까지 갈 수도 있을 것 같다. 내부 총질이라 파장이 만만치 않을 것”(대구·경북 초선)이라는 반응이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