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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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경제사』 들롱 “맬서스 저주와 빈곤 탈출 성공… 여전히 혼란스럽고 불확실성은 증폭” [김용출의 문학삼매경]

“영국의 학자이자 성직자인 맬서스는 민주주의, 이성, 여성주의, 계몽주의, 혁명 등을 찬양하는 논고들을 읽을 때마다 화가 치밀어 올랐다. 그 심한 반감이 발동하여 18세기가 끝나는 시점에 저술한 책이 바로 『인구론』이었다.”(49쪽)

 

긴 코가 인상적인 맬서스는, 책 『인구론』에서 인구의 자연적 증가는 기하급수적이지만 식량은 산술급수적으로 밖에 증가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따라서 과잉인구로 인한 인류의 식량부족은 필연적이며, 그로 인해 빈곤과 죄악이 많이 발생하는 것은 불가피하다고 주장했다.

대공황을 초래한 1929년 ‘검은 목요일’ 당시 뉴욕증권거래소. 위키피디아 제공

지금에야 틀린 분석이자 전망이라는 것이 분명해졌지만, 그의 주장은 1870년 이전까지는 비교적 들어맞았다는 평가가 많다. 왜냐하면 인간은 농경의 발견 이래 1만년 동안 기술이 인구 증가와의 속도 경쟁에서 빈번히 패배하며 힘겹게 살아가야 했기 때문이다. 늘어나는 인구에 비해 먹을거리는 늘 부족해서 가족들의 입에 풀칠하기가 쉽지 않았고, 춥고 지붕도 없는 곳에서 벌벌 떨어야 했다.

 

하지만 영국을 넘어서 주요 선진국을 중심으로 산업혁명이 확산한 1870년대 이후 상황은 급변하기 시작했다. 인류는 근대적이고 대규모적인 경제 성장을 위한 조직과 연구를 위한 제도, 기술을 갖추어 갓다. 많은 기업 연구소가 세워지고 근대적 대기업이 잇따라 탄생했으며 세계화를 통해서 급속히 확산했다.

1870년 아일랜드 벨파스트의 하랜드울프 조선소에서 진수된 철강 선체의 증기 여객선 RMS 오시애닉은 이 시대의 한 상징이었다. 프로펠러로 움직이는 오시애닉은 승객 1000여명을 태우고서도 그 동안 리버플에서 뉴욕까지 한 달 이상 소요되던 항해를 9일 만에 주파했다. 시간과 공간, 관계들이 혁신적으로 단축됐다.

 

이에 따라 ‘유용한 인간 지식의 글로벌 가치 지수’의 증가율은 1870년 이전에는 연 0.45% 수준에 불과했지만, 1870년부터 2010년까지 연 2.1% 수준으로 높아졌다. 1870년 지수를 1로 설정하면 2010년은 21에 달해, 140년 동안 무려 21.5배나 폭증한 것이었다.

 

인류는 마침내 기술과 기업 주도의 근대적 경제성장을 이룩했다. 북대서양의 일부 지역에서 1인당 소득이 1870년에 비해 20배 이상 증가했다. 지독한 가난에 가두었던 생존과 번영의 문을 열어젖힌 것이다. 하루 2달러 이하로 살아가는 최극빈층 비중 역시 1870년에는 무려 70%에 달했지만, 이제는 9%가 되지 않는다.

 

이처럼 20세기는 무엇보다도 경제 발전이 압도적으로 주도한 최초의 세기였다. 마침내 ‘맬서스의 저주’라고 불리는 지긋한 빈곤의 덫에서 처음으로 벗어나서 물질적 빈곤을 종식시킨 세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미국 클린턴 행정부 시절 재무부 차관으로 신자유주의 정책을 앞장서서 실시하기도 했던 저자는 책 『20세기 경제사: 우리는 유토피아로 가고 있는가』(홍기빈 옮김, 생각의힘)에서 우리가 발을 디딘 지층인 20세기의 성공과 실패를 경제적 맥락에서 심층적으로 들여다본다. 특히, 단순히 세계가 어떻게 부유해졌는가를 설명하려고 하기보다는 유례 없는 물질적 풍요를 바탕으로 무엇을 하려고 했는지, 성장을 지속하기 위해 어떤 시스템을 개발하고 시도했는지를 집중적으로 살펴본다. 이를 통해 지난 세기와 같은 재앙을 피하고 앞으로도 번영을 유지하기 위해서 무엇을 바로잡아야 하는지에 대한 통찰의 도출을 시도한다.

 

저자는 먼저 20세기를 단순히 1900년부터 1999년까지로 보는 것이 아니라 역사와 경제의 흐름에 따라서 임의적으로 규정한다. 즉, 인류를 극심한 빈곤에 가두었던 문을 여는 데 성공한 1870년부터 이 성공이 가져온 부의 급격한 상승 궤적의 속도를 유지하는데 실패한 2010년까지 140년을 ‘장기 20세기’로 규정한다.

 

이는 영국의 역사가 에릭 홉스봄와 대비된다. 홉스봄은 19세기를 1776년부터 1914년까지 자본주의와 민주주의가 발흥했던 ‘장기 19세기’로 바라보고 20세기는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한 1914년부터 소련이 몰락한 1991년까지 현실 사회주의와 파시즘이 세계를 뒤흔든 ‘단기 20세기’로 규정했다.

 

저자가 ‘장기 20세기’의 시작이라고 본 1870년대는 산업혁명이 영국을 넘어 주요 선진국으로 확산되면서 산업혁명의 진정한 시작이라고 부를 수 있는 시기였고, 기존 강대국이던 영국과 미국에서 이어서 러시아, 독일, 일본 등이 강대국으로, 제국으로 성장해간 시간이기도 했다.

 

두 차례의 세계대전와 홀로코스트, 소련의 흥망, 절정에 달한 미국의 영향력, 현대화된 중국의 부상 등과 같은 현대사를 배경으로 전개된 ‘장기 20세기’의 경제성장은 무엇보다 시장경제와 자본주의에 의해 매개됐다. 이와 관련, 오스트리아 출신 영국의 경제학자 프리드리히 하이에크는 시장만이 성장의 과업을 이룰 수 있으며, 인간은 이해할 수 없는 시장 시스템의 작동에 믿음을 가지라고 강조했다. 사실상 사회정의 같은 것은 잊어버리고 ‘오로지 시장’만 보라고 주장했다.

 

시장경제와 자본주의는 제1차 세계대전 직전과 1920년대에 잠시 미국과 유럽을 중심으로 급속한 성장을 이뤘지만, 이후 대공황과 극심한 불평등, 혼란도 함께 가져왔다. 장기 20세기 동안 시장경제의 문제점을 해결하겠다며 다양한 아이디어가 나타났고 현실에서 격돌했다.

 

불평등과 혼란을 없애겠다며 20세기 전반기에는 이탈리아 베니토 무솔리니의 파시즘과 러시아 블라디미르 레닌의 현실 사회주의가 등장하기도 했다. 하지만 모두 알다시피, 이들의 실험은 최악의 실패로 끝났다. 철학자 이사야 벌린은 “완벽한 해결책을 만들겠다고 단호하게 밀어붙이는 모든 시도는 고통과 환멸, 실패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뉴딜정책을 펼친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 위키피디아 제공

시어도어 루스벨트와 존 케인스, 마거릿 대처 등도 차례로 등장했다. 헝가리 출신의 사회사상가 칼 폴라니도 사회정의는 잊으라고 한 하이에크와 달리 재산을 소유하지 못한 사람들도 사회적 권력을 가져야 하고, 그들의 필요와 욕구를 고려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저자는 경제적으로 가장 성취가 좋았던 해법은 제2차 대전 이후 미국과 유럽을 휩쓴 사회민주주의적 정책이었다고 분석한다. 서구 각국은 소득 재분배를 위해 소득 부조와 누진세를 적용하는 데 초점을 맞췄고, 이에 따라 전후 1946년부터 1976년까지 미국의 1인당 실질 GDP 증가율은 연평균 3.4%를 기록했다. 저자는 대공황이 자유방임 시스템에서 좀더 관리되는 혼합경제로 이동하게 했다며 “케인스의 축복을 받은 하이에크와 폴라니가 강제 결혼”으로 재미있게 해석하기도 했다.

 

빠른 성장과 균등한 분배를 달성한 사회민주주의적 정책은 강력했지만, 어느 순간 성장이 둔화하고 고용이 줄면서 갈등이 증폭했다. 특히 1970년대 오일 쇼크 등으로 인플레이션 위기가 결정적인 기폭제 역할을 했다.

 

미국의 레이건 대통령과 영국의 대처 총리는 이에 사회민주주의적 정책으로부터 급격하게 신자유주의로 선회했다. 각종 규제를 철폐해 고용과 임금을 올리려고 했고, 부자들의 세금을 낮춰서 투자와 기업활동을 촉진하려 했다. 하지만 신자유주의 정책은 사회민주주의 정책보다 성공하지 못했다. 큰 폭의 재정적자가 일상화됐고, 미국 제조업이 무너지고 러스트 벨트가 나타나게 됐다. 그럼에도 레이건 대통령이 사회주의 몰락의 공을 독차지함으로써 신자유주의는 한동안 더 세계에서 머물렀다.

 

1990년대 시작된 정보기술의 발전과 인터넷의 보급으로 경기침체나 인플레이션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생산성 상승률은 제2차 대전 이후 황금시대에 근접할 정도로 높았다. 1976년부터 1996년까지 평균 2%에 그쳤던 미국의 1인당 실질 GDP는, 1996년부터 2006년까지 다시 연 2.6%로 상승했다.

2007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초래한 리먼 브러더스 파산. 위키피디아 제공

하지만 첨단 기술의 발전으로 쌓아온 안정은 2007년 글로벌 금융위기로 촉발된 경기 침체를 겪어야 했다. 경제위기에 주요 국가들이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면서 장기 20세기는 마침내 2010년에 끝났다. 2006년부터 2016년까지 미국의 1인당 실질 GDP는 0.6%로 쪼그라들었다.

 

“첫 번째 변화는 1990년 독일과 일본의 고도로 생산적이고 혁신적인 산업이 미국의 기술 우위에 성공적으로 도전하면서 미국 예외주의의 토대를 약화시켰을 때 나타났다. 두 번째 변화는 2001년으로, 수세기 동안 잠잠했던 광신적 종교적 폭력성이 다시 분출된 사건이다. 전문가들이 심각한 표정으로 ‘문명간의 전쟁’이라는 견해를 내놓았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세 번째 변화는 2008년에 시작된 대침체로, 우리가 1930년대의 케인스주의의 교훈을 모두 망각했을 뿐만 아니라 경제 회복을 위해 필요한 일들을 할 역량도 의지도 부족하다는 것이 분명해졌다. 네 번째 변화는 대략 1989년 이후 지금까지 전 세계가 글로벌 기후위기에 단호하게 대처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이 네 가지 사건들이 하나로 합쳐진다면 이후의 역사는 그 이전과는 분명히 다를 것이며, 그것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새롭고 전혀 다른 거대한 내러티브가 필요하게 될 것이다.”(660쪽)

 

지난 20세기의 경이적인 경제성장은 우리 인간들이 간절히 희구한 유토피아를 가져다주었을까. 저자는 20세기의 경제성장은 인류에게 결코 유토피아를 안겨주지 못했다고 답한다. 아니 오히려 혼란스럽고, 이젠 유토피아로 가는 길 위에 있는지도 불확실해졌다고 냉정하게 평가했다.

 

마치 도마 위에 재료를 놓고 멋지게 요리하듯 저자는 수많은 쟁점과 깨알 같은 디테일을 잘 요리한다. 그리하여 경제사의 주요 사건이나 경제학사의 기라성 같은 인물들은 마치 영화의 조연처럼 빛난다. 1, 2차 세계대전, 대공황, 냉전, 사회주의 몰락, 무솔리니, 처칠, 루스벨트, 스탈린, 리홍장, 덩사오핑, 맬서스, 하이에크, 케인즈, 폴라니, 마셜 플랜, 볼 파커....


김용출 선임기자 kimgija@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