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ECD ITF. OECD(경제협력개발기구)야 우리도 가입한 선진국들 모임이니 알겠고. ITF(International Transport Forum), 국제교통포럼이라니.
OECD에서 교통 분야 이슈를 다루고 담론을 주도하는 장관급 협의체란다. 말이 어렵다. 각국 교통 장관들이 매년 5월 독일 라이프치히에 모여 철도 규제와 도로 안전, 접근성 및 환경 기준, 국제 도로 운송 서비스, 시장 자유화와 같은 다양한 교통 정책을 논의한다. 스위스 다보스의 연례 세계경제포럼에 빗대 ‘교통의 다보스 포럼’이라고 불린다.
프랑스 파리에 사무국을 둔 ITF에서 사무총장은 A1∼A7 직급 중 A7의 최고 직급이다. 세계 각국 출신의 직원 70여명의 업무를 총괄 지휘한다. 국토교통부 교통정책조정과장 출신의 김영태(57) 사무총장이 바로 그 직급에 있다.
2017년 7월 그의 ITF 사무총장 당선은 깜짝 놀랄만한 일이었다. 세계 각국의 전문가 100명이 후보로 나섰다. 회원국 교통 장관들을 상대하는 자리로, 경쟁자 중에는 전직 장관도 있었다. 서류심사와 1차 면접을 통과해 쇼트 리스트 3명에 들었고 2차 면접을 거쳐 회원국 장관들 투표로 선출됐다. 교통과 도시정책, 해외건설 등을 담당한 24년의 공직 경험과 프랑스 유학과 주미대사관 근무에서 익힌 국제적 감각, 프랑스와 영어를 모두 구사할 수 있는 외국어 능력이 좋은 평가를 받았다. 법무법인 율촌 국제분쟁팀 공동팀장인 김용상 외국변호사 등과 함께 미국 생활에서 유용한 표현을 중심으로 한 ‘미국 생활 영어’라는 책을 2015년 펴내기도 했다.
2022년 5월 그는 5년 임기의 재선에 성공했다. 최근 한국에 온 김 사무총장을 만나 세계의 교통 정책 현안과 국제기구 진출을 위한 조언 등을 들었다.
―ITF는 말 그대로 국제교통포럼인데, 세계은행 같은 국제기구와 어떻게 다른가.
“세계은행은 개발도상국이라든지 저개발국의 인프라나 각종 시설 건설 등에 투자하는 기관이다. 우리는 포럼이라는 이름처럼 직접 개발에 투자하지 않고 지식 제공자 또는 싱크탱크로서 교통 관련 전문가들과 고위급 정책 관리자들이 모여 미래 방향을 설정하는 역할을 한다. 강력한 모델링 팀(modeling team)을 보유하고 있다는 점이 다른 국제기구와 다른 점이기도 하다.”
―모델링 팀은 어떤 개념인지.
“(어떤 정책이나 방향을 위한) 근거를 만든다든지 정교한 분석을 바탕으로 권고하고 여러 정보를 공유하는 플랫폼 역할을 한다고 보면 된다.”
―사무총장의 역할이 중요해 보인다. 매년 포럼 주제를 어떻게 정하는가.
“ITF 정관에 3가지 큰 개념이 제시돼 있다. ITF의 목표가 교통 정책에 대한 대중의 인지도를 높이고 경제, 환경, 사회와 관련한 교통의 중요성에 대한 이해를 돕는 것이다. 포럼 주제도 사회적, 경제적, 환경적 측면에서 이뤄진다. 지난해 주제는 사회적 측면이었고 올해에는 지속가능한 이동수단(sustainable mobility)이었으니 내년에는 경제적인 측면이 강화될 것이다. 지정학적인 분쟁이나 불확실성 상황을 극복하기 위한 플랜B 플랜C와 같은 대안, 회복력(resilience) 같은 주제들이 다뤄질 것으로 본다.”
―사무국이 파리에 있는데, 포럼은 왜 매년 라이프치히에서 열리나.
”자주 듣는 질문이다. 1953년 출범한 유럽교통장관회의(ECMT)가 2006년 ITF로 바뀌면서 정관을 만들 때 독일이 자기네가 회의를 조직하고 준비하는 예산을 낼 테니 장관 총회는 독일에서 하는 조항을 넣자고 했다고 한다. 프랑스가 동의해 주는 대신에 사무국은 파리에 두자고 해서 이뤄진 것이다.”
―독일이 비용을 지원해 유치했다는 게 흥미롭다.
“매년 장관 총회에 300만 유로 정도 들어가는데 독일이 120만 유로(약 18억원)를 부담한다. 당시 독일에서 영향력있는 당국자가 동독 출신이었다는데 옛 동독 지역 경제를 활성화하자는 뜻에서 라이프치히로 결정한 것 같다. 2008년 장관 회의가 처음 열린 이후 한번도 예외없이 라이프치히에서 열렸다. 중앙정부가 자금을 주지만 결국 그 돈은 독일 내에서 모두 쓰인다. 매년 1200∼1400명이 참석하므로 남는 장사가 아닐까 생각한다. 우리도 지방 경제 활성화 차원에서 참고할 만하다.”
―장관 총회에 누가 참석하는지.
“원한다고 누구나 참석할 수 있는 건 아니고 우리가 초청한다. 회원국 대표단과 카운터파트, 전문가 집단이 참석한다. 매년 장·차관급 인사가 40~50명은 온다. 초청 대상이 반드시 ITF 회원국만은 아니고 어느 나라나 초청은 가능하다. 다만 회원국 중 한 곳이라도 반대하면 안된다.”
―북한도 초청받은 적 있는지.
“몇 년전 러시아가 북한을 초청하자고 제안한 적 있었다. 10여개국이 반대해서 이뤄지진 못했다.”
―ITF가 유럽 국가들의 도로 화물수송 국가별 쿼터를 배분하는 게 눈에 띈다.
“ECMT 시절의 산물이다. 유럽이 단일 시장이다보니 일관성을 유지하면서 각종 규제를 도입한다. 이 쿼터가 처음 등장한 게 1970년대인데 다자간(multilateral) 쿼터다. 화물수송이 국경을 넘을 때 해당 국가끼리 트럭이 어떻게 지나가야 하는지 등을 정해야 하는데 양자간(bilateral) 협약이다. 유럽 국가들이 행정적인 부담을 줄이기 위해 다자간 쿼터를 도입한 거다. 해당 국가의 경제 수준이나 트럭 수요, 물동량 등을 감안해 쿼터를 배정하니까 화물 기사는 협약에 따른 허가만 있으면 어디든 갈 수 있다.”
―ITF가 하는 업무가 아직도 쏙 잡히지 않는다.
“규제 기관이 아니라서 쿼터 빼고는 규제가 없고, 장관 총회에서 매년 선언문을 채택한다. 이 선언은 미래 주제에 관한 정책 방향을 같이 설정하는 것이라서 이걸 보면 앞으로 교통 정책이 어느 방향으로 가겠구나 하고 예측해 볼 수 있다. 이 외에 ITF는 매년 30개 이상의 보고서를 낸다. 주제별로 다양한 사례 비교분석을 담고 권고를 제시한다. ”
―싱크탱크 성격이 확인이 드러난다.
“실질적으로 직원의 절반 가량이 연구원이다.”
―장관 총회의 선언문은 회원국에 구속력을 지니는지.
“ 구속력은 없다. 유럽연합(EU) 결정은 유럽 각국에 의무를 부과하지만 우리는 방향을 설정할 뿐이다. 하지만 우리 보고서 내용이 EU 등의 정책에 많이 반영된다. EU가 규제를 만들 때 우리 보고서나 논의 동향을 많이 참고한다.”
―아웃룩(outlook)과 디렉토리(directory)도 발간하던데.
“요즘 탈화석연료, 친환경 교통에 초점이 맞춰져 있는데, 정작 기후변화협약 협상장에는 각국 교통장관이 나가지 못한다. 사실 지구상에서 발생하는 CO₂의 25%를 교통에서 차지한다. 그런데 감축 목표나 규제 방안을 논의하면서 교통장관은 배제된채 환경부장관과 외교부장관들이 나가서 협의하는 구조다. 그러다보니 설정한 목표와 현실이 엇박자가 날 수밖에 없다. 감축 수단이나 목표에 대한 논의는 의욕적으로 하는데 잘 안된다. 매년 반복한다. ITF가 구체적으로 디렉토리를 제공할 필요가 있겠다 싶어 각국이 쓸 수 있는 정책 수단을 80개 정도의 목록(directory)으로 만들어 제시한다. 감축 효과를 기준으로 수단1, 수단2, 수단3 이렇게 구분해 뒀다.”
―언뜻 생각해 볼 수 있는 정책 수단이 뭘까.
“전기충전소 시설을 확충하는 것도 있고 친환경 연료로 대체해 쓰는 것도 있다. 그런 구체적 목록이 디렉토리고 아웃룩은 2050년을 상정해 교통 동향을 예측하고 시나리오별로 분석해 놓은 자료다. 아웃룩에서는 어느 수준의 노력으로 어느 정도 성취감을 얻을 수 있는지를 시나리오별로 제시한다.” <<[박희준의 인물화(話)⑤-2김영태 OECD 국제교통포럼(ITF) 사무총장]으로 이어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