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메뉴 보기 검색

‘초연결 세계’의 재앙… MS 오류에 통신·항공·금융·방송 마비 대란

19일 마이크로소프트(MS)의 클라우드(가상 서버) 서비스에서 기술 오류가 발생하며 전 세계적인 항공·통신·금융·의료 시스템 먹통 사태가 발생했다. 미국 사이버 보안업체 ‘크라우드스트라이크’는 자사 바이러스 백신 소프트웨어를 업데이트하는 과정에서 MS 윈도 운영체제(OS)와 충돌을 일으켜 오류가 발생했다고 밝혔다. 

 

이날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MS의 기술 오류로 인해 미국, 영국, 독일, 네덜란드, 시드니, 두바이, 홍콩, 일본 등 전 세계 공항에서 발권 및 체크인 시스템이 중단됐고, 병원, 은행, 방송사 등에서도 전산망 장애가 이어졌다. 

19일(현지시간) 독일 쇤펠트에 있는 베를린 브란덴부르크 공항에서 많은 승객이 장애로 작동하지 않는 전광판 주변에 모여 있다. AP뉴시스

◆비행기 이륙 중단에 결항 속출

 

가장 큰 피해를 본 곳은 공항이다. 

 

미국 연방항공청(FAA)은 아메리칸·유나이티드·델타 3개 항공사가 이날 대규모 전산 장애를 겪고 1시간가량 모든 항공편의 운항을 중단했다고 밝혔다. 독일 베를린 브란덴부르크, 뒤셀도르프 공항을 비롯해 스위스 취리히, 영국 런던 개트윅, 스코틀랜드 에든버러,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스히폴 등 유럽 주요 공항과 홍콩·일본 등 아시아 지역 공항에서도 이·착륙 및 발권 시스템에 문제가 발생했다.

 

온라인 체크인 시스템이 마비되면서 이륙 자체가 취소되거나, 항공권 발권 지연이 속출했다. 일부 항공사 직원들은 수기로 체크인을 진행했고, 항공편이 결항한 승객들로 가득 찬 공항은 아수라장으로 변했다. 여름 휴가를 떠나려다 발이 묶인 승객들의 사연도 전해졌다. 

 

◆은행 전산망 장애 등 주식 거래도 영향

금융권도 영향을 받아 주식 거래까지 차질이 빚어졌다. 

 

영국 런던증권거래소(LSE)의 데이터 플랫폼도 영향을 받아 런던증시 주요 지수인 FTSE 100은 평소보다 20분 지연된 8시20분(현지시간)부터 산정됐다고 로이터는 전했다. 주식 매매에 실패한 투자자도 나타났다. 이탈리아 밀라노 증권거래소에서는 벤치마크 지수인 FTSE MIB 지수 산정이 약 32분간 지연됐다.

 

호주에서는 NAB·커먼웰스·벤디고 등 주요 은행 시스템에서 장애가 발생했다. 남아프리카공화국 캐피텍은행에서도 전산 장애가 보고됐다.

 

◆의료·긴급 전화·방송통신 먹통

 

영국에서는 공공의료시스템인 국민보건서비스(NHS) 전산망도 먹통이 됐다. 수술실의 의료진이 환자의 의료 기록을 열람하지 못했고, 환자들은 진료 예약을 하지 못해 발을 동동 굴렀다. 독일 슐레스비히홀슈타인 대학병원은 이날 예정된 수술을 취소하고 응급실을 폐쇄한다고 밝혔다.

 

미국 알래스카주는 911 긴급 전화망이 끊겼다. 알래스카 경찰청은 “기술 오류로 인해 주 전역에서 911과 비응급 콜센터가 작동하지 않고 있다”며 긴급 상황에 처한 주민들은 경찰이나 소방서로 전화하라고 알렸다. 

 

방송사와 이동통신사도 업무에 차질이 생겼다. 영국 스카이뉴스의 데이비드 로데스 회장은 자신의 엑스(X·옛 트위터)에 “오늘 아침 생방송을 내보내지 못하고 있다”며 시청자에게 사과했다. 

 

◆백신 소프트웨어 업데이트 결함 탓 

 

“역사상 최대 규모의 IT 대란”(By 보안 컨설턴트 트로이 헌트)을 일으킨 이번 사태는 백신 소프트웨어 업데이트 결함 탓인 것으로 밝혀졌다.

 

미국 사이버 보안업체 크라우드스트라이크의 조지 쿠르츠 최고경영자(CEO)는 이날 “(MS) 윈도의 단일 콘텐츠 업데이트에서 발견된 결함 때문에 문제가 발생했다”며 “사이버 공격이나 보안사고는 아니다”라고 밝혔다.

 

문제를 일으킨 크라우드스트라이크의 백신 소프트웨어 ‘팔콘 센서’는 한국에서는 잘 이용되지 않는 제품인 탓에 국내 피해는 상대적으로 미미했던 것으로 분석된다. 

 

◆“‘초연결세계’의 취약성 드러나” 

 

이번 사태가 ‘초연결사회’를 넘어선 ‘초연결세계’의 취약성을 드러냈다는 지적이 나온다. 특정 소프트웨어에 대해 세계 경제가 얼마나 취약하게 의존하고 있으며, 문제가 발생했을 때 그 영향과 파급력이 얼마나 거대한지를 보여준다는 것이다. 

특히 클라우드의 취약점인 단일장애지점(SPOF)이 지적된다. 하나의 서버에 대규모 데이터를 저장하는 클라우드는 시스템을 분산하는 것보다 관리가 편리하고 비용의 이점을 갖지만, MS와 같은 시장지배력이 독점적인 회사의 시스템에 문제가 생기면 연결된 전 세계의 인프라가 동시다발로 마비되기 때문이다.


이지안 기자 easy@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