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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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행이 친 골프공에 30대女 영구실명…왜 캐디만 유죄? [사건 속으로]

동반자 티샷 공에 30대 골퍼 ‘안구적출’ 평생 장애
캐디만 구속…1심 “기본 매뉴얼 안 지킨 과실 인정”
캐디 항소…2심 “상당기간 구금돼 반성” 집유 감형
“대표 등 처벌해야” 피해자도 항고…재기수사 명령
강원도 원주의 대규모 골프장에서 발생한 실명 사건. JTBC 보도화면 갈무리

 

강원도 한 골프장에서 카트에 타고 있던 여성 골퍼가 일행의 골프공에 맞아 실명한 사고와 관련 1심에서 법정 구속됐던 캐디가 항소심에서 집행유예를 선고받고 풀려났다.

 

해당 사건은 2021년 10월3일 오후 1시쯤 원주의 한 골프장 4번 홀에서 발생했다. 당시 베테랑 캐디 A(52·여)씨는 피해 여성 B(34)씨를 포함한 여성 2명과 남성 2명 등 4명의 라운딩을 도우며 티박스 좌측 10m 전방에 카트를 주차한 뒤 남성 골퍼에게 티샷 신호를 했다.

 

소위 ‘백티’ 에서 남성 2명이 먼저 순서대로 친 티샷이 모두 전방 좌측으로 날아가 OB(Out of Bounds)가 된 상황에서 멀리건 기회를 얻어 다시 친 공이었다. 그런데 해당 공이 또다시 전방 좌측의 카트 방향으로 날아가 카트 안에 있던 B씨 눈에 맞았다. B씨는 이로 인해 영구적인 상해를 입었고, 끝내 안구를 적출하게 되면서 큰 육체적·정신적 고통을 받았다.

 

타구자는 초보였고, 골프장은 기본 안전수칙과 반대되는 구조였던 것으로 조사됐다. 사고가 발생한 홀은 티박스 전방 왼쪽은 산지, 오른쪽은 낭떠러지 지형이기 때문에 해당 골프장 공식 홈페이지에서도 ‘왼쪽을 보고 티샷하라’고 안내하고 있다. 카트 주차 지점이 티박스 왼쪽 앞에 위치해 있어 왼쪽을 보고 티샷을 할 경우 공이 카트로 향해 안전사고가 발생할 가능성이 컸다. 실제 이 사고 직후 해당 골프장은 골프장 코스 변경 공사를 시행하기도 했다.

사건이 발생한 골프장 4번홀 티박스와 카트 위치. 연합뉴스

 

이에 B씨는 캐디 A씨뿐 아니라 골프장 경영진, 남성 골퍼 등을 고소했다. 경찰은 구조의 특이성으로 더 각별히 주의를 기울여 운영했어야 함에도 일반적인 안전 조치만 한 것은 ‘업무상 과실’에 해당한다고 판단, 캐디와 대표이사 등을 업무상 과실치상 혐의로 검찰에 송치했다.

 

하지만 검찰은 캐디에게만 책임을 물었다. A씨만 업무상 과실 치상 혐의로 재판에 넘겼고, 대표이사와 남성 골퍼 등 4명은 과실이 없다고 보고 불기소했다. 골프장은 사전에 캐디들에게 안전교육을 했고, 해당 코스 역시 자치단체 승인을 받았으며, 타구자는 캐디 안내에 따라 공을 쳤기 때문에 혐의가 없다고 봤다. 검찰은 불기소결정서를 통해 “피의자들이 이 사건 발생에 대한 예견 가능성이 있다거나 주의의무 위반을 단정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당시 법조계에서도 검찰 판단이 매우 이례적이라는 평이 나왔다.

 

1심 재판부도 해당 홀 티박스 뒤쪽에 카트를 주차할 수 없는 이례적인 구조였다는 점을 인지했으나, A씨에게 구금 6개월을 선고하고 법정구속까지 했다. 1심을 담당한 춘천지법 원주지원 형사2단독(박현진 부장판사)은 “A씨는 경력 20년 이상 베테랑으로서 사건 발생 가능성을 충분히 예상할 수 있었고 기본적인 매뉴얼을 지키지 않은 채 안일하게 대처한 점이 인정된다”고 판시했다. ‘카트를 세우고 손님들은 모두 내리게 한 뒤 플레이어의 후방에 위치하도록 해야 한다’는 매뉴얼 등에 어긋나게 경기를 운영한 A씨 과실이 인정된다는 취지다.

 

이 판결은 당시 특수고용직인 캐디의 노동환경을 간과했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노동계는 “고객서비스와 안전을 담당하는 힘없는 노동자들이 사업장에 안전상 구조적 결함 등이 있더라도 사고 책임을 홀로 떠안는 선례가 됐다”고 지적했다.

1심에서 법정 구속됐던 50대 캐디가 항소심에서 감형 받은 19일 춘천지법 밖으로 나와 동료들 품에 안겨 울음을 터뜨린 모습. YTN 보도화면 갈무리

 

이후 A씨는 1심 판결에 불복해 항소했다. 피해자 B씨도 검찰의 불기소 처분에 불복해 항고했다. 피해자 B씨 측 변호인은 “피해자는 현재 왼쪽 눈을 의안으로 살아가고 있다. 피해자의 이러한 상해는 피의자들의 과실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발생한 것”이라며 “피의자들에 대한 검사의 불기소 처분은 이유 없으므로 피의자들을 반드시 기소해 엄벌에 처해달라”고 촉구했다.

 

이에 19일 춘천지법 형사1부(재판장 심현근 부장판사)는 업무상과실치상 혐의로 법정구속된 캐디 A씨에게 원심 판결을 파기하고 금고 6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A씨가 상당 기간 구금돼 반성하고 있고 동종 범죄로 처벌받은 적이 없다”며 “원심 선고가 무거워 부당하다고 판단된다”고 양형 이유를 밝혔다. 이날 항소심 선고에서 감형 받은 A씨는 재판장 밖으로 나오며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현재 춘천지검 원주지청은 앞서 서울고검 춘천지부 고검의 재기수사 명령에 따라 불기소했던 골프장 대표와 관리자, 타구자 등을 대상으로 재수사를 벌이고 있다. 재기수사 명령은 상급 검찰청이 항고나 재항고를 받아 검토한 뒤 수사에 미흡한 부분이 있었다고 판단했을 때 다시 수사하라고 지시하는 절차다.


김수연 기자 sooya@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