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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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 전쟁·군사박물관 대표들이 독도에 모인 까닭은? [김태훈의 의미 또는 재미]

독도는 왜 해군이나 해병대가 아닌 경찰이 주둔하며 섬을 지키느냐고 묻는 이가 더러 있다. ‘군대를 두면 공연히 일본을 자극할까봐 그렇다’라는 게 답인 줄 아는 사람이 많을 법하다. 우리 땅에 군대를 배치하든 경찰을 배치하든 이웃나라 눈치를 볼 필요가 뭐가 있겠나. 사실 독도는 1954년부터 70년간 줄곧 경찰이 지키고 있다. 당시는 한·일이 국교를 정상화하기 전이었고 자연히 양국 관계는 지금보다 훨씬 더 나빴다. 경비 주체가 군대에서 경찰로 바뀌었다면 모를까 독도에 군대 말고 경찰이 있다고 시비를 걸 일은 아니다.

 

독도 의용수비대 홍순칠 대장. 국가보훈부 블로그

1954년 이전에는 어땠을까. 국가보훈부에 따르면 민간인들이 자발적으로 구성한 ‘독도 의용수비대’라는 조직이 독도를 지켰다. 홍순칠(1929∼1986) 대장을 비롯해 총 33명의 대원이 있었다고 해서 곧잘 ‘33인의 영웅’으로 불린다. 이들은 6·25전쟁 기간 일본 어선과 순시선 등이 수시로 독도 근해에 출몰하는 것에 격분해 수비대를 조직했다고 한다. 무기와 각종 장비는 사비를 들여 장만했다. 그들이 독도에 상륙한 것은 전쟁 말기인 1953년 4월20일이었다. 식수조차 구할 길 없는 독도에서 온갖 고초를 겪으면서도 일본 선박들이 우리 영해를 침범하는지 눈을 부릅뜨고 감시했다.

 

이후 독도 경비 임무가 경찰에 맡겨지자 수비대는 그들이 쓰던 장비 전부를 경찰에 인계한 뒤 섬을 떠났다. 나라가 할 일을 개인들이 자기 돈 쓰고 고생까지 해가며 떠안은 셈이다. 1966년 박정희정부가 홍순칠 대장에게 근무공로훈장을, 그 휘하 대원 11명에겐 방위포장을 각각 수여한 것은 당연한 조치였다. 이후 김영삼정부 시절인 1996년 이미 고인이 된 홍 대장에게 보국훈장 삼일장이, 나머지 대원들에겐 보국훈장 광복장이 각각 추서됐다. 이들의 업적에 대해 보훈부는 “자발적인 국토 수호 의지로 독도에 대한 우리 영토 주권을 단절 없이 지켜내는 토대를 마련했다”고 평가한다.

 

최근 경북 울릉군 독도의용수비대기념관에서 열린 ‘전쟁·군사박물관 협력망 워크숍’ 참가자들이 우리 땅 독도를 배경으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전쟁기념사업회 제공

33인의 영웅을 기리고자 2017년 독도와 가까운 울릉도에 독도의용수비대기념관이 들어섰다. 이곳에서 지난 16∼18일 사흘간 ‘전쟁·군사박물관 협력망 워크숍’이 열렸다. 이 협력망에는 전쟁·군사를 주제로 한 전국의 박물관 및 기념관 54곳이 참여 중인데, 서울 용산 전쟁기념관의 운영 주체인 전쟁기념사업회가 협력망을 주도하고 있다. 해군사관학교박물관, 경찰박물관, 육군박물관, 칠곡호국평화기념관 등이 참여한 이번 워크숍에선 국내 전쟁·군사박물관의 미래 발전 방향을 논의했다고 한다. 백승주 전쟁기념사업회장 등 워크숍 참가자들이 직접 독도를 방문한 것도 뜻깊은 일이 아닐 수 없다. 하늘에 있는 홍순칠 대장 등 33인 또한 기뻐했을 것만 같다.


김태훈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