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일 일본 도쿄 지요다구 아키하바라역 인근 광장에 열린 고이케 유리코(小池百合子) 도쿄도 지사의 유세 현장은 흥미로웠다. 그는 “(지난 임기) 8년간 146개의 정책 목표 중 90.3%, 139개를 실현하고 추진 중”이라며 지지를 호소했다. 유세를 지켜보는 도쿄시민들의 모습은 차분했다. 현직 지사로 당시 시점에서 3선에 도전하는 가장 강력한 후보였으나 지지의 표시는 휴대전화를 들어 사진을 찍거나 간간이 “고이케 상”이라고 외치는 정도였다.
오히려 두드러진 건 ‘안티 고이케’였다. 공약달성률 90%를 주장하는 고이케 지사의 연설이 한창인 와중에 ‘공약달성 0 고이케’라고 적힌 커다란 종이를 들고 유세 현장을 오가는 이들이 있었다. 여러 가지 다양한 색상의 현수막에는 ‘사요나라(안녕히 가세요) 고이케’라는 글자가 두드러졌다. 한 여성은 ‘극우 거부’라고 쓴 스케치북만 한 종이를 들고 있었다. 압권(?)은 뭐라고 하는지 알아듣기 힘들 정도로 고함을 내지르는 40대 정도로 보이는 한 남성이었다. 30여분간 진행된 유세 내내 현장 이곳저곳을 오가며 자신이 고이케 지사를, 고이케 지사가 이끄는 도쿄를 얼마나 싫어하는지를 표현하고 있었다. 전날 신주쿠에서 본 이시마루 신지(石丸伸二) 후보의 유세 현장에는 이런 사람들이 없어 ‘최강자의 숙명인가’ 싶어지기도 했다.
흥미로운 지점은 누구도 이들을 제지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공약달성 0’, ‘사요나라 고이케’, ‘극우 거부’를 주장하는 이들은 유세 내내 자유로웠다. 경찰과 선거운동원 수십 명이 유세장에 있었지만 누구도 그들을 막지 않았다. 딱 1명, 내내 고함을 지르던 40대 남성이 제지의 대상이었다. 그러나 정확히 말하면 ‘제지’라기보다는 ‘요청’이었다. 선거운동원 한 명이 이 남성에게 여러 차례 다가가 지나치게 큰소리를 내는 것은 참아달라고 미소를 띤 표정으로 부탁했다.
고이케 지사의 유세 현장에 ‘고이케 반대’는 자연스럽게 표현됐다. 불편했을 것이다. 고함을 지르는 남성에게 자제를 부탁한 선거운동원의 미소는 최소한의 예의를 표현한 것일 뿐 진심일 리가 없다. 유세를 지켜보는 이들 중엔 고이케 지지자들도 꽤 있었겠지만 거부감을 분명하게 표현하는 이들도 없었다. 명시적인 문제제기는 고이케 지사가 3선에 성공한 뒤 선거 과정을 되돌아보며 이런 행위를 방지할 시스템의 필요성을 언급한 게 다였다.
민주주의의 기본은 다양한 의견의 공존이다. 때로 격렬하게 충돌하기도 하지만 나와 다른 생각이 있을 수 있음을 인정하는 데서 출발한다. ‘고이케 반대’가 적극적으로 표현된 고이케 지사의 유세 현장에서는 그것이 지켜졌다. 충돌하는 의견이 토론을 거쳐 보다 나은 합의를 도출하기 위한 기본은 갖추었다는 인상을 받았다.
‘다름’을 혐오 혹은 배척의 대상으로 두는 경우를 종종 본다. 폭력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한국의 정치 현실이 꼭 그렇다. 지난 15일 국민의힘 당대표 선거 합동연설회에서 일어난 폭력 사태 같은 게 대표적인 사례다. 어떠한 반대도 용납하지 않으려는 듯한 소위 ‘개딸’로 대표되는 야권의 상황도 마찬가지다. 다르다는 것이 혐오의 대상이자 폭력의 원인이 되는 한국 정치, 일상화되고 있는 것은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