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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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당서 몰래 오르간 치다 수녀님이 지진 난 줄 알고 놀라”… ‘오르간 오딧세이’ 무대 오르는 이민준

“오케스트라 지휘자처럼 이 거대한 악기를 내가 지배하는 느낌이 들어요. 또 스톱(스탑) 조합으로 엄청 작은 소리부터 큰 소리까지 무궁무진한 소리를 만들어내니 해방감이나 짜릿함도 있습니다.”

 

지난해 한국국제오르간콩쿠르 초대 우승자로 30일 서울 송파구 롯데콘서트홀 ‘2024 오르간 오딧세이’ 무대에 오르는 이민준(26)이 밝힌 파이프 오르간의 매력이다. 해외 대규모 연주홀이나 롯데콘서트홀과 부천아트센터 등에서 볼 수 있는 대형 파이프 오르간은 ‘악기의 제왕’으로 불린다. 웅장한 자태에다 다양한 음색을 결정하는 스톱 조합으로 오케스트라 선율을 표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오르가니스트 이민준이 22일 롯데콘서트홀 무대에서 오르간 앞에 앉아 포츠를 취하고 있다. 롯데콘서트홀 제공

지난 22일 기자들과 만난 이민준은 국내 관객들에게 ‘오르간은 어렵다’는 편견을 해소해줄 공연이 되도록 준비 중이라고 했다. 그는 “소위 ‘띠로리∼’로 시작하는 바흐의 명곡 ‘토카타와 푸가’가 바로 대표적인 오르간 곡”이라며 ”이번 공연을 본 관객들이 오르간도 피아노처럼 편하게 느낄 수 있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바그너 ‘발퀴레의 기행’과 뒤뤼플레 ‘시실리안느’ 오르간 연주를 비롯해 피아니스트 김경민과 함께하는 리스트 ‘헝가리안 랩소디 2번’과 거슈윈의 ‘랩소디 인 블루’ 협연 무대가 예정돼 있다. 

 

13세에 금호 영재 피아노 콘서트 독주회로 데뷔한 이민준은 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 피아노를 전공하던 중 바흐 오르간 곡(전주곡과 푸가 내림 마장조, 작품번호 552)에 매료돼 부전공으로 오르간을 공부했다. 2020년에는 독일 뤼벡 국립음대로 가 세계적 오르가니스트 아르비드 가스트에게 배웠다. 늦게 시작했지만 오르간은 어렸을 때부터 친숙한 악기였고, 피아노 연주 기법이 도움돼 빠르게 익힐 수 있었다. 

“초등학교 1∼2학년 시절 다니던 성당에서 오르간을 한 번 쳐보고 싶어 반주자 선생님 옆에 앉아 구경하곤 했어요. 미사가 끝나면 보통 오르간을 잠궈 놓는데, 열쇠를 찾아서 (몰래) 오르간을 치다 수녀님이 지진난 줄 알고 놀라 올라오신 일도 있습니다.”(웃음) 그는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13년 동안 성당 새벽 미사 때 오르간을 연주했다.

 

독일로 유학을 떠난 이듬해 스위스에서 열린 제10회 생 모리스 국제 오르간 콩쿠르에서 우승과 청중상을 수상하며 단숨에 주목받았다. 2022년에는 북스테후데가 오르가니스트로 일했던 뤼벡의 성 마리엔 교회 독주회를 시작으로 나움부르크, 묄른, 생 모리스, 로잔 등 역사적 오르간이 있는 장소에서 연주했다. 

파이프 오르간이 위용을 자랑하는 롯데콘서트홀 전경.

그렇다고 피아노를 관둔 것은 아니다. 지난달 뤼벡 음대에서 오르간 박사과정까지 마친 이민준은 피아노 전문연주자과정도 밟고 있다. “언젠가 오르가니스트와 피아니스트로서의 모습을 보여드릴 날이 있을 겁니다. 음악을 진실하게 대하고 (상처받은) 사람들에게 음악으로 위로해줄 수 있는 음악가가 되는 게 목표예요.”


이강은 선임기자 kelee@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