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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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사증 허용 국제자유도시 맞나요”… 크루즈 관광객, 제주 입국에만 3시간 허비 [밀착취재]

3∼4시간 체류…지갑 열 틈 없다
“외국 주요 기항지 15분 소요”

“무사증 입국 허용한 국제자유도시 맞나요?”

 

지난 17일 오후 제주 서귀포시 강정민군복합항. 중국 상하이에서 출발한 13만6000t급 대형 크루즈가 중국인 관광객 3000여 명을 태우고 입항했다. 이들은 기항지 관광을 위해 배에서 내려 입국장까지 1.2㎞ 거리를 20∼30분가량 걸어서 이동하고 대면심사를 받았다. 도보 이동 통로에 무빙워크가 설치돼 있지만 출구쪽 병목현상을 줄이기 위해 중간중간 작동을 멈추기 일쑤다. 이날 강정항에는 대형 크루즈 2대가 동시 접안해 출입국장이 더욱 혼잡했다.

 

보안 검색은 선박과 터미널에서 이중으로 진행됐다. 하선 순서에 따라 입국장을 빠져 나오기까지 1시간30분에서 길게는 3시간까지 걸렸다. 제주도 국제크루즈 관광객의 입국 절차가 복잡해 그만큼 체류시간이 짧아 지갑 열 틈이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실제 강정항에는 유인 심사대 24대가 있지만 출입국심사관 등 전담인력이 부족해 5~6대만 운영하고 있다. 제주 ‘당일치기’ 승객들의 지상 체류 시간은 3∼4시간. 주변 관광지 몇 군데를 둘러보는데 쫓겨 식당을 이용할 시간도 없다.

 

크루즈 관광객 장루한(29·중국 저장성)씨는 “배에서 내려 면세점과 주변 관광지를 둘러보기 위해 제주시내를 다녀오니 차량이동시간이 체류시간 대부분을 차지했다”며 “첫 제주여행인데 밥도 제대로 먹지 못하고 다시 항구로 돌아와야 했다”고 말했다. 국제크루즈 기항지 투어가이드는 “최근 논란이 된 ‘편의점 쓰레기 투척’도 크루즈 관광객들이 시간에 쫓겨 관광지 주변 편의점에 한꺼번에 몰리면서 쓰레기통이 넘쳐서 벌어진 일”이라고 전했다.

 

크루즈 관광객 리둥핑(63·중국 톈진)씨는 “제주에서 자연 풍광을 보고 싶고 현지음식도 맛보고 싶지만 체류 시간이 너무 짧아 아쉽다”라고 말했다.

중국발 대형 크루즈선을 타고 온 관광객들이 지난 17일 제주 서귀포시 강정항에서 하선해 크루즈 터미널로 걸어가고 있다.

이날 강정항과 가까운 서귀포 전통시장은 투어 코스에서 제외됐다. 시장은 투어 시간이 많이 소요돼서다. 

 

이 때문에 CIQ(세관·출입국·검역) 절차 간소화를 위해 비대면·여권사본으로도 심사가 가능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국적별로 크루즈 하선과 입국시간을 비교하면 중국 상하이 우송커우항은 1∼2시간, 일본 후쿠오카 하카타항은 40분∼1시간30분 정도 걸린다.

 

제주 강정항을 들른 국제크루즈는 마지막 기항지인 일본 하카다항으로 향했다. 이곳 크루즈터미널은 선석 바로 앞에 위치해 있다. 배에서 내린 관광객들은 곧바로 터미널 안으로 들어가 입국 수속을 밟는다. 하선 후 이동시간을 최소화한 것이다. 하루카 모리즈미 후쿠오카시 크루즈담당 계장은 “입국 심사대를 20개 갖춰 대규모 관광객을 빠른 시간 내에 소화할 수 있다”며 “크루즈 터미널을 빠져나오면 면세점 등 편의시설이 인근에 있어 승객 뿐만 아니라 승무원들도 쇼핑을 편하게 즐길 수 있다”고 소개했다.

지난 17일 제주 강정민군복합항에 10만t급 이상 대형 크루즈선 2척이 동시 접안했다.

◆대형버스 주차장 부족…병목 현상

 

김나영 로열캐리비안인터내셔널 매니저는 유럽과 호주, 싱가포르 등 주요 기항지를 예로 들며 “주요 크루즈 기항지에서는 대면 입국심사를 요구하지 않고 항구에 도착하면 항만 에이전트가 승객 명단을 확인한 뒤 10∼15분 만에 통관 절차가 마무리된다”며 “선박 통관이 됨과 동시에 승객도 함께 입국 승인이 완료되기 때문에 승객이 하선해 관광을 시작하는 데 결국 단 15분밖에 걸리지 않는다”고 글로벌 크루즈 시장이 성장한 주요 요인으로 통관 절차 간소화, 쉽고 간단한 출입국 절차를 강조했다.

 

현재 싱가포르, 말레이시아 페낭, 태국 푸껫은 기항 시 입·출국 보안검색이 생략된다. 일본은 보안감독관이 크루즈선에 승선, 선내에서 보안검색 감독을 하고 있다.

 

제주도는 지난해 10만t급 이상 크루즈선 입항을 강정민군복합항으로 일원화했다. 지역 균형발전과 강정항 활성화를 꾀한다는 명분을 내세웠다. 하지만, 올해 대형 크루즈가 속속 입항하면서 인프라가 이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주차시설의 경우 승객들이 겨우 입국장을 빠져 나와 크루즈터미널에 대기 중인 전세버스에 탑승했지만 출발하는데 또 시간이 걸린다. 대형크루즈가 입항하면 100대가 넘는 버스가  대기해야 하지만 주차 공간은 60여대에 불과하다. 병목 현상이 일어나는 이유다.

 

대중교통 이용이 불편해 일부 승객들은 택시를 호출해 개별 관광에 나서기도 했다.

크루즈 관광객들이 지난 17일 서귀포시 중문동 약천사에서 여행가이드의 설명을 듣고 있다.

제주도는 크루즈 관광객을 위한 전용 버스를 8월 한 달간 시범 운영하기로 했다.

 

지난해 8월 6년 5개월 만에 한국행 단체관광을 시작한 유커의 씀씀이가 예년 수준을 밑돌고, 제주가 기항지로서 매력을 유지할 수 있을지 장담하기 어렵다는 목소리가 관련 업계 내외부에서 흘러나오고 있다.

 

23일 제주도에 따르면 올해 제주 찾는 크루즈 입항은 총 314항차다. 6월 30일 기준 제주항과 강정항을 통해 입항(126항차)한 크루즈관광수는 34만6000명에 이른다.

 

하반기에도 비슷한 수의 관광객이 쏟아져 내릴 전망이다. 수치대로라면 62만2068명이 크루즈로 제주를 방문했던 2015년처럼 3000억원대 경제파급효과가 예상된다.

 

김의근 제주관광학회장은 “2∼3시간만 더 체류해도 1년으로 치면 수백억원의 수익을 창출할 기회를 날리는 셈”이라고 강조했다. 제주도 역시 이 같은 한국 상황을 잘 알고 있다.

일본 후쿠오카 하카타항 크루즈센터 전경.

◆제주도, 강정크루즈항 내년 국내 첫 무인자동심사대 도입 요청

 

도 관계자는 “강정항 크루즈 전용 터미널에 국내 처음으로 무인자동심사대 48대를 설치하기 위해 내년 국비 예산 72억원을 편성해 줄 것을 정부에 요청한 상태”라고 말했다.

 

도는 보안검색감독관을 크루즈선에 승선시켜 선내 보안검색을 감독하는 방향의 운영규정 필요성도 정부에 건의했다.

 

지난 17일 제주 강정항을 둘러본 최상목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장관은 “내년부터 강정항에 출입국심사 소요시간 단축을 위한 무인 자동출입국심사대 설치를 적극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글·사진 제주=임성준 기자 jun2580@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