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정을 위반한 군기훈련(얼차려)을 지시해 고(故) 박태인 훈련병을 숨지게 한 육군 12사단 신병교육대 중대장(27)이 훈련병 사망 전날 유가족을 만나 당시 상황을 축소 설명한 정황이 담긴 녹취록이 공개됐다.
군인권센터는 24일 오전 서울 마포구 사무실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박 훈련병 사망 전날인 지난 5월24일 중대장과 유가족이 박 훈련병이 후송된 강릉 아산병원 인근에서 만나 대화한 녹취를 공개했다.
박 훈련병 사망 두 달여 만에 나온 이번 녹취는 유가족이 관련 녹취를 정리하던 중 발견해 군인권센터에 제보한 것으로 파악됐다.
중대장은 녹취에서 '연병장을 몇 바퀴 돌게 했나'라는 유가족 질문에 "제가 지시한 건 세 바퀴였다"라며 "두 바퀴를 돌다가 세 바퀴 돌 때쯤, 그러니까 한 바퀴, 두 바퀴 뛰고 세 바퀴를 한 50m 정도 갔을 때쯤 쓰러졌다"고 답했다.
이어 유가족이 '빠른 속도로 선착순처럼 돌렸나'라고 묻자 "아니다"고 선을 그으며 "쓰러질 당시에 선착순 이런 걸 시키지 않았고 '딱 세 바퀴만 열을 맞춰서, 제대로 맞춰서 같이 뛰어라' 이렇게 얘기했다. 속도 같은 걸 통제하지 않았다"라고 말했다.
중대장은 또 "6명에게 왜 군기훈련을 받아야 하는지를 전반적으로 이해시킨 다음 그 잘못에 이의제기할 수 있는 시간을 부여했다. 전부 다 잘못을 인정해서 '지금부터 군기훈련을 하겠다'고 한 후 내려가서 통제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뉴시스에 따르면, 12사단 신병교육대 부중대장은 지난 5월23일 오후 4시26분께 훈련병들의 군장을 책으로 채우고 연병장 2바퀴를 보행하게 했다.
뒤이어 나타난 중대장은 완전군장 상태로 연병장을 선착순 뜀걸음 1바퀴를 실시했고 팔굽혀펴기와 뜀걸음 세 바퀴를 잇달아 지시한 것으로 드러났다.
군기 훈련을 시행하기 전 대상자에게 확인서를 작성하도록 해 사유를 명확히 하고 소명 기회를 부여한 뒤 군기훈련 여부를 최종 판단해야 하지만 이런 절차 역시 지켜지지 않은 것으로 조사됐다.
임태훈 군인권센터 소장은 "이런 중대장의 거짓말은 군의관에게도 똑같이 전달되었을 것"이라며 "군의관은 왜곡된 정보를 바탕으로 국군의무사령부 의료종합상황센터에 환자 상황을 보고하여 후송 지침을 하달받았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이처럼 중대장은 유가족을 기만하면서까지 자기 죄를 숨기려고 했을 뿐 아니라 그 결과로 의료인들의 판단에 혼선을 빚고 초기 환자 후송에 악영향을 주는 등 박 훈련병의 사망에 여러 영향 요인을 끼친 바 있다"고 강조했다.
한편 중대장이 유족에게 25일만에 사과 문자를 보낸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23일 방송된 MBC ‘PD수첩’을 보면, ‘훈련병 얼차려 사망 사건’ 중대장은 지난 17일 유족에게 사과 문자를 보냈다. 방송은 그가 경찰 조사가 시작된 뒤에야 연락을 취해 사과했다고 전했다.
문자에서 “안녕하세요, 어머님. 중대장입니다. 먼저 깊이 사죄 인사를 드립니다. 병원에서 뵙고 그 이후 못 찾아뵈어 늘 죄송스러운 마음 가득합니다. 한 번 부모님(유족)을 만나 뵙고 싶은데 괜찮으신지요?”라고 했다.
이틀 뒤인 19일에도 “어머님 기사로 편지 작성하신 거 확인했습니다. 어떠한 말씀을 드려도 위로가 안 되실 거 너무나 잘 알고 있습니다”라는 내용의 메시지를 보냈다.
이어 “정말 면목 없다. 편지 읽으면서 많은 생각들을 했다”며 “제가 그때 올바른 판단을 했더라면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았을까 하면서 계속 그날을 되뇌이며 깊이 반성하고 있다”고 했다.
그는 “지휘관이 규정에 어긋난 지시를 했는데도 군말 없이 이행해 준 아드님과 유가족분들에게 사죄를 하고 싶은데 기회를 주시면 감사하겠다”라며 “오늘 수료식은 아드님이 살아있다면 제일 기다려온 순간일 텐데 저로 인해 기쁜 날을 더욱 슬픈 날이 돼 죄송하다”고 사과했다.
앞서 중대장과 부중대장(25·중위)은 지난 5월 23일 강원 인제군 12사단 신병교육대에서 훈련병 6명을 대상으로 군기 훈련을 실시하면서 훈련 규정을 위반하고, 실신한 박 훈련병에게 적절한 조치를 하지 않아 숨지게 한 혐의(학대치사, 직권남용가혹행위)로 지난 15일 구속기소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