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에 대한 연민과 사랑으로 우리 사회와 문화예술계에 큰 족적을 남긴 거인 김민기가 영면에 들었다.
24일 오전 8시쯤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서 발인식을 마친 뒤 고인은 인근 대학로 옛 ‘학전’(아르코꿈밭극장)을 마지막으로 들렀다. 김민기가 33년 동안 ‘뒷것’을 자처하며 후배 문화예술인들을 물심양면으로 지원하며 대학로 소극장 문화의 상징이 됐던 공간이다. 극장 마당에는 고인과 인연이 깊은 배우 설경구와 황정민, 장현성, 최덕문, 가수 박학기 등 학전 출신과 유홍준 명지대 석좌교수 등 지인을 비롯해 정병국 한국문화예술위원장, 시민들이 미리 와서 고인을 맞았다. 운구차가 보이자 여기저기에서 울음이 터졌다.
유족과 지인들은 ‘김광석 노래비’가 설치된 화단에 영정을 세워 놓고 묵념했다. 화단은 고인을 기리는 시민들이 놓아둔 꽃과 막걸리, 맥주, 소주 등으로 빼곡했다. 유족 품에 안긴 영정은 소극장을 찬찬히 둘러봤다. 고인이 생전에 땀 흘리며 출연진, 관객들과 함께 울고 웃었던 곳이다. 영정이 밖으로 나와 운구차로 향하는 순간 누군가 고인의 대표곡 ‘아침이슬’을 부르기 시작했다. “긴 밤 지새우고 풀잎마다 맺힌 진주보다 더 고운 아침 이슬처럼… 나 이제 가노라 저 거친 광야에 서러움 모두 버리고 나 이제 가노라….” 추모객들은 눈물을 훔치며 큰 소리로 따라 불렀다. 김민기를 이대로 보낼 수 없다는 듯, 당신이 평생 몸소 보여준 삶을 잊지 않겠다는 듯.
하늘도 슬펐는지 많은 비를 뿌렸고, 운구차가 시야에서 사라질 때까지 추모객들은 눈물로 배웅했다. 일부는 “선생님 사랑합니다”, “안녕히 가세요”라고 외쳤다. 색소포니스트 이인권씨가 김민기의 곡 ‘아름다운 사람’을 연주하자 주위는 다시 울음바다가 됐다. 이씨는 “마지막 가시는 길에 당신이 가장 아름다운 사람이었다는 걸 말하고 싶었다”고 했다.
지난해 가을 위암 4기 판정을 받고 투병해온 고인은 최근 급격히 상태가 나빠져 지난 21일 세상과 작별했다. 떠나기 전 가족 등 가까운 사람들에게 “고맙다, 나는 할 만큼 다했다, 미안하다”는 말을 남겼다.
김민기는 1970∼1980년대 군부 독재정권의 탄압 속에서도 음악과 연극 등으로 민중 애환을 읊고 자유와 민주주의, 평화를 염원했다.
1991년 3월 학전을 설립해 라이브 콘서트와 연극, 뮤지컬 등 다양한 장르의 공연을 올렸다. 앞으로 나서지 않고 ‘배울 학(學), 밭 전(田)’이란 뜻처럼 문화예술계 인재를 키우는 못자리 역할에 충실했다. 가난한 예술인에게 정당한 대가를 보장하기 위해 계약서를 작성하고 출연료와 수익금을 투명하게 챙겨준 일화도 유명하다. 재정난에 시달렸지만 어린이와 청소년을 위한 좋은 공연이 필요하다며 수준 높은 어린이극을 계속 선보였다.
‘내 평생 소원이 무엇이더냐/ 우리 손주 손목 잡고 금강산 구경일세/ 꽃 피어 만발허고 활짝 개인 그 날을/ 기다리고 기다리다 이내 청춘 다 갔네…’(‘늙은 군인의 노래’ 중)
아침이슬처럼 영롱하게 빛난 삶을 살다 간 그가 하늘에서 분단된 조국의 평화와 통일을 염원하는 노래도 지을 것 같다. 유해는 천안공원묘원에 봉안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