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에 ‘피터한테 돈을 빌려 폴에게 갚는다’(rob Peter to pay Paul)라는 관용구가 있다. 피터, 폴 같은 특정 이름은 우리로 치면 장삼이사(張三李四), 그러니까 보통의 일반 사람을 뜻한다. 결국 이 표현은 ‘이 사람에게서 돈을 빌려 저 사람에게 진 빚을 갚는다’라는 의미로 풀이된다. 이른바 돌려막기인 셈이다. 개방형 한국어 지식 대사전 ‘우리말샘’에 따르면 돌려막기란 ‘부족한 돈이나 물건 따위를 다른 곳에서 빌리거나 구하는 일을 되풀이하여 문제가 일어나지 않도록 한다’는 뜻이다.
돌려막기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연관어는 신용카드일 것이다. 김대중(DJ)정부 시절 신용카드 이용액을 결제할 돈이 없거나 모자라는 경우 다른 카드로 자금을 마련해 대금을 결제하는 돌려막기가 잦아졌다. DJ정부가 소비를 통한 경기 부양을 목적으로 신용카드 발급 관련 규제를 대폭 완화한 영향이 컸다. 여기에 카드사들이 신규 가입자 확보를 위해 돌려막기를 권장한 것도 한몫했다. 심지어 아무런 소득이 없는 사람조차 신용카드를 만들어 마구 쓰다가 카드 대금 결제일이 가까워지면 다른 카드를 발급받아 그것으로 돈을 갚곤 했다. 이런 식의 카드 돌려막기가 영원히 가능할 수는 없는 노릇 아니겠는가. 급기야 2002년 수백만명이 신용카드 대금을 결제하지 못해 신용 불량자가 되고 대형 카드사가 망하는 일명 ‘카드 대란’이 터지고 말았다.
한국인들은 오래 전부터 돌려막기의 문제점을 잘 알고 있었던 듯하다. 오죽하면 ‘아랫돌 빼서 웃돌 괴기’라는 속담이 있을 정도다. 탑을 쌓는데 돌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탑 아랫부분을 받치던 돌 하나를 빼내 탑 위에 얹는다고 탑 높이가 올라갈 리 없다. 되레 쌓던 탑이 우르르 무너지지나 않으면 다행일 것이다. 실제로 돌려막기의 폐단은 우리 사회 곳곳에서 관찰된다. 구성원들의 이직이 잦은 조직의 경우가 대표적이다. 여기저기 발생하는 인력 공백을 임시로 메우기 위해 직원들을 이 부서 저 부서로 보내는 행태가 돌려막기의 전형 아닌가. 당장은 시급한 업무를 처리할 수 있을지 몰라도 중장기적으로 보면 ‘아랫돌 빼서 웃돌 괸’ 탑처럼 허물어지고 말 것이다.
이커머스 기업 티몬과 위메프가 판매자에게 제때 정산을 해주지 못한 사태의 파문이 좀처럼 가라앉지 않고 있다. 그간 티몬, 위메프에 입점해 물건을 팔았던 고객들은 상품을 판매하고도 대금을 받지 못하니 ‘이러다가 도산하는 것 아닌가’ 하는 불안감에 발만 동동 구르는 상황이다. 전문가들은 두 업체가 자본 없이 전형적인 돌려막기 행태로 연명하다가 화를 키웠다고 지적한다. 소비자 결제 후 1∼2개월 지나 판매자에게 대금을 정산해주는 방식이 한계에 부딪혔다는 것이다. 자본금이 넉넉하다면 이를 풀어 일시적으로 위기를 넘길 수 있겠지만, 그럴 여력도 없다니 답답한 노릇이다. 돌려막기가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 새삼 깨닫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