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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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수백억 사기 코인 브로커가 세운 지갑업체…제재 없이 버젓이 영업 중

이른바 ‘배용준 코인’으로 알려진 ‘퀸비코인’ 상장을 주도하면서 발행사, 시세조종업자 등과 결탁해 투자자 1만3000여명으로부터 수백억원을 편취한 혐의로 구속된 코인 브로커 노모씨. 그가 운영했던 가상자산 지갑 서비스 업체는 금융당국의 제재 없이 여전히 영업 중인 것으로 나타났다. 노씨는 가상자산 발행사들에 지갑 서비스를 제공하면서 가상자산 물량을 시세 조종에 이용하거나 다단계업자 등에 빼돌린 혐의를 받고 있다.

 

24일 업계에 따르면 노씨가 세운 지갑 서비스 업체 헥슬란트는 금융위원회에 신고된 가상자산사업자(VASP)다. 앞서 노씨는 지난 5월 퀸비코인의 빗썸 상장과 관련해 사기 등 혐의로 긴급체포 됐고, 지난 19일 구속된 바 있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제공

금융위는 이후 헥슬란트에 별다른 제재를 가하지 않고 있다. 보통 임원이 관련 업무에 따른 형사사건으로 기소되면 제재를 받는 금융기관과 달리 VASP를 대상으로는 이 같은 조항을 적용하기 마땅치 않다는 게 금융위 측 전언이다.

 

한 관계자는 “관련법 조항을 더 따져봐야 한다”면서 “특정금융정보법상 타인으로부터 금전 등을 받은 경우 사업자 신고를 직권으로 말소할 수 있는 조항 등을 살펴보고 있다”고 전했다.

 

검찰은 노씨가 가상자산 발행업자와 MM(시세조종)업자를 연결하며 코인 사기를 주도한 것으로 보고 있다. 발행업자의 가상자산 물량을 관리하는 지갑 서비스를 운영하면서 이 중 일부를 빼돌려 시세 조종 등에 이용했다는 판단에서다.

 

노씨는 업계에서 ‘빗핵관’으로 불린 것으로 전해졌다. 가상자산거래소 빗썸 관계자들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면서 발행업자를 상대로 빗썸에 상장할 수 있도록 컨설팅까지 해준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로 코인 상장 여부, 시기 등 빗썸의 내부정보를 취득해 영업에 이용하기도 했다. 가상자산 관리를 명목으로 코인 가격을 펌핑해 몰래 팔아넘겼다는 게 검찰 측 판단이다.

 

더 큰 문제는 노씨가 이 지갑 서비스를 활용해 시세 조종 등을 벌인 사례가 퀸비코인에 그치지 않는다는 점이다. 김상철 한글과컴퓨터 회장의 비자금 조성 의혹을 받는 아로나와 코인 역시 노씨가 지갑 서비스를 운영했고, 빗썸에 상장된 바 있다.

 

역시 빗썸에 상장한 가상자산 ‘폴라리스쉐어’의 전 운영사는 최근 노씨를 배임 혐의로 경찰에 고소했다. 이 운영사는 고소장에서 지갑 서비스 계약을 맺은 노씨가 코인 물량을 다단계업자에 팔아넘겨 피해를 봤다고 주장하고 있다. 폴라리스쉐어는 현재 다른 운영사에 팔린 상태다. <세계일보 2023년 5월22일자 5면 보도 참조>

 

헥슬란트가 지갑 솔루션 계약을 맺은 가상자산만 현재 100여개에 달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헥슬란트는 그간 미래에셋그룹, 신한은행, 케이뱅크, 현대카드, 신세계, SK플래닛 등 굴지의 대기업과 협약을 맺고 사업을 확장해왔다. 헥슬란트는 노씨에 대한 수사가 시작되자 지난 4월 대표를 교체한 바 있다. VASP 자격 갱신심사가 까다로워지면서 대주주의 적격성 요건 등을 맞추기 위한 대비로 보인다. 헥슬란트 관계자는 “‘퀸비 사건’은 노씨 개인의 일탈이며 회사와 관련이 없다”며 “노씨에 대한 지분을 정리하는 중”이라고 말했다.


안승진 기자 prodo@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