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메뉴 보기 검색

[사설] 범죄단체에 코로나 지원금이라니, 책임 묻고 혈세 환수하라

감사원이 어제 문재인정부 시절의 ‘소상공인 등 지원사업 추진 실태’ 감사 결과를 발표했다. 이 사업은 코로나19 대유행 기간인 2020∼2022년 큰 타격을 입은 소상공인과 자영업자들에게 정부 예산으로 재난지원금, 손실보상금 등 현금을 지급한 것이 핵심이다. 그런데 예산 집행 과정이 얼마나 허술하고 방만했던지 3조2000억원 넘는 혈세가 줄줄 샜다고 하니 기가 찰 노릇이다. 정부는 감사 결과를 토대로 관련자를 엄중히 문책하고 낭비된 혈세를 전액 환수해야 할 것이다.

감사원에 따르면 코로나19 대유행 기간 재난지원금, 손실보상금 등 지급에 총 61조4000억원의 예산이 투입됐다. 감염병 확산과 그에 따른 방역 강화로 영업 중단 등 피해를 감수한 이들이 많았던 만큼 꼭 필요한 조치였다. 문제는 전체 예산의 5%가 넘는 3조2323억원이 코로나19와 무관한 엉뚱한 곳으로 흘러갔다는 점이다. 일례로 재난지원금 1340만원을 받은 한 태양광발전소는 코로나19 대유행 기간 매출에 변동이 거의 없었음에도 지급 대상에 포함됐다. 보이스피싱이나 대포통장 유통 같은 범죄를 목적으로 설립된 유령 법인 21곳도 억대 지원금을 타냈다니 이런 혈세 낭비가 어디 있나. 복마전이 따로 없다는 생각에 복장이 터질 지경이다.

과거 문재인정부는 코로나19 관련 지원금에 대해 ‘정교한 설계 아래 제도를 만들어 예산을 집행했다’는 식으로 홍보했다. 하지만 공개된 감사 결과를 보면 정교하기는커녕 구멍이 숭숭 뚫린 그물망이 떠오른다. 공무원과 업자들이 서로 짜고 ‘눈먼 돈 챙기기’ 잔치라도 벌인 것 아닌가 하는 의심마저 든다. 정부는 이번 감사 결과를 반면교사로 삼아 현행 재난지원금 시스템을 재정비해야 할 것이다. 제도의 허점을 찾아내 손질하는 한편 다시는 이런 혈세 낭비가 없도록 처벌 규정도 강화하길 바란다.

감사원은 코로나19 대유행기가 ‘사회적 재난’ 시기였다는 특수성을 고려해 개별 공무원의 징계 요구는 하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하나 사안의 중대성을 감안할 때 어물쩍 넘어갈 일이 결코 아니다. 엄중한 조사를 거쳐 법률 위반 사실이 드러나면 공직자이든 누구든 상응하는 책임을 물어야 한다. 또 잘못 쓰인 혈세는 끝까지 추적해 전액 환수할 것을 촉구한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앞으로 다른 감염병의 유행 같은 사회적 재난이 또 벌어졌을 때 같은 잘못의 반복을 피하지 못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