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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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 넘었다 착각한 기장 고도 낮추다 '쿵'…110명 탄 여객기 추락

해남 운거산서…마을 주민, 44명 혼신 구조[사건속 오늘]
활주로 좁고 폭우 심해 착륙 3번 시도…목포공항은 '폐항'
세 동강 난 비행기 잔해. ('꼬리에 꼬리를 무는 이야기')

1993년 7월 26일 강한 비가 내리던 이날, 승객과 승무원 등 110명이 탑승한 목포행 아시아나 여객기 733편이 목포 공항 착륙 직전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같은 시각, 뿌연 안개가 낀 전라남도 해남군 마천마을에 있는 운거산 쪽에서 피투성이 남자가 등장해 도움을 요청했다.

 

그리고 운거산에는 종잇조각처럼 찢어진 여객기와 숨진 승객 66명만 남아있었다.

 

◇착륙 앞두고 사라진 비행기…승객·승무원 등 110명 행방은

 

이날 오후 2시 37분 김포공항에서 출발한 목포행 아시아나 여객기 733편은 안양, 오산, 군산, 광주 상공을 지나면서 관제소들과 정상적으로 교신했다.

 

이어 목포 공항에 다다랐을 때인 3시 37분, 기장은 목포 관제소에 위치를 보고하고 날씨를 체크하는 등 정상적인 착륙 절차를 밟았다. 약 4분 뒤 관제사가 기장을 호출했으나 응답이 없었고, 비행기도 레이더에 걸리지 않았다.

 

관제소 측은 궂은 날씨로 인해 다른 공항으로 회항한다고 생각했다. 이에 인근에 있는 광주 공항 관제사도 733편을 호출했으나,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결국 12분 뒤 '항공기 실종'이라는 판단이 내려졌고, 뉴스와 라디오에서 속보가 나오기 시작했다.

 

그렇게 승객 104명과 기장, 부기장을 포함한 승무원 6명 등 총 110명을 태운 비행기가 감쪽같이 사라졌다. 특히 이 비행기에는 여름 방학을 맞아 엄마와 아이들이 같이 온 승객들이 많았다.

 

비행기 추락을 고려해 해군이 헬기로 해상 수색을 시도했으나, 강한 비와 바람에 이마저도 쉽지 않았다.

 

이때 담배 농사를 주업으로 하는 마천마을에는 유난히 큰 천둥소리가 들렸다. 비가 잦아들자, 한 마을 주민은 평소처럼 밭을 갔다가 깜짝 놀랐다.

 

바로 마을 뒤에 있던 320m 높이의 가파른 운거산에 비행기가 추락했고, 승객 2명이 2시간 정도 산을 헤치고 내려와 구조 요청을 한 것이다.

 

마천마을 이장은 곧장 "우리 마을 운거산 절골에 비행기가 추락했으니 주민 여러분 모두 나와주시길 바란다"며 안내방송을 내보냈다.

 

세 동강 난 비행기 잔해. ('꼬리에 꼬리를 무는 이야기')

◇아이 업고 들것에 릴레이 이송…마천마을 주민들, 44명 살렸다

 

마을 주민들은 곧장 낫을 들고 우거진 수풀을 헤치고 운거산을 올라갔다. 이 과정에서 비행기에서 샌 연료 냄새가 나자, 한 주민은 "담배 피우지 말라"며 불이 날 상황에 대비하기도 했다.

 

산속 곳곳에는 세 동강 난 비행기 잔해와 유류품들이 떨어져 있었고, 생존자와 숨진 승객들이 뒤섞여 그야말로 참혹한 현장이었다. 기장과 부기장은 조종실에서 사망한 채 발견됐다.

 

특히 구급 차량 접근이 불가능한 6부 능선에 비행기가 추락한 탓에 마을 주민들이 직접 구조에 나설 수밖에 없었다. 부상이 심하지 않은 아이들은 아주머니들이 업고 내려갔다.

 

이어 주민들은 나무와 옷으로 '들것'을 제작해 부상자들을 릴레이 이송하는 등 기지를 발휘했다. 뒤이어 해군 헬기 등이 긴급 투입돼 부상자를 구조했고, 부상자들은 해남 병원과 목포 시내 여러 병원에 후송돼 치료받았다.

 

다만 이 과정에서 과다 출혈이나 차가운 비를 계속 맞아 저체온증 등으로 오래 버티지 못해 세상을 떠난 승객들도 있었다.

 

그렇게 주민들은 44명의 생명을 구했고, 총 48명이 생존했다. 주민들의 적극적인 인명 구조에 119가 도착했을 땐 이미 생존자 구출이 거의 끝난 상태였을 정도라고.

 

그뿐만 아니라 목포와 해남 지역 병원 관계자들이 사고 소식을 듣고 퇴근을 미룬 채 신속히 응급진료를 해 부상자 가운데 사망한 승객이 거의 없었다.

 

8세 아들, 6세 딸과 함께 비행기에 오른 여성은 "승무원이 안전벨트 체크하러 다닌 기억만 나고 그 뒤에 제가 산에 누워 있었다. 사람들이 막 소리 지르면서 올라오는 소리가 들리면서 정신이 들었다. '라이터 켜지 마라!'라는 한 마디가 또렷하게 기억난다"고 회상했다.

 

세 동강 난 비행기 잔해. ('꼬리에 꼬리를 무는 이야기')

◇생존자 명단에 희비교차"내 딸이다" 엇갈린 운명

 

TV와 라디오에서 생존자 명단이 보도되자 승객 가족들의 희비가 엇갈렸다. 운거산 아래에 모포 덮인 시신이 하나둘씩 늘어나면서 마천마을엔 통곡 소리만 가득 찰 뿐이었다.

 

이 사고로 아내와 아들을 잃은 남성 A 씨는 병원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막내딸을 찾아다녔다. 마지막으로 찾아간 병원에서 얼굴에 붕대를 감고 의식을 잃은 채 누워 있는 여자아이를 본 A 씨는 막내딸과 나이대도, 생김새도 비슷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름표에 적힌 건 딸의 이름이 아니었고, 아이 곁에선 열심히 간호 중인 아이의 아버지가 있었다. A 씨는 아이의 붕대를 풀어보자고 어렵게 부탁했고, 아이 얼굴을 한참 살피던 A 씨는 "내 딸이 맞다"고 주장했다.

 

아이 곁을 지키던 남성은 "무슨 소리냐? 이 아이는 분명 내 딸이다"라며 발끈했다. 그 역시 아내를 잃었지만 두 아이가 살아 있다는 소식에 간절한 마음은 매한가지였다.

 

혈액형 검사를 앞두고 결국 아이 곁을 지키던 남성이 "아무래도 제 딸이 아닌 것 같다"고 털어놨다. 알고 보니 근처 병원에서 신원이 확인되지 않은 채 숨진 여아가 그의 아이로 드러나 안타까움을 안겼다.

 

세 동강 난 비행기 잔해. ('꼬리에 꼬리를 무는 이야기')

◇악천후·짧은 활주로·무리한 착륙 시도…목포 공항, 폐항됐다

 

이번 사고는 아시아나항공 설립 후 최초의 여객기 추락 사고였다. 원인은 무엇이었을까.

 

먼저 해군 공항으로 쓰이던 목포 공항은 사고 1년 전부터 민항기 운항을 시작했다. 다만 활주로 길이 1500m, 폭 30m로 공항 크기는 표준치를 겨우 넘는 수준이었다.

 

사고가 난 733편이 착륙 시 필요한 최대 착륙 거리는 1417m로, 활주로의 여유 길이가 고작 80m밖에 되지 않았다. 활주로 폭 역시 733편보다 단 1.1m의 여유만 있었다.

 

그중 특히 공항 주변에 산이 많아 항공기 착륙을 자동으로 유도하는 장치인 ILS가 설치돼있지 않아 착륙이 쉽지 않다.

 

또 이날 초당 1mm의 기록적인 폭우가 쏟아져 시야가 좁아졌을 상황에서 기장은 착륙을 3번이나 시도했다. 두 차례나 착륙을 포기하고 재상승하던 기장은 마지막 시도에서 큰 착각을 했다.

 

바로 목포 공항은 운거산을 지나 나타나는데, 운거산을 넘었다고 판단한 기장은 "다 지나갔다"며 정상보다 낮은 고도로 착륙하다 결국 운거산에 부딪히면서 추락한 것이다.

 

무리하게 착륙을 시도한 기장의 실수였다. 하지만 여기엔 착륙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정확히 인지하지 못한 관제탑의 불확실한 지시와 회항 시 항공사에서 보상해야 하는 경비 문제도 영향을 끼쳤다.

 

당시 우리나라 항공사들은 정시운항률 경쟁을 벌이던 분위기였고, 기장은 이에 심적 부담감을 느껴 착륙을 시도했을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항공사는 유족들과 보상금 합의를 통해 문제를 해결했다. 목포 공항은 안전상의 이유로 폐항됐으며 현재는 해군 전용 비행장으로만 사용되고 있다. 아울러 정부에서는 항공 안전 시스템을 개선하는 등 재발 방지에 나섰으며 무안국제공항을 개항했다.

<뉴스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