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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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 못 마시면 어때요, 논알코올도 이렇게 맛있는데” [르포]

논알코올(Non-Alcohol) 전문 양조장 '부족한녀석들' 황지혜 대표

“맛있는 수제맥주를 논알코올로도 즐기게 하고 싶다는 생각으로 시작했어요. 논알코올은 밍밍하다는 편견을 깨고 싶어 오로지 맛에 집중했죠.” 

 

황지혜 대표가 갓 발효를 마친 ‘어프리데이 페일에일’을 시음컵에 따르고 있다. 박윤희 기자

경기도 남양주에서 논알코올(Non-Alcohol) 전문 양조장을 운영하고 있는 황지혜 대표는 2023년 대한민국 국제맥주대회(KIBA)에서 ‘어프리데이 페일에일’과 ‘어프리데이 스타우트’로 각각 금메달과 은메달을 휩쓴 인물이다. 올해엔 ‘어프리데이 벨지안윗’로 금메달을 획득, 2년 연속 수상했다. KIBA는 미국 월드 비어컵, 독일 유럽 비어 스타, 호주 AIBA, 일본 IBC 등 세계 4대 맥주대회 심사위원 39명이 수상작을 선정해 권위를 인정받는 행사다.

 

‘소문난애주가’였다는 황 대표에게 논알코올 수제맥주 시장에 뛰어든 이유를 묻자 “술을 못 마시는 사람도 있고, 여러 이유로 맥주를 못 마실 때도 있잖아요. 그때도 맛있는 수제맥주를 즐길 수 있다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 “수제맥주와 동일한 양조 과정으로 맥주 정체성 유지”

 

지난주 서울에서 차로 한 시간가량을 달려 경기 남양주에 위치한 ‘부족한 녀석들’ 양조장을 찾았다. 아침부터 비가 내리다 그치기를 반복하는 변덕스러운 날씨와 강한 햇빛 탓인지 온몸으로 갈증이 느껴졌다. 고속도로를 빠져나와 아스팔트가 깔린 골목 안을 십여 분 헤맨 뒤에야 양조장 간판을 찾는 데 성공했다. 사막에서 오아시스를 만난 기분이 이럴까. 어렵게 찾는 양조장은 안은 시원했다. 본능적으로 한쪽에 질서정연하게 놓인 발효탱크로 시선이 옮겨졌다. 지금 막 발효를 마친 맥주가 존재감을 알리듯 발효통 겉면에 차가운 이슬이 맺히고 있었다. 

 

양조장 한쪽에 질서정연하게 놓인 발효탱크. 이 곳에서 '어프리데이' 제품이 생산된다. 박윤희 기자

신선한 맥주가 발효통을 빠져나와 시음컵 안으로 채워졌다. 풍부한 거품을 가득 머금은 맥주를 한 모금 마셨다. 혀끝에서 느껴지는 열대과일향과 묵직한 뒷맛이 논알코올 맥주라고는 믿기 어려웠다. 황 대표는 “수제맥주를 찾는 이유는 독특한 맛 때문이다. 알코올이 부담되는 날 논알코올 맥주로도 그 맛을 그대로 느끼게 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부족한 녀석들’은 논알코올 맥주를 전문적으로 만드는 국내 유일의 수제 브루어리(양조장)다. 다른 양조장과 다르게 음료와 논알코올 모두 제조가 가능하다. 이곳에서 생산되는 ‘어프리데이’는 알코올 1% 미만인 ‘음료’로 분류돼 공장 설립 당시인 2022년 해썹(HACCP)인증을 마쳤다. 알코올 도수가 상대적으로 낮은 논알코올은 변질이 될 가능성이 높아 시설 관리가 더 까다롭다.  

 

실제로 어프리데이 제품은 수제맥주에 쓰이는 독일산 맥아, 미국산 홉을 그대로 사용해 논알코올 맥주용 효모를 사용해 발효, 숙성 과정을 거치는 등 수제맥주와 동일한 양조 과정을 거친다. 현재 논알코올 맥주는 3종이 생산되고 있다. 올 하반기엔 IPA 맥주 1종이 새롭게 출시될 예정이다. 

 

가장 인기가 많은 ‘어프리데이 페일에일’은 상큼한 시트러스 계열 과일향과 아로마가 특징이다. ‘어프리데이 스타우트’는 커피, 초콜릿, 토스트 등의 묵직한 풍미가 도드라지는 흑갈색 아이리시 스타일 맥주다. ‘어프리데이 벨지안윗’은 호가든 같은 벨기에식 밀맥주를 선호하는 소비자들이 알코올에 대한 부담 없이 만족할 수 있는 맛이라는 평이다. 

 

황 대표에 따르면 논알코올 맥주를 만드는 방법은 3가지가 있다. 일반 맥주를 양조한 후 알코올을 제거하는 방법과 양조 단계부터 알코올 발생을 최소화하는 방법, 알코올과 유사한 맛을 내는 재료를 섞어 알코올 맛을 내는 방법이 있다. 어프리데이는 양조할 때 알코올 발생을 최소화하는 방식으로 만들어진다. 이렇게 제조된 논알코올 맥주의 알코올 함량은 0.4~0.5%이다. 

 

황지혜 대표가 대한민국 국제맥주대회(KIBA) 메달을 손에 들고 있다. 박윤희 기자

황 대표가 본격적으로 무알코올 수제맥주 시장에 뛰어든 것은 4년 전이다. 그는 “사회 초년생 때 수제맥주를 처음 맛 보고 수제맥주에 빠져 맛 좋은 수제맥주 리스트 수십개를 외울 지경이었다”고 말했다. 기자 시절 소문난 ‘맥주 덕후’로 세계 곳곳으로 맥주 여행을 한 것도 모자라 맥주 관련 자격증을 취득했다. 맥주 관련 칼럼을 기고하다가 아예 맥주 전문 잡지 에디터로 자리를 옮겨 활동한 이력도 있다. 

 

맥주를 공부하면 할 수록 맥주에 빠져들었고, 결국 직접 제조해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다고. 그는 “여러 나라로 맥주 여행을 다니다 보니 전 세계 수제맥주 시장은 이미 포화 상태였다. 그런데 의외로 논알코올 맥주의 잠재력이 눈에 띄었다. 미국 논알코올 맥주 브랜드인 애슬레틱 브루잉(athletic brewing)은 지난해 자국 내 맥주 생산량 순위 27위를 기록했을 정도다”며 “논알코올 국내 수제맥주는 딱히 떠오르는 게 없더라. 그래서 도전해 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애슬레틱 브루잉은 수제맥주 원조국인 미국에서 지난해 9000만달러(약 1224억원)의 매출을 올리는 등 설립 6년 만에 대형 기업으로 성장한 무알콜 맥주 회사다. 

 

◆ 논알코올 수제맥주, 정체된 시장서 ‘나홀로’ 성장

 

논알코올 맥주 인기는 미국을 비롯해 전 세계 주요 맥주 소비국에서 공통으로 나타나고 있는 현상이다. 유통업계에 따르면 2020년 120.7%에 달했던 전체 수제맥주 매출 증가율은 2021년 63.1% 크게 감소했고, 2022년 11.2%로 줄었다. 

 

반면 논알코올 맥주 시장은 뚜렷한 성장세가 돋보인다. 시장조사업체 유로모니터에 따르면 2021년 415억 원 규모였던 국내 무알코올 맥주 시장 규모는 올해 704억 원으로 성장했다. 이어 2027년에는 946억 원 규모로 확대될 것으로 전망된다. 여기에 지난 5월 주류 면허법 시행령 개정으로 논알코올 주류가 식당·유흥주점에서도 판매가 가능해지며 논알코올 시장은 더 성장할 것으로 보인다. 

 

황 대표는 “최근 주류 문화가 달라지고 있다는 것이 실감된다”며 “젊은층을 중심으로 논알코올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온라인 판매는 물론, 식음료업체들의 제조 위탁 문의도 늘었다”고 말했다. 

 

커피, 초콜릿, 토스트 등의 묵직한 풍미가 도드라지는 흑갈색 아이리시 스타일의 ‘어프리데이 스타우트’. 박윤희 기자

그는 대기업 맥주와 차별화된 점에 대해 ‘맛’을 꼽았다. 그는 “대기업 맥주가 청량한 맛이 강점이라면, 우리 제품은 묵직한 맛이 강점이다. 취향이 다양해진 만큼 찾는 소비자들이 늘고 있다”고 말했다. 

 

논알코올 맥주인 만큼 마케팅 강점도 있다. 알코올이 1% 미만인 ‘어프리데이’는 주세법상 주류로 분류되지 않아 온라인으로 판매가 가능하다. SNS나 스마트스토어에서 판매가 진행되고 있으며 마케팅 업체와 협력을 위한 준비 중에 있다. 그는 “대부분의 판매가 온라인으로 이뤄지고 있는데, 매년 2배씩 성장하고 있다”며 “현재 월 2만캔 정도 소화가 가능한데, 공장 가동을 멈추지 못할 정도”라고 말했다. 

 

황 대표는 수제맥주협회 이사직를 맡고 전국 축제를 돌며 수제맥주 알리는데에도 힘쓰고 있다. 그는 “꼭 우리 제품이 아니어도 좋아요. 사람들이 토종 수제 맥주를 접하고 즐길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래야 논알코올 수제맥주도 발전할 수 있어요. 제가 할 수 있는 역할이 있다면 뭐든 할 겁니다”라고 말했다. 


남양주= 박윤희 기자 pyh@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