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훈 국민의힘 대표가 ‘채 상병 특검법 수정안’을 놓고 입장 변화조짐을 보이고 있다. 경선 과정에서는 당 대표가 되면 수정안을 발의하겠다고 했으나, 이제는 말끝을 흐리고 있다. 측근들은 법안 발의를 아예 없던 일로 치부하는 분위기다. 한 대표는 지난달 23일 출마 기자회견 당시 채 상병 특검법과 관련, 대법원장이 특검을 추천하는 제삼자 추천 방식의 수정안 발의를 약속했다. 그러나 당선 후인 24일에는 “발의는 제가 하는 게 아니다”라고 말했다. 현역 의원이 아니어서 법안을 직접 발의할 수 없다는 뜻이다. 당 대표는 마음만 먹으면 법안 발의를 충분히 주도할 수 있는 만큼 사실상 입장을 선회한 것으로 봐야 한다.
윤석열 대통령이 두 번째 거부권을 행사한 채 상병 특검법은 그제 국회 본회의에서 최종 부결됐다. 여당인 국민의힘이 ‘‘당론 반대’’로 저지에 나서면서 야권으로선 또다시 여당 내 ‘8표 이탈’의 장벽을 넘지 못했다. 국민의힘은 그제 재표결에서 무효표 1표를 포함해 최대 4표의 이탈표가 나왔지만, 단일대오가 유지되고 있다고 보고 있다. 여당 지도부가 당 차원에서 채 상병 특검법 수정안을 먼저 나서서 논의할 필요가 없다고 판단하는 근거 중 하나가 이 표결 결과다.
한 대표의 입장 후퇴는 원내 지지기반이 확고하지 않은 상황에서 특검법 자체에 반대하는 현역 의원들과 갈등을 빚지 않으려는 움직임으로도 풀이된다. 한 대표는 당내 반발 등을 고려해 충분한 토론 과정을 거친다는 생각인 것으로 전해졌다. 한 대표의 최측근인 장동혁 최고위원은 ‘제삼자 특검법’ 추진 자체를 중단하겠다고 밝혔다. 집권당 대표가 혼선을 빚어서는 안된다. 한 대표는 내부의 엇갈리는 입장부터 명확히 정리해야 한다. 특검법을 수정해서 여당도 추진할 것인지, 기존의 당론을 유지할 것인지 정리해 국민에게 분명히 밝히는 게 옳다.
한 대표의 입장 변화에 더불어민주당은 강력히 반발하며 재발의를 다짐했다. 채 상병 특검법 3차 충돌이 예고된 것이다. 박찬대 민주당 원내대표는 “민심 동행 운운하던 한 대표의 공약은 새빨간 거짓말이었다”며 “보다 더 강화된 채 상병 특검법을 즉각 발의하겠다”고 밝혔다. 윤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하면 10번이고 100번이고 특검법을 계속 발의하겠다는 게 민주당의 공언이다. 언제까지 도돌이표처럼 반복되는 이런 소모적 정쟁을 지켜봐야 하는지 국민으로서는 답답한 노릇이다.
당초 정성호 의원 등 민주당 일부 인사들은 한 대표가 제안했던 제삼자 추천 방식의 특검법에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그래서 한 대표 체제 출범 후 여야 간 합의점을 모색하자는 주장까지 나왔다. 이제는 다시 상황이 변했으니 야당도 여당이 협상에 응할 수 있는 수정안을 내놔야 한다. 특검법은 여야 합의로 처리해야 하기 때문이다. 야당은 특검 후보자 추천 권한 등에서 공정성과 정치적 중립성을 담보할 수 있도록 절충안을 마련해야 한다. 특검 추천 권한을 야당이 독점해 윤 대통령을 궁지로 몰아넣겠다는 생각은 버리는 게 좋다. 여당도 무조건 반대만 할 게 아니라 한 대표가 제안했던 수정안 재추진을 적극 검토해야 한다. 채 상병 특검 정국의 돌파구를 찾으려면 여야가 한발씩 양보해야 한다. 특검의 목적이 진실규명과 의혹 해소라면 여야 모두 정략은 배제하고 열린 자세로 협상에 나서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