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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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 상병 특검법' 한발 빼는 한동훈… 돌파구 찾을 수 있겠나 [논설실의 관점]

제삼자 추천 수정안 사실상 철회
민주 “더 강화된 법안 즉각 발의”
여당은 내부 입장부터 정리해야
야당도 특검 추천에 절충안 필요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가 ‘채 상병 특검법 수정안’을 놓고 입장 변화조짐을 보이고 있다. 경선 과정에서는 당 대표가 되면 수정안을 발의하겠다고 했으나, 이제는 말끝을 흐리고 있다. 측근들은 법안 발의를 아예 없던 일로 치부하는 분위기다. 한 대표는 지난달 23일 출마 기자회견 당시 채 상병 특검법과 관련, 대법원장이 특검을 추천하는 제삼자 추천 방식의 수정안 발의를 약속했다. 그러나 당선 후인 24일에는 “발의는 제가 하는 게 아니다”라고 말했다. 현역 의원이 아니어서 법안을 직접 발의할 수 없다는 뜻이다. 당 대표는 마음만 먹으면 법안 발의를 충분히 주도할 수 있는 만큼 사실상 입장을 선회한 것으로 봐야 한다.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가 26일 서울 여의도 중앙당사에서 열린 사무처당직자 월례조회에서 안경을 고쳐쓰고 있다. 뉴스1

윤석열 대통령이 두 번째 거부권을 행사한 채 상병 특검법은 그제 국회 본회의에서 최종 부결됐다. 여당인 국민의힘이 ‘‘당론 반대’’로 저지에 나서면서 야권으로선 또다시 여당 내 ‘8표 이탈’의 장벽을 넘지 못했다. 국민의힘은 그제 재표결에서 무효표 1표를 포함해 최대 4표의 이탈표가 나왔지만, 단일대오가 유지되고 있다고 보고 있다. 여당 지도부가 당 차원에서 채 상병 특검법 수정안을 먼저 나서서 논의할 필요가 없다고 판단하는 근거 중 하나가 이 표결 결과다. 

 

한 대표의 입장 후퇴는 원내 지지기반이 확고하지 않은 상황에서 특검법 자체에 반대하는 현역 의원들과 갈등을 빚지 않으려는 움직임으로도 풀이된다. 한 대표는 당내 반발 등을 고려해 충분한 토론 과정을 거친다는 생각인 것으로 전해졌다. 한 대표의 최측근인 장동혁 최고위원은 ‘제삼자 특검법’ 추진 자체를 중단하겠다고 밝혔다. 집권당 대표가 혼선을 빚어서는 안된다. 한 대표는 내부의 엇갈리는 입장부터 명확히 정리해야 한다. 특검법을 수정해서 여당도 추진할 것인지, 기존의 당론을 유지할 것인지 정리해 국민에게 분명히 밝히는 게 옳다.

 

해병대 예비역 연대 회원들이 지난 25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제416회 국회(임시회) 제1차 본회의에서 순직 해병 수사 방해 및 사건 은폐 등의 진상규명을 위한 특별검사의 임명 등에 관한 법률안 재의의 건에 대한 부결을 발표하고 있다. 뉴시스

한 대표의 입장 변화에 더불어민주당은 강력히 반발하며 재발의를 다짐했다. 채 상병 특검법 3차 충돌이 예고된 것이다. 박찬대 민주당 원내대표는 “민심 동행 운운하던 한 대표의 공약은 새빨간 거짓말이었다”며 “보다 더 강화된 채 상병 특검법을 즉각 발의하겠다”고 밝혔다. 윤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하면 10번이고 100번이고 특검법을 계속 발의하겠다는 게 민주당의 공언이다. 언제까지 도돌이표처럼 반복되는 이런 소모적 정쟁을 지켜봐야 하는지 국민으로서는 답답한 노릇이다.

 

당초 정성호 의원 등 민주당 일부 인사들은 한 대표가 제안했던 제삼자 추천 방식의 특검법에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그래서 한 대표 체제 출범 후 여야 간 합의점을 모색하자는 주장까지 나왔다. 이제는 다시 상황이 변했으니 야당도 여당이 협상에 응할 수 있는 수정안을 내놔야 한다. 특검법은 여야 합의로 처리해야 하기 때문이다. 야당은 특검 후보자 추천 권한 등에서 공정성과 정치적 중립성을 담보할 수 있도록 절충안을 마련해야 한다. 특검 추천 권한을 야당이 독점해 윤 대통령을 궁지로 몰아넣겠다는 생각은 버리는 게 좋다. 여당도 무조건 반대만 할 게 아니라 한 대표가 제안했던 수정안 재추진을 적극 검토해야 한다. 채 상병 특검 정국의 돌파구를 찾으려면 여야가 한발씩 양보해야 한다. 특검의 목적이 진실규명과 의혹 해소라면 여야 모두 정략은 배제하고 열린 자세로 협상에 나서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