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차 공모에서 탈락한 인물이 2차 공모에서 원장 후보로?…“이게 머선 일이고?”
경남 창원시 산하 많은 기관 중에 ‘창원산업진흥원(진흥원)’이라고 있습니다. 비수도권 도시 중 유일하게 인구 100만명이 넘는 창원시에 살고 있는 시민이라도 다소 생소하실 수 있을 겁니다.
창원시 산업 정책의 장기발전전략 수립을 통한 미래먹거리 산업 발굴 및 연속적이고 체계적인 기업서비스 제공을 위해 설립된 기관이라고 진흥원 홈페이지에는 소개돼 있네요.
이런 중요한 역할을 하는 진흥원이 요즘 들어 연일 시끌시끌합니다. 7개월여 동안 공석이던 원장을 뽑는데 사전 내정설에 휩싸이면서 말이죠.
다시 말해 이미 원장으로 낙점(落點)된 사람은 있고, 공모 절차는 사실상 요식행위였다는 의혹이 제기된 것이죠.
진흥원은 지난 5월 첫 공고를 내고 원장을 공개 모집했습니다. 1차 공모 때 총 지원자는 12명. 원장 후보 채용 심사에 나서는 진흥원 임원추천위원회(임추위)는 12명 중 5명을 서류 전형에 합격시켰습니다.
이후 이 5명 중 2명이 면접 전형에 합격해 원장 후보로 선정됐습니다.
그런데 진흥원은 이사회 의결을 거치면서 원장 후보 ‘적격자가 없다’고 결론을 내렸습니다.
결국 진흥원은 한 달여 뒤에 2차 공모를 통해 원장 공개 모집 재공고에 나섰습니다.
2차 공모 때는 총 9명이 지원했고, 이 가운데 3명이 서류 전형에 합격하고 이들 중 2명이 면접 전형에 합격했습니다.
임추위는 면접 전형에 합격한 2명을 원장 임용 후보자로 이사회에 추천했고, 진흥원은 이정환 전 한국재료연구원장을 원장 임용 후보자로 선정했다고 공개했습니다.
그런데 이 원장 후보자가 알고 보니 1차 공모 때 면접 전형에서 떨어진 것으로 확인되면서 숱한 뒷말이 나오고 있는 겁니다.
그도 그럴 게 1차 공모와 2차 공모 때 원장 응시자격이 동일하고, 무엇보다 임추위 위원들도 같았기 때문에서죠.
이렇다 보니 1차 때 탈락한 인물을 2차 때 합격시키는 게 과연 적정한지 그 적격성을 두고 논란이 일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애초 이 원장 후보자를 낙점해놓고 있었다가 1차 공모 당시 면접에서 떨어지니 면접 전형 합격자들을 부적격 처리하고 2차 공모를 한 것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되고 있는 것입니다.
◆“원장 후보 적격자 없다고 사실상 이사회 의결 유도해”
그런데 원장 후보자를 사전에 내정한 것 아니냐는 의심이 드는 정황이 포착되면서 상황은 새로운 국면을 맞았습니다.
이 사안에 관심이 많은 진형익 더불어민주당 창원시의원이 “1차 공모 때 ‘원장 후보 적격자가 없다’고 유도했다고 볼 수 있는 충분히 합리적으로 의심할 수 있는 정황이 있다”고 주장하면서 말입니다.
1차 공모 때 이사회 의결 과정에서 진흥원 이사로 참여한 창원시 A국장이 다른 이사들에게 ‘이번 지원자 중에는 원장 후보 적격자가 없다’는 것을 사실상 유도했다는 겁니다.
이 때문에 당시 이사회는 여러 차례 정회를 거듭하는 등 갑론을박이 이어지면서 4시간여 동안 회의가 진행된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A국장의 이런 유도는 원장 내정 의혹에 있어 실체를 밝힐 수 있는 매우 중요한 단서입니다.
진흥원 이사장은 바로 창원시장입니다. 하지만 시장은 당시 이사회에 참석하지 않았기에 A국장은 사실상 시장 대리인 역할을 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런 A국장의 유도가 만약 사실이라면 원장 내정설이 불거진 이유가 되기엔 충분하다고 볼 여지가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A국장은 “전혀 그런 사실이 없다. 이사회 참석한 이사들이 토론 끝에 창원의 전략산업과 미래신산업을 발굴하고 육성하는데 ‘적임자가 없다’는 만장일치의 합치된 결론을 내린 것”이라고 반박하고 있습니다.
◆1차 공모 때 원장 후보로 올라간 인물이 2차 공모에선 서류 탈락
그러다 1차 공모 때 원장 후보로 올랐던 2명을 상대로 추가 취재를 통해 새로운 사실을 확인했습니다.
1차 공모 때 원장 후보로 올랐던 B씨는 “자존심에 큰 상처를 받아서 2차 공모에는 도무지 지원할 엄두가 나지 않았다”고 털어놨습니다.
또 다른 원장 후보로 올라갔던 C씨는 2차 공모에 지원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C씨는 2차 공모 서류 전형에서 떨어지고 말았습니다.
1차 공모와 2차 공모 때 임추위 위원들이 같은데 1차 공모 때는 원장 후보로 올라갔던 인물이 2차 공모 때는 서류에서 떨어진 것입니다.
이에 대해서 창원시와 진흥원은 ‘블라인드’ 형태로 채용 절차가 진행됐기에 절차상 문제가 없을뿐더러 충분히 그럴 수도 있다는 입장입니다.
그러나 진 시의원은 “1차 공모와 2차 공모 때 동일한 임추위 위원들이 한 달 만에 원장 재공모에 지원한 인물을 모를 리가 있는지, 블라인드 채용이 ‘블라인드’로서 과연 의미가 있었는지 의문이 든다”며 창원시와 진흥원의 해명이 부실하다고 지적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창원시의회는 이 원장 후보자에 대한 인사검증 청문회를 거쳐 경과보고서를 채택했습니다. 쉽게 말해 이 원장 후보자가 원장으로 적합하다고 판단을 내린 것이죠.
그렇다고 원장 내정 의혹이 완전히 해소됐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경과보고서에는 진흥원이 임추위 회의록과 1차 공모와 2차 공모 심사결과 관련 임원별 배점표를 제출하지 않아 임용후보자 선정 과정에 대한 의혹이 충분히 해소되지 않았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추가적인 감사 등 소명이 필요한 부분도 있다고 지적하고 있습니다.
창원시의회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은 일단 창원시의 대응을 지켜보겠다는 입장입니다.
일각에서는 시시비비를 명확히 가리기 위해 ‘수사의뢰’ 이야기도 나오는 상황이어서 진흥원장 내정 의혹이 자칫 창원시의회 여야 정치 공방으로 확산할 여지도 있습니다.
진 시의원은 “인사청문회에서 절차에 대한 의혹을 해소해야 한다고 이사회 회의록 등 자료를 요구했지만, 청문회 참석 의원들은 아직도 자료를 못 받은 것으로 알고 있다”면서 “계속해서 자료를 투명하게 공개하지 않는다면 홍남표 시장에게 직접 자료를 요구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소관 부서와 진흥원 스스로 의혹을 말끔하게 해소하도록, 하루 빨리 자료를 의회에 공개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번 기사는 이 원장 후보자가 시의회 인사검증 때 했던 발언으로 마무리하려고 합니다.
“1차에 떨어진 이유를 모르겠고 2차에 왜 붙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2차에 지원하게 된 계기가 1차에 만들어 놓은 자료가 아쉬워서 지원하기도 했고 진흥원에 맞는 적절한 사람을 찾는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몇 차인지 상관없이 오기가 생겨 지원하게 됐습니다.”
1차에 떨어진 이유와 2차에 붙은 이유에 대해 이 원장 후보자 본인도 무척 궁금하겠지만 정작 그 이유를 정확히 알고 있어야 하는 건 ‘창원시민’이어야 하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