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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대 갈 사람 없다” 50만 병력 무너진 한국군 ‘비상’ [박수찬의 軍]

50만 명. 한국군이 국방개혁 2.0과 국방혁신 4.0을 추진하면서 설정했던 군 병력이다. 첨단과학기술 군대 건설이라는 목표, 북한의 재래식 위협에 맞설 수 있는 규모를 모두 감안한 수치다.

 

하지만 병역자원의 감소는 이같은 기조를 흔들리게 하고 있다. 상비병력은 50만명 아래로 떨어졌고, 회복할 기미는 보이지 않는다. 

 

과학화훈련에 참가한 육군 제6보병사단 초산여단이 장병이 연막을 뚫고 전진하고 있다. 육군 제공

병력 감소를 피하기 어렵다면 기존 병역자원을 효율적으로 관리해 군사력이 약해지는 것을 막아야 한다. ‘있는 사람 잘 지키기’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한국군과 정부의 병역자원 관리와 병력운용 등은 개선해야 할 부분이 적지 않다. 병사 복무기간 단축과 급여의 급격한 인상 등으로 병역 환경이 급변했지만, 대응책은 잘 보이지 않는다. 병역자원의 효율적 활용을 위한 맞춤형 정책이 절실한 실정이다.

 

◆입영률은 감소하고 편차는 더 커져

 

47만7440명. 국회예산정책처가 2023회계연도 결산자료에서 밝힌 지난해 말 기준 한국군 상비병력 규모다.

 

정원(50만명)에서 2만2000여명이 부족하다. 부사관과 병사가 각각 1만1000여명씩 부족한 것이 원인이다. ‘50만 한국군’이란 명제가 깨진 것이다.

 

이같은 추세를 멈추기는 쉽지 않다. 병무청의 20세 남성인구 전망에 따르면 20세 남성인구는 올해 25만명에서 2040년 14만명으로 감소할 전망이다. 특히 2035년 이후 급격한 감소가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상비병력 50만명 유지는 불가능하다.

 

하지만 국방예산 편성에 활용되는 중장기 계획은 상비병력 50만명을 기준으로 만들어지고 있다. 계획과 현실 사이에 괴리가 생기는 셈이다. 

 

육군 제32보병사단 장병들이 정부대전청사에서 중요시설 방호 훈련을 하고 있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병력 규모를 계획에 정확히 반영하는 것은 예산 편성과 군사력 건설에서 핵심적인 요소다. 병력과 군 인력활용체계는 인건비, 전력유지비, 방위력개선비 규모에 큰 영향을 미친다.

 

인구와 병역자원 규모의 변화를 중장기 계획에 반영하는 체계를 만들고, 2040년 이후의 한반도 방위에 필요한 상비병력 규모를 설정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대목이다. 이 작업이 언제 완료될 지 불확실한 것이 문제다.

 

이같은 상황에서 제한된 병역자원의 효율적 활용은 무엇보다 중요하다.

 

인구 변화에 따른 상비병력 규모 산정이 장기적 해법이라면, 병사 입영관리와 부사관 이탈 방지 등을 통해 일선 부대의 인력 문제를 최대한 해소하는 것은 단기적 해결책이다.

 

기존 국방인력체계 적용을 효율화해서 중장기 대책을 마련할 시간을 버는 셈이다.

 

육군 제52사단 장병들이 서울 여의도 일대 방송국에서 국가중요시설 대테러 훈련을 실시하고 있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문제는 인력 운영 측면에서도 허점이 드러나고 있다는 점이다. 최근 3년간 현역병 입영률을 살펴보면, 2021년 96.6%였으나 2022년 86.8%로 급감했고 2023년엔 87.5%에 그쳤다.

 

국회예산정책처는 병사 봉급 인상에 따른 지연 입대, 병역자원 감소를 고려하지 않은 계획 설정을 원인으로 지목했다.

 

국방부는 병장 기준 병사 급여를 2022년 67만6000원에서 2025년 150만원으로, 자산형성프로그램에 따른 월 최대 지원금은 2022년 14만1000원에서 2025년 55만원으로 올릴 예정이다. 

 

이 과정에서 연도별 수령액의 편차가 크다. 2022년 1월 입대 병사는 1587만원을 받지만 2023년 1월 입대자는 2148만원, 2024년 입대자는 2658만원을 받는다.

 

입대연도별로 500만원의 차이가 발생하는데 20대 초반의 입영 대상자 입장에선 입대를 미룰 이유가 될 수 있다. 실제로 병사 급여 인상 계획이 발표된 2022년부터 입영률 저하가 뚜렷해졌다.  

 

병역자원 감소를 입영계획에 제대로 반영하지 않은 것도 입영률 저하 원인으로 지목된다. 국가통계포털에 따르면, 19∼21세 남성의 주민등록인구는 2021년 96만1720명에서 올해 77만6594명으로 감소했다.

 

병역자원이 줄었다면 입영계획도 그에 맞게 설정해야 하지만, 국방부는 정원 대비 병사 전역에 따른 부족분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 사전에 계획한 입영인원과 실제 입대한 인원 간 격차가 발생하는 원인이다.

 

더 큰 문제는 병사 급여 인상이 마무리되는 2025년 이후다. 국회예산정책처는 “최근의 입영률 저하가 (급여 인상에 따른) 입영대상자의 입대 지연이라면 2025년 이후엔 입영률이 높아지겠지만, 병역자원 감소가 원인이라면 입영자는 감소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26일 경남 창원시 진해구 해군교육사령부 호국관에서 열린 해군병 704기 수료식에서 704기 장병들이 수료를 기뻐하며 정모를 던지고 있다. 해군 제공

각 군별 입영률도 편차가 커지고 있다. 특히 해군·해병대 입영률이 육·공군보다 현저히 낮다. 2021∼2023년 해군 입영률은 94.3%에서 70.5%로 떨어졌고, 해병대는 같은 기간 105.1%에서 76.8%로 급락했다. 같은 기간 육군은 큰 변동이 없고, 공군은 97.8%에서 102%로 높아진 것과 대조적이다.

 

해군의 입영률 저하는 육군(18개월)보다 긴 복무기간(20개월) 때문이라고만 할 순 없다. 욱군과 복무기간이 같은 해병대도 해군처럼 입영률이 급락했고, 해군보다 1개월 더 복무하는 공군은 입영률이 오르고 있기 때문이다.

 

해군의 경우엔 휴대전화 사용 제한이 원인으로 꼽힌다. 함정의 위치가 알려질 가능성으로 인해 함정에선 휴대전화 사용이 어렵다. 외출·외박 여건도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보인다.

 

숙련된 부사관이 전역을 선택하는 것은 군 인력운용에 어려움을 더한다. 부사관들이 명예전역을 신청하는 사례가 빠르게 늘고 있다다. 2021년엔 712명이 명예전역을 신청했지만, 2022년엔 1045명, 2023년엔 1616명으로 급증했다.

 

군대의 중추인 숙련된 부사관의 이탈은 전투력 유지와 군 인력관리 등에 악영향을 미치는 만큼 부사관 후보생 유치보다 인력 유출 방지 대책이 더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육군 제5포병여단 강속대대 장병이 유격훈련을 받고 있다. 연천=뉴스1

◆군무원·산업기능요원 관리 문제도 

 

전투병력을 지원하는 특정직공무원인 군무원 운용에도 구멍이 뚫리고 있다.

 

국방부는 병역자원 감소에 대응하고자 2018년 발표한 국방개혁 2.0 이래로 군무원 규모와 역할 확대를 추진하고 있다. 이에 따라 군무원 정원이 4만6000명으로 늘었으며, 2025년엔 4만7000명까지 확대된다.

 

하지만 실제 군무원 숫자는 지난해 말 기준으로 4만2439명, 정원의 92.3% 수준이다. 군무원 채용이 계획보다 미달했고, 퇴직자는 증가했기 때문이다.

 

특히 중도퇴직자 수가 크게 늘었다. 2019년 670명이었던 중도퇴직자는 2023년 1720명으로 3배 가까이 늘었다. 임용 후 3년 내 퇴직자는 2019년 243명에서 2023년 1125명으로 4배 이상 증가했다. 

 

군무원 역할에 대한 모호성이 주요 원인으로 꼽힌다. 일선 부대에선 군무원에게 작전상 위험이 있는 업무를 맡기거나 직무와 무관한 훈련 참여가 강제되는 등의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

 

군무원을 군인과 구분되는 민간 보조인력으로 볼 지, 군인에 준하는 전투요원으로 볼 지를 명확히 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군인에 준한다고 한다면, 복지와 처우도 군인에 걸맞는 수준으로 맞춰야 한다. 민간보조인력이라면 그에 맞게 업무 범위와 성격을 규정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군무원의 중도 이탈을 막기 어렵다.

 

병역자원의 일부를 기업에 보내는 산업지원인력 사업도 마찬가지다.

 

부족한 병역자원을 쪼개서 기업을 지원하는 제도인 만큼 전문연구요원과 산업기능요원, 승선근무예비역의 적정 규모를 정확히 산출해서 배정인원을 정해야 한다. 그래야 일선부대에 더 많은 인원을 현역으로 돌릴 여유가 생긴다.

 

2024 코브라골드 훈련에 참여한 해병대 수색부대 장병들이 해안에서 정찰활동을 실시하고 있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하지만 실상은 거리가 있다. 전문연구요원은 2019∼2023년 배정된 인원을 채운 적이 없다. 같은 시기 정원은 2500명에서 2300명으로 감소했지만, 실제 편입인원은 2019년 2426명에서 2023년 1541명으로 줄었다.

 

승선근무예비역도 2019∼2023년에 각각 1000명이 배정됐으나 이를 채운 적은 없다. 산업기능요원은 2019년을 제외하면 마찬가지다.

 

현역병은 18개월(육군 기준) 복무하지만 전문연구요원은 36개월, 산업기능요원은 34개월, 승선근무예비역은 선박직원으로 3년간 승선근무를 하게 되어 있다. 

 

현역병 복무기간이 단축되면서 병역의무를 빠르게 마치고 사회에 신속히 복귀하는 것이 더 낫다는 인식이 확산한 데 따른 결과로 보인다.

 

현재 한국군은 기존과 같은 규모로 병력과 군 조직을 유지하기가 어려워지고 있다. 입영 대상자인 20대 초반 남성인구의 감소 때문이다.

 

기존 병역자원을 효율적으로 운영해 인력 공백을 최소화하면서 숙련된 간부와 군무원들이 중도에 이탈하지 않도록 노력해야 한다. 과거처럼 모집에만 집중하는 방식으로는 군 규모와 질을 유지하기가 어렵다. 군 인사정책과 인력운용체계 전반에 대한 혁신과 재검토가 필요한 이유다.


박수찬 기자 psc@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