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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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원장도, 위원도 없는 ‘유령 위원회’ [김태훈의 의미 또는 재미]

북한인권법은 박근혜정부 시절인 2016년 3월 제정돼 그해 9월부터 시행에 들어갔다. 이 법률 9조 2항은 북한 인권 증진을 위한 국제적 협력을 위해 외교부에 ‘북한인권국제협력대사’(북한인권대사)를 둘 수 있도록 했다. 임명권자는 대통령이다. ‘둘 수 있다’라는 표현을 쓰긴 했지만 당연히 둬야 한다는 것이 법의 취지일 것이다. 그런데 2016년 가을 국정농단 사건이 터지고 청와대가 사실상 개점휴업 상태가 되면서 공석으로 남았다. 이듬해 출범한 문재인정부는 북한 인권의 강조가 북한 정권을 자극해 남북관계 개선에 악영향을 끼칠 것을 우려해서 그런지 북한인권대사 지명을 차일피일 미뤘다. 6년 가까이 빈자리였던 북한인권대사는 윤석열정부 들어 2022년 7월에야 이신화 고려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를 맞아들였다. 만시지탄을 금할 수 없다.

24일 이진숙 방송통신위원장 후보자(오른쪽)에 대한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더불어민주당 소속 최민희 과방위원장이 이 후보자에게 귓속말을 하고 있다. 남제현 선임기자

2014년 대통령 직속 특별감찰관이란 차관급 공직이 신설됐다. 대통령의 친인척 등 대통령과 특수한 관계에 있는 사람의 비위 행위를 감찰하라고 만든 직책이었다. 2015년 3월 검사 출신 이석수 변호사가 특별감찰관에 임명됐다. 하지만 그는 3년 임기를 채우지 못하고 2016년 9월 스스로 물러났다. 박근혜 대통령의 핵심 측근인 우병우 당시 청와대 민정수석과의 갈등 때문이었다. 문제는 이후 문재인정부를 거쳐 현 정부 들어서도 특별감찰관이 계속 공석으로 남아 있다는 점이다. 이 변호사가 초대이자 마지막 감찰관인 셈이다. 이는 ‘둘 수 있다’는 것도 아니고 무조건 임명해야 하는 자리다. 그런데도 8년 가까이 충원이 안 되는 것은 정권을 불문하고 권력자의 ‘감시자’를 두길 꺼려서라고밖에 달리 설명할 길이 없어 보인다.

 

윤석열 대통령은 대선 선거운동 과정에서 여성가족부 폐지를 공약했다. 하지만 정부 출범 이래 여소야대 국회가 계속되는 상황에서 거대 야당의 반대에 부딪혀 실행에 옮기지 못하고 있다. 여가부가 멀쩡히 존재하고 있는 만큼 일단은 장관을 임명해 부처로서 제기능을 수행하도록 하는 것이 순리일 것이다. 그런데 여가부 장관은 올해 2월 공석이 된 뒤 5개월 넘게 후임자가 없는 상황이다. 정부는 ‘어차피 없어질 부처인데 차관이 직무대행을 하면 됐지 장관이 뭐가 필요한가’라는 생각을 갖고 있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2028년 5월까지 존속할 제22대 국회 임기 동안 여가부를 폐지하는 내용의 정부조직법 개정안이 가결될 가능성은 거의 없어 보인다. 요즘 여가부 내에 ‘우린 뭐 하는 사람들인가’ 하는 자괴감이 팽배해 있다고 하니 대책이 필요하지 않겠는가.

경기도 과천에 있는 방송통신위원회 청사 전경. 연합뉴스

26일 방송통신위원회 이상인 부위원장이 사표를 내 용산 대통령실에 의해 수리됐다. 방통위법 4조에 따르면 방통위는 위원장(장관급), 부위원장(차관급)을 포함한 5인의 상임위원으로 구성된다. 윤 대통령이 지명한 이진숙 방통위원장 후보자를 상대로 국회 인사청문 절차가 진행 중인 가운데 위원장 직무대행이던 이 부위원장마저 그만둔 것이다. 문제는 위원장, 부위원장을 뺀 상임위원 3자리도 모두 공석이란 점이다. 위원장은커녕 위원도 하나 없는 허울뿐인 위원회가 되고 말았다. 거대 야당은 윤 대통령이 이 후보자 임명을 강행하면 즉각 탄핵소추를 통해 직무 수행을 못 하게 만들겠다고 엄포를 놓았다. ‘위원 없는 위원회’라는 기형적인 구조가 꽤 오래 지속될 것 같은 불길한 예감이 든다.


김태훈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