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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NS가 ‘마른 몸’ 정답인양…“섭식장애 환자 80%가 25세 이하” [건강+]

김율리 일산백병원 정신건강과 교수

먹는 것을 의지로 조절하는 단계 넘어서
‘마른 몸’ 정답인양 보는 SNS가 촉발 역할
신체·정서적 변화 10·20대 부정적 영향

영양부족·극단적 저체중땐 사망 위험도
유럽처럼 학교 기반 예방교육 등 나서야
정부기관 주도 치료 지원센터 구축 절실

“섭식장애는 먹는 것을 의지로 조절할 수 있는 단계를 넘어선 상태를 의미합니다. 이런 상태가 되면 스스로 바꾸기가 힘든 상태임을 주변에서 이해해야 합니다. 환자 80%가 25세 이하일 만큼 섭식장애는 젊은층에서 많이 발생하는 질환입니다. 특히 청소년 사이에서 섭식장애 문화는 전파력과 악영향이 큰 만큼 ‘프로아나(거식증 지지·pro+anorexia)’ 관련 유해한 사이트는 알고리즘을 통해 자동으로 걸러내는 것이 필요합니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김율리 일산백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25일 세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최근 젊은층의 섭식장애가 증가하는 것과 관련해 사회적 인식이 바뀌고, 정책 지원이 함께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섭식장애는 극단적으로 체중이 줄어드는 거식증(신경성 식욕부진증), 폭식을 반복적으로 하는 폭식성 섭식장애인 신경성 폭식증과 폭식장애 등이 포함된다. 거식증의 10∼50%는 폭식을 동반한다. 단순히 폭식과 구토라는 현상만으로 판단할 것은 아니다. 심리적인 부분이 크다.

“정상 체중인 거식증도 있고, 폭식과 구토를 자주 하지 않는 경우도 있습니다. 또 살을 빼려고 하지는 않지만 음식섭취가 두려워 먹기를 피하는 경우 등 ‘비정형화된 섭식장애’가 전형적인 섭식장애보다 훨씬 많습니다. 먹는 것에 대한 태도와 감정 등을 스스로 통제할 수 없는 변화가 일어난 것입니다.”

섭식장애 발생에는 유전적·환경적 요인이 함께 작용한다. 특히 거식증은 유전적 요인이 50%를 차지한다. 태어나기 전부터 어느 정도는 거식증의 위험을 갖고 태어나는 셈이다. 가족을 대상으로 한 연구에서 친인척에서 거식증 가족력이 있는 이들은 아닌 경우보다 평생 유병률이 약 11배 더 높게 나타났다.

김율리 일산백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가 25일 세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섭식장애는 조기발견 조기치료 시 완치가 가능하다”며 “섭식장애는 10∼20대에 생겨 젊은층의 건강과 삶을 황폐화하고, 자살이나 난임과도 연결돼 국가적으로도 손실이 큰 만큼 실태파악을 위한 체계적인 역학조사가 꼭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일산백병원 제공

김 교수는 거식증 유전적 요인과 관련해 “거식증 전장유전체 연구에서 비만, 대사질환 특성과 음의 상관관계가 있었다. 즉 비만 및 대사성 질환과 반대되는 유전적 특성이 강하다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여기에 “완벽주의, 강박적인 성향 등 사람의 특성도 원인이 된다.”

10∼20대 발병이 많은 것은 에스트로젠의 급격한 변화, 신체적 및 정서적 감수성의 성장, 또래 문화 등이 영향을 미치는 탓이다. 이런 상황에서 각종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나오는 외모, 체중 등에 대한 부정적인 자극이 섭식장애를 촉발하는 역할을 할 수 있다.

김 교수는 “SNS는 ‘마른 몸’을 정답처럼 보여주는데 이는 10대, 20대 여성이 ‘마름’을 미의 기준으로 바라보게 해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 어렵게 만든다”며 “또 먹방은 폭식욕구를 대리만족시키는 일종의 상업적 목적의 서커스 같은 것으로 섭식장애에 취약한 사람에게 폭식욕구를 자극할 수 있다. 훈련된 ‘프로 먹방러’조차 이로 인한 후유증에 시달린다”고 경계했다.

국민건강보험공단에 따르면 섭식장애로 병원에 방문한 환자수는 2016년 7647명에서 2021년 1만3000여명으로 5년 만에 70%가 늘었다. 김 교수는 그러나 이 같은 증가도 “빙산의 일각”이라고 말한다. 대다수 환자가 병원에 오지 않거나 의사가 병을 인식하지 못해 통계에서 누락되고 있다는 것이다.

 

섭식장애 유병률 증가는 세계적인 현상이다. 그러나 아시아의 경우 특히 심하다. 전 세계적 유병률은 2.8%인데, 아시아의 경우 3.5%로 더욱 높게 나타난다.

섭식장애는 식습관이 무너지면서 영양부족을 동반하고, 특히 극단적인 저체중인 경우 사망에 이를 수도 있다는 점에서 위험하다. 특히 거식증은 진단 후 10년 이내 사망률이 5~10%에 이르고 환자의 20%는 만성화한다. 정신·심리적으로도 고립되고 대인관계가 단절돼 사회생활이 어려워지기도 한다.

“섭식장애 치료는 건강이 위험하다면 신체 상태 회복을 최우선으로 하고, 그 후 정상적인 식습관을 회복하는 데 초점을 둡니다. 섭취행동을 변화시키기 위해 동기강화, 정신심리치료 등을 시행하고, 심각한 저체중인 경우에는 비위관이나 경정맥을 통한 영양공급이 필요하기도 합니다. 치료기간은 섭식장애 기간과 심각도 등에 따라 달라집니다.”

김 교수는 섭식장애가 개인의 건강을 넘어 사회적 비용과도 직결되는 만큼 정책적 개입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영국 등 유럽의 경우 지난 10여년간 청소년 대상 학교기반 섭식장애 예방 교육, 계몽, 조기 개입에 예산 지원을 하면서 2003년 이후 신경성 폭식증의 환자가 감소한 점을 벤치마킹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섭식장애 지원 센터와 같이 치료 지원 체계 구축이 필요합니다. 서구에서는 청소년, 청년층에서 호발하는 이 병을 치료하는 것이 국가의 미래를 위해 필요하다고 인식하고 정책적으로 개입하고 있습니다. 가까운 일본도 섭식장애 전국 지원 센터(CEDRI)가 있고 거점 지역마다 섭식장애 지원 거점 병원을 지정해 지역의 섭식장애 치료를 지원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도 환자와 가족에게 정보를 제공하고, 시민들을 위한 섭식장애를 상담하고 치료자를 훈련하는 정부 주관 기관이 필요합니다.”


정진수 기자 jen@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