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식은 기후위기 시대에 지구의 일원 모두 존귀한 삶을 영위할 권리인 ‘평등한 평화’를 위한 행동입니다.”
이윤경(28)씨는 ‘탄소 잡는 청년’이다. ‘채식은 개인이 실천하는 최상의 기후위기 대책’이라던가. 그 누구의 말처럼, 윤경씨는 채식으로 탄소를 잡는다.
그는 대전 비건(Vegan) 공동체인 ‘탄소잡는채식생활네트워크(탄잡채)’ 구성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윤경씨는 “탄잡채는 ‘채식으로 탄소를 줄이자’라는 공통분모로 만난 대전 청년들의 모임”이라며 “육식 자본주의로 인한 탄소순환의 파괴가 가져오는 생태계와 문명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비건 공동체”라고 말했다.
윤경씨는 달걀·생선·해물·우유·유제품을 먹지 않는 완전 채식자인 ‘비건채식자’이다. 올해로 5년됐다.
채식주의자는 고기와 생선은 물론 달걀과 유제품, 꿀과 같이 동물에서 비롯한 모든 식품과 제품을 소비하지 않는 생활 습관을 말한다. 자신의 삶, 건강 상태에 적합한 방식으로 단계를 선택할 수 있는데 비건, 오보(Ovo, 달걀 섭취), 락토(Lacto, 우유·유제품), 락토오보(Lacto ovo,우유·유제품·달걀)의 4단계로 분류한다.
일주일에 하루 채식을 하면 온실가스 방출양을 최대 80%까지 감소시킬 수 있다고 한다.
2007년 노벨평화상을 수상한 라젠드라 파차우리 전 유엔 정부간기후변화위원장이 일주일에 하루, 고기를 먹지 않았을 때의 효과를 연간 통계로 내보니 1인당 2268㎏의 이산화탄소 감축 효과, 영국 기준으로 자동차 500만대의 멈춤 효과가 있었다. 2009년 월드워치 보고서에 따르면 축산업의 기후변화에 미치는 영향은 51%나 됐다. 같은해 네덜란드 환경평가국은 ‘완전채식식단은 기후변화 해결비용의 80%를 절감할 수 있다’는 내용의 보고서를 내놨다.
채식을 개인의 식성으로 볼 수 있지만, 채식이 기후위기 극복을 위한 시민운동, 사회운동으로 연결되는 이유이다.
윤경씨가 채식을 시작한 건 한 권의 책을 읽으면서다.
“2019년 ‘아무튼, 비건’이란 책을 읽으면서 비건을 시작하게 됐어요. 저자의 이야기처럼 어느날 이 책을 보게 됐고, 알게됐고, 이래서는 안되겠다 싶어 저도 제 삶에 변화를 줬죠. 동물을 먹지 않고, 동물의 털과 가죽으로 만든 제품을 소비하지 않는 ‘비건’의 삶을요.”
혼자 비건하는 건 사회 구조상 여러모로 한계에 부딪힐 수 밖에 없었다.
윤경씨는 “자본주의 체제 자체가 채식하는 개인을 고립시키고 단절시키게 된다”며 “삼시세끼 혼자 비건하는 게 어려웠다. 사람을하고 계속 부딪히고 소외감도 느꼈다. 비주류가 되어간다는 생각에 그만둘까 생각했던 적도 있었다”고 떠올렸다.
비건으로 인한 고립감을 느끼던 와중, 대전충청지역 비건지향자들의 오픈채팅방을 알게됐다. 정보를 공유해 보다 수월하게 실천을 이어가다 탄잡채를 알게 됐다.
탄잡채는 비건공동체를 지향하는 20여명이 모여 2020년 초가을쯤 생겼다.
윤경씨가 탄잡채 활동을 본격 시작한 건 지난해부터이다.
그는 “당시 환경교육을 해보고 싶어서 대전환경교육센터에 들어갔다. 공부를 목적으로 환경 독서 모임을 운영하고 있었는데, 독서모임보다는 줍깅 등 얼굴을 보고 이야기하고 행동하는 걸 중요하게 생각했다”며 “은행동 일대에서 ‘줍깅’(조깅을 하면서 주변에 떨어진 쓰레기를 줍는 행위)을 함께 하다 탄잡채 가입을 권유받았다”고 설명했다.
윤경씨는 탄잡채와 함께하면서 개인적 실천만큼 사회적 목소리를 내는 데 집중한다. 거대한 의제를 일상에 스며들도록 고민한다.
윤경씨는 “2022년에 대전비건페스티벌이 처음 열렸다. 기존에 있던 분들은 비건을 알리기 위해 축제를 기획했었는데, 단발성에 그친다는 고민이 컸다”고 말했다.
떠올린 건 문화예술적 접근이다. 그렇게 ‘극단 탄잡채’가 만들어졌다.
탄잡채 구성원 중 7명이 활동하는 극단 탄잡채는 시민들과 비건운동, 비거니즘 운동을 문화예술적으로 풀어낸다.
지난해부터 기후정의와 동물권을 주제로 한 그림자 연극 ‘특별한 희망’을 지속 열고 있다. 올해 5월엔 전남 구례군 여성해방마고숲밭에서 공연을 했고, 8월 31일엔 대구N맥페스티벌에서 공연이 예정돼있다. 각본과 캐릭터는 극단 탄잡채 구성원들이 직접 짠다.
연극의 목표는 ‘채식공동체의 확장’이 아닌 ‘육식 자본주의 균열’이다.
“기후정의에서 동물권은 빼놓을 수 없는 이야기라고 생각해요. 자본주의는 기본적으로 ‘착취’를 기반으로 시스템이 유지되고 있어요. 인간의 자연과 비인간 동물에 대한 착취가 지금의 기후-생태위기의 원인이자 결과이죠.”
연극 내용엔 육식산업의 시스템이 ‘누구’의 착취를 기반으로 유지되고 있는지 신랄하게 알린다.
윤경씨는 “마트에서 ‘고기’라는 이름으로 둔갑한 ‘상품’이 사실 우리처럼 먹고 마시며 느낄 수 있는 ‘생명’이라는 게 사실”이라며 “연극을 관람한 뒤에는 우리가 당연하게 생각하는 육식자본주의에 대한 생각에 ‘균열’이 일어나는 경험을 할 수 있다고 확신한다”고 했다.
탄잡채의 목소리는 연극 무대에만 머무르지 않는다. 무대 밖에선 가열차고 우렁찬 외침으로 이어진다. 지역사회와 연대하면서 확장성·운동성도 가져가고 있다. 이달 초엔 대전퀴어문화축제에 연대했다.
비건은 자신 검열의 과정이기도 하다. 비건 자원이나 인프라가 중요한 이유이다. 탄잡채는 최근 비건 케이터링을 시작했다.
윤경씨는 “다른 지역도 비슷하겠지만 비건을 실천하고 싶어도 자원이나 인프라가 많이 부족하기 때문에 완벽하게 비건을 지향한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고 가능하지도 않다”며 “사회운동 단체나 비영리기구(NGO)에서도 행사를 준비할 때 비건 먹거리를 준비하는게 어려운 일이기 때문에, 탄잡채에서 비건 케이터링을 하고 있어요. 땅과 물을 오염시키지 않고 탄소를 순환시키고 농민의 얼굴을 마주할 수 있는 유기농, 무농약 먹거리로 음식을 정성껏 준비한다”고 했다.
탄잡채는 대덕구에 있는 지역화폐 한밭레츠 공간을 함께 사용하고 있다. 이 공간은 탄잡채 지향점과 맥을 같이한다.
윤경씨는 “저는 한밭레츠를 ‘커먼즈(commons)’로 정의한다”며 “커먼즈는 어떤 것을 ‘공유’하는 것이 아니라 ‘나누는 것’으로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공유오피스와는 달리, 커먼즈는 자본주의 체제를 유지하는 ‘이윤 생산’에서 벗어나고자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대신 발 디딜 곳 없는 타자들의 수많은 마주침을 통해 ‘삶의 생산’을 회복하고, 서로의 삶에 접속함으로써 자본주의에 포획되지 않는 삶의 터전을 공동으로 꾸린다”며 “탄잡채에게 한밭레츠는 그런 공간”이라고 덧붙였다.
탄잡채는 궁극적으로 ‘존재’를 꿈꾼다. 채식 캠페인도, 시민운동으로의 확장은 부수적일 뿐이다.
“자본주의가 철저하게 끊어버린 연결고리를 다시 이을 수 있도록 탄잡채 친구들이 어디에서나 ‘존재’하는 것, 그게 저희의 지향점이죠. 남들이 느낄 때 저희의 존재 자체가 왠지 모르게 불편하고 신경쓰이니까요. 그게 시작이라고 생각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