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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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폭염 극복 농업기술로 푸른 식탁 만든다

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요즘, 언론에 자주 오르내리는 단어 중 ‘히트플레이션’이란 말이 있다. 열을 의미하는 ‘히트(Heat)’와 ‘인플레이션(Inflation)’을 합친 말로, 폭염으로 농산물 가격이 급등하는 현상을 가리킨다.

기상청 자료에 따르면 연간 폭염일수는 지난 30년(1991~2020년)은 8.5일, 최근 10년에는 12.9일로 4.4일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2018년 기록적 폭염으로 인한 농작물 보험 지급액은 65억원이었는데, 2021년에는 735억원으로 3년 사이에 11배 증가했다.

김명수 농촌진흥청 국립원예특작과학원장

실제로 상추와 토마토, 오이처럼 비닐온실에서 재배하는 농작물은 차광이나 환기를 하더라도 5월부터 생산성이 눈에 띄게 떨어진다. 여름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면 바깥 기온이 오르고 햇빛양이 증가하며 내부 기온이 40도 이상까지 오른다. 농가에서는 고온 피해를 줄이기 위해 다양한 방법을 활용하고 있으나, 비용 부담으로 농사를 잠시 쉬는 곳도 있다.

이때 사용할 수 있는 보다 적극적 냉방 기술로는 안개 분무라고 불리는 ‘포그 냉방’을 들 수 있다. 이 기술은 0.05mm 이하의 미세한 물 입자를 안개처럼 뿌려서 물 입자들이 기화하며 기온을 낮추는 원리이다. 기존에는 상대습도가 높거나 환기가 어려우면 냉방 성능이 저하돼 기술 보급에 어려움이 있었지만, 물양을 미세하게 조절하고 환기 성능을 높일 수 있는 기술이 개발되며 최근 적용이 늘고 있다.

온실 못지않게 노지 작물의 여름나기도 쉽지 않다. 밭두둑은 풀과 나무가 자라는 들판보다 표면 피복도가 낮아 수분 증발산에 의한 온도 조절력이 약하다. 여기에 토양수분 유지와 잡초 관리를 위해 비닐까지 덮게 되면 한여름 두둑 표면 온도는 60~70도에 달하게 된다. 고온 피해가 심해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이런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농촌진흥청은 겉면은 흰색이고 속은 검은색을 띠는 ‘저온성 필름’을 개발해 보급 중이다. 이 필름은 일반 필름과 달리 적정한 투습도를 유지해 수분을 일정 보존하면서도 대기 중으로 수분이 발산되도록 해 지속해서 온도를 떨어뜨릴 수 있다. 실제로 농작물의 고온 피해가 가장 심한 여름철 오후, 저온성 필름은 일반 흑색 필름보다 토양 온도를 7~9도, 표면 온도를 15~30도 낮추는 효과가 나타났다.

작물의 생육 리듬과 성장에 맞춘 처방 기술도 있다. 대표적인 것이 배추의 고온 스트레스 저감을 위해 뿌리는 생리활성제이다. 연구진이 아미노산의 한 종류인 ‘글루탐산’과 ‘키토산’, ‘살리실산’을 돌아가며 뿌리니 7~8월 더위에도 배추 무게가 처리 전보다 13~20% 증가하는 효과가 나타났다. 반면, 아무것도 처리하지 않은 배추는 영양 생리장해로 잎이 무너지는 붕소 결핍과 속잎이 꼬이고 구부러지는 증상이 나타났다. 생리활성물질은 여름 배추 재배 농가에서 환경 스트레스를 줄이고 광합성을 증진하는 약제로 활용되기 시작해 농가의 소득 안정은 물론 여름철 수급 안정에도 기여할 것으로 기대된다.

기후변화, 그중에서도 폭염은 작물의 정상적인 생육을 가로막는 큰 위협이다. 그러나 심화하는 더위만큼 이에 대응하는 농업 기술 역시 진화를 거듭하는 중이다. 쓰임새 높은 기술들이 주요 채소의 수급 불안을 해소하고 안정적인 생산 기반을 구축하는 단비 역할을 해주길 기대한다. 여름 열기 속에서도 풍성한 푸른 식탁을 국민들에게 제공할 수 있도록 연구에 더욱 매진하겠다.

 

김명수 농촌진흥청 국립원예특작과학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