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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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가만난세상] 감세 쿨한데 소상공인 지원은 신중

“정치란 나눔이요, 분배다. 누구에게 거둬서 누구에게 나눠 주느냐 그게 바로 정치다.”

과거 방영된 드라마 속 정도전의 외침은 이따금 머릿속을 맴돈다.

채명준 기자

이번에는 기획재정부 공무원의 한마디가 트리거가 됐다. 연매출 3000만원으로 설정된 소상공인 전기료 지원 기준과 관련해 그는 “처음 하는 사업이기 때문에 중위매출의 50% 정도로 정해 취약한, 진짜 어려운 소상공인을 대상으로 우선 실시한 것”이라고 말했다. 지원자 선별에 ‘신중’을 기했다는 뜻인데 월매출로 환산하면 겨우 250만원이다. 임대료와 각종 공과금 등을 계산하면 심각한 자본잠식 상태로 지원이 아닌 ‘폐업’이 필요한 상태일 것이다.

이를 반영하듯 지난 5개월 동안 해당 예산 소진율은 16%에 불과하다. 소상공인의 어려움이 화급을 다툰다는 점을 고려하면 ‘정책 실패’다. 이달 윤석열 대통령이 “25조원 규모의 소상공인 종합대책을 마련했다”고 직접 밝히며 전기료 지원 기준을 연매출 6000만원으로 두 배 상향했으나 이 또한 ‘지나치게 신중한’ 탁상공론이라고 자영업자들은 분통을 터뜨린다. 25조원도 저리대출과 대출상환 등 간접지원이 대부분이다.

이러한 정부의 신중함에 시시각각 불어나는 이자는 이미 소상공인의 코밑까지 차오른 상황이다. 최악의 자영업자 폐업 건수, 높은 실업급여 지급액과 2금융권 연체율 등이 이를 보여준다.

현 정부가 매사에 신중한 것만은 아니다. 감세를 행함에 있어서는 역대 어느 정권보다 ‘쿨’하다. 이번 세법개정안을 포함해 윤석열정부 출범 이후 추진한 감세는 5년간 약 90조원 규모가 될 것으로 추산된다.

특히 이번 세법개정안에는 상속세와 관련한 자녀 공제금액을 기존 5000만원에서 5억원으로 무려 10배 늘리고, 이를 차감한 상속액이 30억원 초과 시 최고세율까지 40%로 10%포인트 낮추는 내용 등이 담겼다. ‘신중에 신중을 기한’ 소상공인 종합대책과는 온도 차가 크다. 이외에도 가업상속공제와 금융투자소득세 폐지, 가상자산 과세 유예 등 굵직한 감세안들이 줄을 잇는다. 지난해 56조여원의 역대급 ‘세수펑크’를 경신할 것으로 예상되는 올해에도 이처럼 과감한 감세 행보는 쿨하다 못해 걱정스럽다.

감세는 기본적으로 못 가진 자보다 가진 자에게 혜택이 큰 법이다. 세금을 많이 내는 사람일수록 혜택이 큰 반면 세수가 줄며 국가의 약자 지원 여력이 떨어지는 탓이다. 소상공인 지원에 그토록 신중했던 까닭도 여기에 있을 것이다.

“잘 살아 보세”라는 외침에 호응했던 서민들의 희생이 있었기에 현재의 선진국 대한민국이 존재한다. 마찬가지로 ‘공동체’를 위해 희생한 소상공인이 있기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을 극복할 수 있었다. 그런 이들이 “살려달라”며 내미는 손을 경제 발전이란 이유로 쳐내고, 가진 자의 손을 잡는 것이 선진국 대한민국이 취해야 할 태도일까.

코로나19 뒤 숨돌릴 틈도 없이 역대급 경기침체에 직격타를 맞으며 소상공인들은 벼랑 끝에 서 있다. 누구에게 거둬서 누구에게 나눠줘야 할 때인가.


채명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