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미 좌파 니콜라스 마두로(61) 베네수엘라 대통령이 28일(현지시간) 대통령 선거에서 승리하며 3선 고지에 올랐다. 하지만 야권에서 곧바로 부정선거 의혹과 동시에 대선 결과 불복을 선언하고 국제사회도 마두로의 승리를 인정하지 않고 있어 순탄하게 고지에 안착할 수 있을지 불투명해 보인다.
엘비스 아모로소 베네수엘라 선거관리위원장은 공식 투표 종료 후 약 6시간 지난 29일 0시10분쯤 “80% 정도 개표한 결과 마두로 대통령이 51.2%의 득표율로 1위를 기록했다”고 당선 사실을 공식화했다. 중도보수 성향 민주야권의 에드문도 곤살레스(74) 후보는 44.2%의 득표율을 기록했다.
친여 성향 베네수엘라 선관위가 내놓은 대선 결과는 서방 언론의 출구조사 결과와 ‘정반대’다. 워싱턴포스트(WP)는 이날 미국 에디슨리서치 출구조사 결과를 인용해 곤살레스 후보가 65%, 마두로 대통령이 31% 득표율을 예상한다고 보도했다. 선관위는 실시간 개표 상황을 공개하지 않고, 개표 과정 참관을 원하는 시민그룹을 차단하는 등 투명성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마두로 대통령은 “베네수엘라 국민과 세계에 나 니콜라스 마두로 모로스가 베네수엘라 공화국의 대통령으로 재선됐다고 말할 수 있다”며 “평화, 안정, 공화주의 이상, 평등 이념의 승리”라고 밝혔다.
반면 야당은 실시간 개표 결과조차 공개하지 않은 선관위를 비판하며 곤살레스 후보의 승리를 선언함과 동시에 마두로 대통령을 승자로 선언한 정부와 대결을 예고했다. 곤살레스는 기자회견을 통해 “베네수엘라인들과 전 세계가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고 있다”고 말했고, 야당 지도자 마리아 코리나 마차도는 “곤살레스의 압도적 승리”라고 강조했다.
베네수엘라 정국은 집권당과 민주야권 간 극도의 대립 속에 2014년과 2017년 각각 40여명, 120여명의 사망자를 낸 반정부 시위와 같은 악몽을 반복할 공산도 커졌다. 2019년 ‘한 지붕 두 대통령’ 체제와 유사한 상황이 재연될 여지도 있다. 수도 카라카스에서 야권 지지자들은 대선 결과에 대한 항의의 표시로 냄비를 두드리기 시작했고, 마두로 대통령 지지자들은 대통령궁 밖에서 콘서트를 열어 자축하는 등 나라가 두 쪽으로 쪼개졌다.
마두로 대통령은 콘서트 무대에 올라 레게톤 음악에 맞춰 춤을 추고 “우리가 살아온 날은 정말 아름다운 날”이라며 “국민이 마땅히 누려야 할 이 승리를 나에게 준 것에 감사한다. 이건 평등이라는 이상의 승리”라고 말했다.
국제사회도 베네수엘라 정부 부정선거 의혹에 대한 의심의 눈초리를 거두지 않고 있다. 토니 블링컨 미국 국무장관은 “우리는 발표된 결과가 베네수엘라 국민의 의지나 투표를 반영하지 않는다는 심각한 우려를 갖고 있다”면서 “국제사회는 이를 매우 주의 깊게 지켜보고 있으며 그에 따라 대응할 것”이라고 전했다. 미국 정부는 민주주의 훼손과 인권 탄압 등을 이유로 베네수엘라 석유·가스산업을 중심으로 강력한 경제 제재를 하고 있다.
아르헨티나와 페루, 코스타리카 등 주변국에서도 ‘마두로의 사기 승리 거부’ 또는 ‘마두로 대통령 인정 불가’와 같은 반응을 보이고 있다.
2013년 대권을 잡은 마두로 대통령은 선거 승리로 내년부터 2031년까지 6년 더 집권하게 된다. 1999년 우고 차베스 전 대통령 이후 30년 넘게 좌파 통합사회주의당(PSUV) 일당 ‘차비스모’ 체제가 유지될 전망이다. 차비스모는 차베스 전 대통령 이름에서 유래한 용어로, 중앙집권적 민족주의 포퓰리즘 성향의 사회주의를 통칭한다. 남미의 온건 좌파 정부 출범 물결(핑크 타이드)에 다시 탄력이 붙을 가능성도 제기된다.
마두로 대통령은 유세에서 미국의 제재 극복을 통한 경제 활성화, 정유 시설 현대화, 주변국 좌파 정권과의 연대 강화, 가이아나와 분쟁 중인 영토에 대한 자주권 회복 등을 주요 공약으로 내세웠다. 그는 중남미 대표적인 반미(反美)주의자로, 최근 수년간 이어진 경제난의 주요 원인을 미국 탓으로 돌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