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씨는 “엄격히 육류 섭취를 제한하기보다는 일반식을 하면서 되도록 식물성 음식을 먹으려 하고 있다”며 “건강상의 이유나 개인 신념으로 채식하려는 사람들이 많아진 것 같다. 식당이나 마트에서도 비건 음식들을 쉽게 찾을 수 있어 더이상 채식이 괴롭지 않고, 오히려 음식 선택지가 늘어난 기분”이라고 말했다.
#2. 서울에 사는 A씨는 카페에 갈 때면 항상 우유를 오트(귀리)나 두유로 변경해 주문한다. 언젠가부터 동물성 우유를 먹으면 속이 불편해지는 탓이다. A씨는 “한의원에 가니 유제품을 끊으라고 해서 카페라테를 먹을 때마다 추가 금액을 내더라도 두유나 오트로 옵션을 변경하고 있다”며 “우유보다 소화가 잘되고 칼로리도 더 낮다. 맛도 더 고소하다”고 말했다.
◆소비자 선택권 늘리는 ‘미래 식량자원’
식량안보, 동물복지, 환경보호 같은 묵직한 주제에만 따라붙던 채식이 이제는 하나의 생활방식으로 자리 잡았다. 더는 ‘육식주의자’, ‘채식주의자’라는 말로 나눌 수 없을 만큼 현대인들의 식사법은 다양화, 다변화했다. 국내외 식품업계도 젖소 한 마리 없이 만든 우유와 치즈, 고기의 맛과 식감까지 재현한 대안육 등을 잇달아 내놓으며 소비자 선택권을 넓히고 있다.
30일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에 따르면 국내 대안육 시장은 지난해 기준 약 252억원이다. 내년에는 295억원으로 17% 증가할 전망이다.
대안유(乳) 시장은 더 크다. 지난해 우리나라 대안유 시장 규모는 6769억원으로, 5년 전 2018년(5221억원)에 비해 약 30% 성장했다. 2026년에는 식물성 시장 규모가 1조원을 넘어설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특히 두유를 제외한 기타 식물성 음료 시장 파이도 지난해 934억원으로, 2018년(308억원) 대비 3배나 성장했다.
당장 높은 투자비용이 들지만 장기적으로는 첨단기술을 활용해 대량 생산이 가능하고 시장을 안정화할 수 있는 중요한 식량자원이라는 점도 식품업계가 대안식품 개발에 주목하는 이유다. 원유 가격이 뛰면 버터, 치즈, 아이스크림 등 우유를 원료로 하는 가공식품 가격도 덩달아 뛰는 게 일반적인데 대안유 시장이 커지면 원유 소비 의존도가 낮아져 이 같은 구조가 바뀔 수 있다는 게 업계 관계자의 설명이다.
이처럼 먹거리와 첨단기술을 융합한 ‘푸드테크’ 시장이 급격히 덩치를 키우면서 글로벌 미래시장을 선점하기 위한 식품업계 경쟁도 심화하고 있다. 식품업계는 지구환경, 동물복지에 관심이 많은 가치소비족뿐만 아니라 유당불내증이 있거나 콜레스테롤, 글루텐 등에 대한 불편함을 겪는 소비자의 다양한 니즈를 충족시키기 위해 대안식품 개발에 한창이다.
◆맛부터 영양까지… 치열한 대안식품 기술 현장
지난 23일 찾은 서울 성수동 신세계푸드 대안식품 연구소 ‘베러스튜디오’는 출입부터 쉽지 않았다. 신원 확인과 기밀유지 서약까지 마치고 나서야 삼중 보안이 된 연구소 안을 돌아볼 수 있었다. 식품업계 미래가 달린 혁신기술 개발 현장임을 실감할 수 있었다.
푸드테크와 채식, 동물권 관련 책이 빼곡히 꽂힌 공용공간을 지나 본격적인 연구실로 들어서자 식욕을 자극하는 냄새가 은은하게 감돌았다. 실험실 같기도, 대형 주방이나 식품공장 같기도 한 이곳에서는 수십명의 연구원이 하얀 가운을 입고 분주히 움직이고 있었다.
먼저 줄기세포를 배양하고 증폭하는 설비들이 눈에 띄었다. 전 세계 푸드테크 기업들이 사활을 걸고 있는 핵심 연구분야이자 미래 식품으로 꼽히는 배양육을 연구하는 곳이었다. 식물성 재료로 모양과 식감을 고기와 비슷하게 만드는 대안육과 달리 배양육은 동물 세포를 채취해 인공적으로 키운 뒤 조직으로 성장시킨다.
신세계푸드는 이미 해조류에서 추출한 다당류, 콩의 대두단백, 비트와 파프리카에서 추출한 소재를 활용해 콜드커트(샌드위치용 햄), 런천 캔햄 등 고기 맛과 식감을 즐길 수 있는 식물성 대안육 제품을 수십 가지 내놨지만 배양육 개발에도 힘쓰며 대안식품 카테고리 확장에 나서고 있다.
배양육이 중장기적 과제라면 맞은편엔 최근 소비자들 수요가 높은 대안유 제품 연구가 한창이었다. 이 회사는 최근 가루쌀을 활용해 대안유 ‘라이스 베이스드’를 국내 최초로 개발했다.
가루쌀은 국내에서 개발된 신품종 쌀로, 물에 불려 빻아야 품질 손상이 없이 쌀가루를 만들 수 있는 기존 쌀과 달리 수확 직후 바로 빻아서 가루로 만들 수 있다.
농림축산식품부는 국산 쌀 소비 감소에 따른 공급 과잉을 개선하고 쌀 소비를 늘리기 위해 가루쌀을 육성하고 식음료·외식 업계의 가루쌀 제품 개발을 지원해왔다.
서일원 신세계푸드 연구개발2팀 팀장은 “오트를 활용한 대안유 개발을 먼저 진행했지만 한국인에게 익숙하고 더 고소한 풍미를 낼 수 있는 쌀을 새로운 식품 원료로 택했다”며 “오트는 대부분 수입산으로 가격 변동성이 크지만 우리 정부가 개발한 가루쌀은 지속적으로 생산량이 늘어나고 있고, 밀가루처럼 건식 제분이 가능해 가격 안정화에 도움이 된다”고 설명했다.
쌀로 고소한 맛을 낸다면 우유의 부드럽고 묵직한 질감은 어떻게 내는 걸까. 우유의 높은 영양을 보충할 수는 있을까. 이날 연구원이 노란색 효소액을 특정 온도로 가열해 가루쌀을 넣고 기계를 돌리자 맑은 빛깔의 쌀 추출액이 만들어졌다. 효소액이 온도를 높이는 과정에서 쌀가루가 걸쭉하게 되는 현상을 막고, 전분질을 분해한 것이다. 여기에 현미유를 첨가해 부드럽고 묵직한 보디감을 표현하고 칼슘 강화제 등을 더하니 금세 고소하고 영양가 높은 대안유가 완성됐다. 쌀 향을 넣어 만든 시중의 쌀 음료와는 달리 별도의 향료 없이 100% 식물성 소재를 사용했으며, 맛이나 질감도 주스보다는 우유에 가깝다. 여기에 식이섬유와 칼슘까지 들어가 영양까지 잡았다.
연구진은 귀리와 고단백 견과류 캐슈너트 등 식물성 원료를 배합해 대안치즈도 개발했다. 기존 식물성 치즈와 달리 부드러운 치즈 본연의 식감과 향, 멜팅성(열에 녹는 성질)을 구현하는 데 성공했다. 이렇게 만들어져 최근 출시된 ‘식물성 체다향 치즈 슬라이스’는 다음 달 노브랜드버거 햄버거로도 만들어져 소비자와 만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