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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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탄소 표방 에어컨 없앤 ‘찜통셔틀’… 친환경 좋지만 불만 목소리 들어야 [남정훈 기자의 아모르파리]

조직위원회 ‘친환경 올림픽’ 모토
경기장 오가는 버스 사우나 방불
아무도 태우지 않은 채 운행 빈번
외려 환경에 더 해롭지 않나 씁쓸

2024 파리 올림픽 조직위원회가 내건 슬로건 중 하나는 ‘친환경·저탄소’입니다. 이 때문에 에어컨에 소모되는 전력 생산 과정에서 발생되는 이산화탄소 등 온실가스를 최소화하겠다며 ‘노 에어컨’을 선언한 것이죠. 선수단 숙소에 에어컨을 설치하지 않은 것도, 경기장의 95% 이상이 기존 건물을 활용하거나 임시시설을 설치하는 것도 탄소 배출을 최소화하려는 노력입니다. 남녀 단체전 동반 금메달을 따낸 양궁 경기장도 파리의 군사시설인 레쟁발리드에 설치한 임시시설입니다.

지난해 여름 파리에서만 무더위로 5000여명이 사망한 것으로 알려져 기자도 출국 전에 가장 걱정한 것 중 하나가 더위였습니다. 하지만 파리에서 일주일 정도 지내보니 낮 최고기온이 30도 언저리라 그리 덥진 않습니다. 습하지 않아 햇볕이 따가워도 그늘만 들어가면 시원하다는 느낌이 듭니다.

다만 셔틀버스에서도 저탄소 방침의 일환으로 에어컨을 틀지 않아 문제가 되고 있습니다. 더구나 테러 위협을 막는다며 창문까지 개방하지 못하게 해 버스 안은 그야말로 사우나나 다름없습니다. 수영 황선우 선수가 “버스에서 더위를 견디지 못해 쓰러진 선수도 있다”고 말할 정도였죠.

선수들뿐만 아니라 취재진 및 관계자들에게도 메인 프레스 센터(MPC)와 경기장을 오가는 셔틀버스가 제공됩니다. 기자가 묵는 숙소가 MPC 근처라 경기장에 갈 때 셔틀버스를 주로 이용하고 있는데 일주일 정도 이용해 보니 에어컨이 빵빵한 한국의 버스가 너무나도 그립습니다. 특히 에어컨을 틀지 않고 창문도 열지 않은 상태에서 대기 시간 동안 햇살에 그대로 노출되는 버스에 앉아 있어 보니 쓰러진 선수의 심정이 이해가 갑니다.

워낙 ‘찜통버스’의 악명이 워낙 높아서일까요. 취재진 및 관계자용 셔틀버스 이용률은 현저하게 낮습니다. 기자가 탄 버스에서 이용객이 5명을 넘는 것을 본 적이 없습니다. 이용객이 혼자였던 경우도 꽤 있습니다. 어제 레쟁발리드에서 MPC까지 복귀하는 버스에도 이용객은 저 혼자였습니다. 이는 아무도 태우지 않은 버스가 운행될 때도 있다는 것을 의미할 겁니다. 친환경, 저탄소는 중요하죠. 하지만 아무도 타지 않은 채로 운행되는 버스가 환경엔 더 안 좋은 것 아닐까요.

파리 올림픽의 또 다른 슬로건은 ‘모두에게 열린 대회’입니다. 그럼에도 선수촌에서는 좋은 경기력을 위해선 잘 먹어야 하는 선수들에게 저탄소 정책의 일환이라며 단백질이 부족한 채식 위주로 음식을 제공해 불만이 속출하고 있습니다. 식단과 ‘찜통버스’에 괴로운 선수들, 그리고 취재진의 목소리에도 귀를 열어야 하는 것 아닐까요. 조직위원회의 유연한 대처를 기대해 봅니다.


che@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