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승태(76) 전 대법원장이 변호사 활동을 시작한 것을 놓고 말들이 많다. 법조계에 따르면 그는 아파트 공사 현장에서 근로자 2명이 사망한 사건과 관련해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대형 건설사의 변호인으로 대법원에 선임계를 냈다. 해당 사건은 1·2심에서 모두 유죄가 선고된 가운데 현재 상고심 재판이 진행 중이다. 이를 곱지 않게 보는 측에선 ‘해당 건설사가 전직 대법원장의 영향력을 앞세워 원심 파기 판결을 이끌어내려는 듯하다’는 지적을 내놓는다. 이른바 ‘전관예우’를 노린 것 아니냐는 것이다. 반면 ‘대한변호사협회에 변호사로 정식 등록하고 의뢰인을 위해 일하는 것인데 뭐가 문제인가’라는 주장도 만만찮다.
미국의 경우 전직 연방대법원장은 모두 세상을 떠났다. 생존해 있는 전직 연방대법관도 고작 3명뿐이다. 이들은 은퇴 후 연금을 받아 생활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미국에서 전직 대법원장이나 전직 대법관이 전관예우 논란에 휘말렸다는 얘기는 들은 적이 없다. 헌법에 따라 미국의 연방법원 판사는 종신 임기를 보장받는다. 일단 판사가 되면 △사망 △자진사퇴 △의회 탄핵에 의한 파면 3가지 사유가 아니면 자신이 원할 때까지 그 자리를 지킬 수 있다. 현재 생존해 있는 전직 대법관은 2018년 물러난 앤서니 케네디(88), 2009년 사임한 데이비드 수터(84), 그리고 가장 최근인 2022년 은퇴한 스티븐 브레이어(85)로 모두 80대 고령이다.
이런 미국의 사법제도는 전관예우를 차단할 수 있다는 점에서 긍정적 평가를 받곤 한다. 대다수 판사가 죽을 때까지 재판만 하니 중도에 법복을 벗고 개업해 거물 변호사로 뛰며 거액을 벌어들일 일이 없지 않느냐는 것이다. 하지만 변화하는 시대상을 제대로 반영할 수 없다는 단점도 분명히 존재한다. 현재 미국 대법원의 인적 구성은 보수 6 대 진보 3인데 이변이 없는 한 이런 구도가 최소 10년 가까이 이어질 것이다. 진보 진영 입장에선 어떤 사건이든 3 대 6으로 패소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문제는 이런 대법원의 세력 판도가 수년간 바뀔 가능성도 없다는 점이다. 미국의 진보 인사들이 지금의 사법부에 절망하는 이유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느닷없이 ‘사법개혁’ 카드를 꺼내들었다. 대법관 종신제를 폐지하고 임기제로 전환하자는 것이다. 바이든은 29일 텍사스주(州) 오스틴에서 행한 연설을 통해 대법관 임기로 18년을 제안했다. 40대 중반∼50대 초반의 법조인들이 대법관에 임명되는 것이 보통이니 65∼70세쯤 되면 은퇴하게 만들자는 것이다. 대놓고 말하진 않았지만 ‘고인 물은 썩게 마련이니 수시로 갈아주자’라는 뜻으로 풀이된다. 보수 성향 대법관들을 향해 경고의 메시지를 날린 셈이다. 다만 이는 헌법 개정이 필요한 사안으로 실현 가능성은 낮다. 연임 도전을 포기하며 레임덕에 빠져든 바이든의 사법개혁안이 어떤 운명을 맞을지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