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메달만 바라보며 달려왔는데, 또다시 ‘숙적’에게 패했다. 값진 동메달을 획득했지만, 만족하지 않는다. 다시 4년을 금메달을 바라보며 준비하겠다는 각오다. 한국 유도 대표팀의 이준환(22·용인대) 이야기다.
세계랭킹 3위 이준환은 30일(현지시간) 프랑스 파리의 아레나 샹드마르스에서 열린 2024 파리 올림픽 유도 남자 81kg급 동메달 결정전에서 연장 혈투 끝에 세계랭킹 1위 마티아스 카세(벨기에)에게 안뒤축후리기 절반승을 따냈다. 생애 첫 올림픽에서 메달 획득이다. 한국 유도로서는 전날 허미미(21·경북체육회)의 여자 57㎏급 은메달에 이어 두 번째 메달이다.
이준환은 앞선 4강전에서 정규시간(4분)의 두 배인 8분7초 동안 혈투를 벌였음에도 동메달 결정전에서 체력 싸움에서 전혀 밀리지 않았다. 평소에 얼마나 체력훈련을 공들였는지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었다.
경기 초반 상대 카세는 뒤로 누우면서 이준환을 넘기려는 공격을 자주 펼쳤고, 이준환은 이를 잘 막아냈다. 경기 시작 1분이 지났을 때 이준환은 기습 업어치기로 상대의 두 발을 공중에까지 띄웠으나 아쉽게 넘기진 못했다. 이후 경기는 체력전 양상이었다. 지도를 하나씩 주고받은 두 선수는 정규시간(4분) 동안 승부를 가리지 못하고 연장전(골든스코어)에 접어들었다.
연장전이 시작하자마자 이준환은 상대 기습에 엉덩방아를 찧으며 득점을 내줄 뻔했다. 위기를 넘기자 기회가 찾아왔고 이준환은 놓치지 않았다. 카세는 연장전 시작 48초에 메치기를 시도했고 이준환은 빈틈을 노려 발을 걸어 절반을 따내며 승리를 확정 지었다.
경기 뒤 공동취재구역에 들어선 이준환의 표정은 그리 밝지 않았다. 동메달을 따낸 순간 오열했던 이준환은 ‘기쁨의 눈물’이 아닌 ‘아쉬움의 눈물’이었다고 털어놨다. 그는 “금메달을 목표로 평생 열심히 훈련해왔다. 이날만을 위해 준비했다. 그런 과정들이 떠올라서 울컥한 것 같다”면서 “아직은 제 실력이 상대 선수들보다 부족해서 동메달에 그친 것 같다. 다시 열심히 해야겠다”고 각오를 다졌다.
이번에도 이준환의 발목을 잡은 것은 ‘숙적’인 세계랭킹 2위 조지아의 타토 그리갈라슈빌리였다. 2022년 6월 이준환의 첫 시니어 국제대회 데뷔전이었던 트빌리시 그랜드슬램 결승에서 그리갈라슈빌리를 만나 승리를 거두며 우승을 차지하긴 했지만, 이후로는 내리 3연패를 당했다. 지난해와 올해 세계선수권 준결승에서 모두 그리갈라슈빌리에게 패해 2년 연속 동메달에 그쳤던 이준환은 이번 올림픽에서도 4강전에서 그를 만나 연장 혈투 끝에 패한 것이다.
천적에게 또다시 패해 멘털이 무너질 법했지만, 이준환은 마음을 다잡았다. 금메달을 목표로 했지만, 만에 하나라도 패했을 때도 무너지지 않고 집중력을 유지할 수 있게 이미지 트레이닝을 많이 한 덕분이었다.
이번 파리 올림픽은 이준환에게 숙제를 남긴 대회로 기억될 전망이다. 그는 “세계선수권 때도 그리갈라슈빌리를 만나 두 번 만나 다 졌다. 그래서 올림픽을 앞두고 많이 대비하고 연구했다. 생각했던 대로 다 된 것 같았지만, 운이나 전략적인 부분이 부족했던 것 같다. 이번 올림픽을 통해 시야가 더 넓어진 것 같다”면서 “한국에 돌아가서 더 준비하겠다. 2028 로스앤젤레스 올림픽에서는 금메달을 목에 걸 수 있다면 좋겠다”고 각오를 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