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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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면 어때”… 드라마 가득한 올림픽 전사들의 아름다운 도전 [파리 2024]

요트 하지민, 불굴의 5번째 올림픽 출전
인구 13만 키리바시 대표 15세 유도소녀
한 팔 없는 브라질 탁구 알렉산드레 눈길

난민 대표팀 발시니 “난민들에 희망 주고파 참가”
춤 사랑한 김홍열, 불혹의 나이 ‘출사표’
호주 탁구 태퍼, 오른팔 장애 딛고 도전
61세 ‘할머니 탁구 도사’ 니샤렌도 눈길

올림픽 역사엔 꼭 시상대에 서는 메달리스트만 기록되는 건 아니다. 세계를 하나로 뭉치는 ‘지구촌 스포츠 축제’에 걸맞게 드라마같은 이야기로 큰 감동을 선사하는 올림피언들이 있다. 어떤 영웅은 끝없는 도전으로 박수갈채를 이끌고, 어떤 영웅은 신체적 한계를 극복하며 보는 이의 마음을 뜨겁게 만든다. 또 누군가는 인종과 출신 등 자신을 둘러싼 족쇄를 벗어던지고 희망을 전한다. 이번 2024 파리 올림픽에서도 아름다운 도전을 펼치며 올림픽을 더욱 빛나게 하는 선수들이 있다.

2024 파리 올림픽엔 각자의 사연을 품고 감동 드라마를 선사하는 올림피언들이 있다. 왼쪽부터 태평양의 작은 섬 키리바시 출신인 15살 유도 선수 네라 티브와, 5번째 올림픽 무대 도전인 한국 요트 선수 하지민, 오른팔 없는 브라질 탁구 선수 브루나 알렉산드레, 난민 대표팀의 이란 출신 마틴 발시니 모습. 세계일보 자료사진

한국 선수단 가운데서는 한국 요트의 ‘전설’ 하지민(35?해운대구청)이 이번 파리 대회까지 5회 연속 올림픽 무대에 도전하며 불굴의 의지를 보여주고 있다. 하지민은 이번 대회 출전으로 이은철, 진종오(이상 사격), 윤경신, 오성옥(이상 핸드볼) 등 종목별 전설들과 5회 연속 올림픽 출전 선수로 어깨를 나란히 했다. 국내에선 비주류 종목인 요트에 흠뻑 빠져 19세였던 2008년 베이징 대회를 시작으로 이번 파리까지 파도를 가르고 있다. 아시안게임 3회 우승자인 하지민은 올림픽에선 최고 성적이 2020 도쿄 대회 7위로 메달과 거리가 멀었다.

 

첫 올림픽 메달을 노리는 하지민이 출전하는 남자 요트 레이저급 경기는 1일(한국시간) 지중해 물살을 누빈다. 하지민은 “경기에서 노력하고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도 일종의 사회적 기여라고 생각한다. 이번 올림픽에서 최선을 다하는 모습으로 다음 세대에게 영감을 주고 싶다”고 포부를 전했다.

 

‘불혹의 댄서’ 김홍열(40?활동명 홍텐)은 평생 ‘하위문화’였던 춤으로 올림픽 무대까지 선다.

‘비보잉’이란 이름의 길거리 댄스로 출발해 이제는 하나의 문화로 자리매김한 브레이킹이 마침내 정식 스포츠로 인정받은 덕이다. 적잖은 나이에도 정상급 기량을 유지하고 있어 첫 금메달 후보로 꼽히는 김홍열은 성적을 떠나 즐거운 추억을 쌓은 채 커리어를 마무리하기 위해 과감하게 출사표를 던졌다.

 

이름도 생소한 먼 타지에서 건너와 세계적 도시 파리에서 펼쳐지는 올림픽 출전만으로도 행복한 선수들도 있다. 인구 13만명의 키리바시 출신인 15살 소녀 네라 티브와는 올림픽 참가를 위해 태평양의 작은 섬나라에서 1만4000㎞를 날아왔다. 직항편도 없어 항공기 환승을 해가며 도착하는 데만 하루 이상 걸렸다. 이번 대회 최연소 유도 선수인 티브와는 지난 29일 여자 유도 57㎏급 1회전에서 다리야 빌로디드(우크라이나)에게 경기 시작 불과 5초 만에 한판으로 패배의 쓴맛을 봤다. 긴 여정에 비해 도전은 싱겁게 끝났지만, 티브와는 평생 잊을 수 없는 추억을 가져간다. 이번 대회 개회식에서 조국을 대표해 키리바시 선수단 기수를 들고 파리 센강을 가로 지르는 뜻깊은 시간을 보냈기 때문이다.

 

참가가 행복한 선수는 또 있다. 난민 대표팀의 이란 출신 마틴 발시니(23)는 수영 남자 접영 200에 출전했지만 예선 탈락했다. 출전 선수 28명 가운데 27위였다. 아프리카, 아메리카, 아시아 대륙 11개 국가 출신으로 난민 지위를 인정받은 선수들로 구성된 올림픽 난민대표팀의 일원인 발시니는 “다른 사람들, 특히 난민들에게 희망을 주고 싶다”며 참가한 이유를 밝혔다.

 

세계 최강인 한국 남자 양궁의 ‘간판’ 김우진(32·청주시청)과 지난 30일 맞붙어 0-6으로 패배한 아프리카 최빈국 차드의 이스라엘 마다예(35) 이야기도 화제다. 차드는 과거 프랑스 식민지로 아프리카 최빈국 중 하나다. 이번 올림픽 선수단 규모도 세 명뿐이다. 마다예는 김우진과 경기 중 긴장한 탓인지 2세트 막판 단 1점을 쐈는데, 그의 사연을 알게 된 네티즌들은 응원과 찬사를 보냈다.

호주 탁구 선수 멜리사 태퍼가 2024 파리 올림픽 탁구 여자 단식 64강전에서 한국의 신유빈을 상대로 경기하는 모습. AP연합뉴스

불편한 몸으로도 어떤 ‘핸디캡’ 없이 맞서는 선수들의 사연도 큰 감동을 준다. 호주 탁구 선수인 멜리사 태퍼(34)는 오른팔을 제대로 사용할 수 없는 장애를 갖고 있지만, 왼손 타법으로 벌써 세 번째 올림픽 무대에 나섰다. 여자 단식 64강전에서 한국의 신유빈에게 무릎을 꿇은 태퍼는 출생 과정에서 오른쪽 목과 어깨 사이의 신경이 끊어져 장애를 갖게 돼 오른팔에 보호대를 찬 채로 경기에 출전했다.

 

브라질 탁구 선수인 브루나 알렉산드레(29)는 오른팔이 없다. 생후 3개월 때 백신으로 인한 혈전증으로 팔을 잃었다. 왼팔로 탁구채를 잡은 알렉산드레는 장애인 선수들이 참여하는 패럴림픽에선 메달을 4개나 휩쓸었다. 이런 그는 처음으로 하계올림픽 무대를 밟으면서 브라질 최초로 올림픽과 패럴림픽에 나선 선수가 됐다.

 

이 외에도 사우디아라비아 여성 최초의 메달리스트를 꿈꾸는 태권도 선수 두냐 알리 아부탈렙, 10대 선수들이 묘기를 부리는 스케이트보드 종목에 도전하는 30대 ‘아저씨’ 슬로바키아의 리처드 투리, 만 61세 ‘할머니 탁구 도사’ 룩셈부르크의 니샤렌 등도 눈길을 끈다. 세계 1위 쑨잉사(중국)와 여자 단식 32강전서 패배한 니샤렌은 6번째 올림픽 무대를 웃으면서 마무리했다.


파리=남정훈 기자, 장한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