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메뉴 보기 검색

출판대국 日마저 “서점 멸종될라”… 복합공간 변신 잰걸음 [세계는 지금]

오프라인 서점 생존 몸부림

전국 기초지자체 4곳 중 1곳 서점 없어
종이책 독자 줄며 경영난, 잇따라 폐업
1년 동안 최대 1000곳 넘게 문 닫기도
전자책 성장 불구 독서인구 자체 감소

고객 유입 위해 쇼핑몰·갤러리 등 결합
재고 통합검색 도입·공동 판촉 행사도
日정부는 ‘서점 진흥 프로젝트팀’ 가동
디지털 기술 지원·유통망 개선 팔걷어

일본 도쿄 신주쿠의 한 동네서점은 지난달 30일 오후 11시가 넘은 시간에도 불이 환하게 켜져 있었다. 매장 안에는 직원이 보이지 않았다. 오후 8시가 넘으면 서점은 바코드 인증으로 출입하는 무인매장으로 바뀐다.

 

지난 7월 30일 일본 도쿄 지요다구 진보초의 고서점거리에서 사람들이 진열된 책을 보고 있다. 서점을 찾지 않는 상황이 날이 갈수록 심각해지면서 일본 서점들의 위기의식이 깊어지고 있다.

“서점을 찾는 손님이 많이 줄었잖아요. 조금이라도 매출을 올릴 수 있을까해서 (야간 무인매장을) 시작했습니다.”

50대 서점 직원의 말은 서점을 찾는 손님들이 점점 줄어드는 현실과 이런 위기를 벗어나기 위한 활로를 찾아야 한다는 일본 출판계의 고민이 담겨 있다. 출판대국을 자부해 온 일본의 ‘서점 이탈’이 심각하다. 종이책은 여전히 독서문화의 중심이지만 위상은 예전만 못하고, 덩달아 서점 경영이 어려워지면서 오프라인 서점의 소멸을 걱정하는 목소리까지 나오고 있다.

‘종이책은 소중하니 지켜달라’는 당위적인 호소만으로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인식이 확산하면서 서점은 다양한 시도로 위기 극복을 모색하는 중이다. 일본 정부는 “멸종위기종이 되기 전에 (서점 지원을) 추진해 갈 것”(사이토 다케시 경제산업상)이라며 지난달 각의(내각)에서 결정한 올해 정부 운영 방침(경제재정운영과 개혁의 기본방침)에 문화, 활자 문화의 진흥과 서점 활성화를 주요 내용으로 반영했다.

 

◆“서점이 사라져 간다.”

“서점을 죽인 범인”

지난 5월 발매된 ‘2028년 거리에서 서점이 사라지는 날’이란 제목의 책에 등장하는 문구다. 서점 위기의 원인이 무엇인가를 자문하며 사용한 이 표현은 일본 출판계의 깊은 고민을 대변한다. ‘르포 서점위기’, ‘거리의 서점이 사라져 간다’, ‘고집 센 10명의 서점’, ‘출판업계의 개혁 고찰’ 등 같은 문제의식을 가지고 타개책을 모색하는 책의 출간이 이어지고 있다. 위기감이 그만큼 크다는 의미다.

악화일로의 현실은 숫자로 확인할 수 있다. 일본출판인프라센터가 지난 4월 발표한 자료를 보면 서점 감소가 뚜렷하다. 2013년 1만5602곳이었으나 해마다 줄어들어 지난해 3월에는 1만918곳이었다. 같은 기간 한 해에 문을 닫는 서점은 많을 때는 1000곳(2014년 1176곳)를 넘었다. 반면 새로 생긴 서점은 많아야 300곳(2013년 295곳)에 미치지 못했다. 서점 감소는 지방의 기초 지방자치단체에서 두드러져 4곳 중 1곳 이상이 ‘서점 제로’다. 일본 출판문화산업진흥재단(JPIC) 조사에 따르면 2022년 9월 기준 일본 전국 기초지자체 1741곳 중 456곳(26.2%)에 서점이 없다. 광역지자체인 도·도·부·현 별로 분류하면 오키나와현(56.1%), 나가노현(51.9%), 나라현(51.3%) 세 곳에서 서점 제로 기초지자체가 절반을 넘었다. 아사히신문은 “조사 방법이 달라 단순 비교할 수는 없지만 2017년에 조사 당시에는 (서점 없는 기초지자체 비율이) 22.2%였다”고 전했다.

독자와 연결하는 통로가 줄어들면서 매출도 감소했다. 출판과학연구소는 지난달 25일 올해 상반기 종이책 매출이 5205억엔(약 4조6700억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5482억엔)에 비해 5% 감소했다는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전자책 매출은 6.1% 상승한 2697억엔(약 2조4200억원)으로 집계됐다. 2019년 이후 종이책 시장의 축소, 전자책 시장의 확대 경향은 뚜렷하다. 서점 위기는 인터넷 서점 활성화, 전자책 독서 인구 증가에서 비롯된다는 분석이 강하다. 독서인구 자체가 줄어들고 있는 것도 빼놓을 수 없는 요인이다. 시장조사전문기업 크로스마켓팅의 지난해 독서 실태 조사결과에 따르면 6개월 동안 한 권도 읽지 않았다는 대답이 47.9%에 달했다. 한 권 정도(10.4%)라는 대답과 합치면 절반을 훌쩍 넘는다.

 

◆복합문화공간으로 탈바꿈하는 서점

도쿄 시부야구 다이칸야마 쓰타야서점은 책 뿐만 아니라 의류, 액세서리, 안경, 문방구, 커피, 식기류 등 다양한 물건을 판매한다. 일본주, 와인 매장도 있다. 판매하는 물건과 관련된 주제의 책을 가까이에 배치해 주목도를 높인 것도 눈에 띈다. 책 이외의 것을 파는 한국 대형서점과 비교하면 책과 다른 물건 매장의 결합이 명확하고, 판매하는 물건도 다양하다. 서점이 아니라 고급스런 쇼핑몰이라고 해도 무방한 인상이다.

중고책 서점이 몰려 있는 진보초 고서점거리의 ‘진보초 북센터’도 비슷하다. 입구에 커피숍이 있고 매장 절반 정도를 쇼파로 채워 서점과 커피숍의 경계가 모호하다. 2000엔(약 1만7000원) 정도를 내면 책을 읽거나 업무를 볼 수 있는 공간이 따로 있다.

 

쓰타야서점, 진보초 북센터는 위기를 타개하기 위한 일본 서점의 대표적인 변화를 보여준다. 책을 파는 곳으로 한정하지 않는 서점이 늘고 있다. 커피숍, 갤러리, 쇼핑몰, 강연장 등의 기능을 가진 복합문화공간으로의 지향을 숨기지 않는다. 고객 친화적 유통망 구축 움직임도 주목된다. JPIC는 지난 6월 ‘서점재고 횡단검색 시스템’을 공개했다. 찾는 책이 방문하기 편한 어느 서점에 있는 지를 검색할 수 있다. JPIC는 “서점 재고정보가 오픈돼 스마트폰으로 현재 있는 곳 주변의 서점 재고를 검색할 수 있도록 되면 독자들이 편리하고 서점도 새로운 고객을 유치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기노쿠니야 서점, 쓰타야 서점, 규슈 북부에 근거지를 둔 세키분칸 서점은 공동으로 선정한 책을 동시에 판촉하는 이벤트를 7개 현 107개 점포에서 실시 중이다. 중개업체가 끼는 종전 방식을 탈피해 서점과 출판사가 직접 거래한다. ‘서점 제로’ 지자체에서 주민들이 나서 서점을 새로 유치한 사례는 서점에 대한 강력한 욕구가 여전하다는 점을 보여준다. 문부과학성에 따르면 홋카이도 루모이시 주민들은 2010년 12월 시 유일의 서점이 폐점하자 이듬해 봄부터 서점 유치 운동을 벌였다. 서점 회원 모집에 주력한 것이 주효해 산세도서점이 같은해 문을 열었다. 인구 30만명당 점포 1개가 원칙인 산세도서점이 인구 2만 명인 루모이시에 매장을 여는 건 이례적이었다. 주민들은 서점이 새로 생긴 것에 머물지 않고 ‘산세도서점 응원대’를 결성하고 지역도서관과 연계해 서점 운영을 돕고 있다.

 

지난 7월 19일 도쿄 시부야구 다이칸야마 쓰타야서점 앞을 사람들이 지나가고 있다. 쓰타야서점에는 커퍼숍, 의류점, 액세서리 판매점 등이 입점해 있어 쇼핑몰 같은 인상도 풍긴다.

일본 정부도 적극적으로 서점 살리기에 나서고 있다. 문화 기반인 활자와 책을 폭넓게 접할 수 있는 거점이 서점이라는 인식이 정책 지원의 바탕이다. 서점 유무에 따라 발생하는 지역간 문화적 격차를 해소하기 위한 차원에서도 관련 정책을 적극 추진중이다. 지난 3월 경제산업상 직속의 ‘서점진흥 프로젝트팀’이 설치돼 서점 지원을 위한 대책 마련에 나섰다. 영화, 음악 등 예술을 담당하는 콘텐츠산업과가 주도적인 역할을 하지만 소기업 지원 담당 등 다양한 부서가 참여한다.

프로젝트팀은 지난 4개월간 서점·출판업계의 의견을 듣는 한편 비효율적 유통망 개선, 점포 운영 관련 디지털 기술 도입 등 다양한 지원책을 추진 중이다. 사이토 겐(齋藤健) 경제산업상은 프로젝트팀 출범 당시 “서점은 창조성이 육성되는 문화 기반이라는 점에서 중요하지만, 최근 격감해 위기감을 갖고 있다”며 “(서점을) 부흥시킬 것”이라고 말했다.

요미우리신문은 “정부는 상품이나 서비스가 해외 경쟁에서 이기려면 문화를 통한 새로운 부가가치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보고 있다”며 “책을 접할 수 있는 환경이 부족하면 새롭고 매력적인 문화 콘텐츠를 만들기 어렵다는 인식에 따라 서점 지원에 나서고 있다”고 짚었다.


도쿄=글·사진 강구열 특파원 river910@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