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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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대통령 “딱 한 문장만… 폴란드 국민에 용서 구한다”

바르샤바 봉기 80주년 추모식 열려
나치 독일에 폴란드인 20만 희생돼

“한 문장만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바로 오늘, 이 자리에서 용서를 구합니다.”

 

7월31일(현지시간) 폴란드 수도 바르샤바의 크라신스키 광장. 이웃나라 독일의 프랑크발터 슈타인마이어 대통령이 폴란드 국민들에게 고개 숙여 사과했다. 제2차 세계대전 도중인 1944년 8월1일 나치 독일을 몰아내기 위해 바르샤바 시민들이 일으킨 봉기를 독일군이 참혹하게 진압한 데 대한 반성이다.

 

7월31일(현지시간) 폴란드 바르샤바에서 열린 제2차 세계대전 도중의 ‘바르샤바 봉기’ 80주년 추모식에 참석한 프랑크발터 슈타인마이어 독일 대통령이 추모사를 하기 위해 단상으로 이동하며 침통한 표정을 짓고 있다. AFP연합뉴스

이날 크라신스키 광장에선 바르샤바 봉기 80주년을 맞아 폴란드 정부가 주최한 공식 추모식이 열렸다. 현직 독일 국가원수가 이 행사에 직접 참석한 것은 올해가 두 번째다.

 

슈타인마이어 대통령은 “바르샤바 봉기는 폴란드와 독일 민족이 공유한 오랜 역사 중 가장 잔인한 시기였다”며 “폴란드 역사에서 가장 영웅적인 시기이기도 하다”라는 말로 운을 뗐다. 이어 “전사들의 용기, 죽음을 무릅쓴 각오, 자유를 향한 무조건적 의지, 존엄을 지키기 위한 노력에 최대한의 경의를 표한다”고 덧붙였다.

 

과거사에 대한 진정성 있는 사죄도 잊지 않았다. 슈타인마이어 대통령은 “1939년 9월1일 독일군이 폴란드를 침공한 이후 이웃나라에 얼마나 헤아릴 수 없는 고통을 줬는지, 전 국민에게 어떤 잔인함과 절멸 의도를 갖고 과오를 저질렀는지 우리 독일인은 잊을 수 없고 잊어서도 안 된다”고 강조한 뒤 폴란드 국민들을 향해 “용서를 구한다”고 했다.

 

2차대전 초반인 1939년 나치 독일이 폴란드를 점령한 뒤에도 폴란드 국내에선 독일에 저항하는 레지스탕스 운동이 끊임없이 이어졌다. 그러던 중 1944년 6월 미군, 영국군, 캐나다군 등으로 구성된 연합군이 프랑스 노르망디 해안에 상륙했다는 낭보가 전해졌다. 연합국에 의한 나치 독일의 패배가 임박한 것이다.

 

그러자 나치 독일의 감시를 피해 지하에서 활동하던 폴란드 독립군이 새로운 작전을 들고 나왔다. 바르샤바에서 무장 봉기를 일으켜 나치 독일을 몰아내자는 것이다. 이는 동부전선에서 연일 독일군을 격파하며 폴란드 쪽으로 진격하던 소련(현 러시아) 군대를 의식한 측면도 있었다. 소련군이 폴란드에 진입하기 전 스스로 해방을 달성해야 한다는 것이다. 당시 영국 런던에 있던 폴란드 망명정부가 모든 작전을 주도했다.

 

7월31일(현지시간) 폴란드 바르샤바에서 열린 제2차 세계대전 도중의 ‘바르샤바 봉기’ 80주년 추모식에서 안제이 두다 폴란드 대통령이 추모사를 하고 있다. EPA연합뉴스

1944년 8월1일을 기해 시작된 바르샤바 봉기는 곧 난관에 봉착했다. 독일군은 서부전선에서 미군, 영국군 등에 밀려 고전하고 있었으나 폴란드에서만큼은 아직 강한 힘을 갖고 있었다. 독일군은 재빨리 반격에 나섰고 무기와 식량이 부족했던 폴란드 독립군은 민가로 숨어들었다. 봉기에 대한 보복으로 독일군은 무장투쟁에 나선 독립군은 물론 그들을 도운 민간인까지 닥치는대로 학살했다. 1944년 10월2일 봉기가 완전히 진압될 때까지 독립군 약 1만8000명과 민간인 18만명이 나치 독일에 의해 목숨을 잃었다. 시내 건물의 4분의 1가량이 파괴되는 등 바르샤바는 폐허가 되었다.

 

추모식을 주관한 안제이 두다 폴란드 대통령은 “(2차대전 기간) 폴란드는 지도에선 사라졌지만, 우리 마음속에선 사라지지 않았음을 입증하기 위해 싸웠다”며 “바르샤바 봉기는 오늘날 폴란드를 존재하게 한 마지막 위대한 저항”이라고 높이 평가했다. 폴란드는 이번 주 내내 바르샤바 시내 곳곳에서 기념식을 열고 나치 독일에 희생된 20만명 가까운 폴란드 국민들의 넋을 기린다.


김태훈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