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고된 쿠데타, 8월 종파사건/ 김재웅/ 푸른역사/ 3만3000원
‘8월 종파사건’?
대부분이 이를 모른다. 어쩌다 들어본 적이 있다 하더라도 ‘권력 장악을 둘러싼 북한의 계파 간 갈등’쯤으로만 생각한다. 왜 발생했는지, 어떻게 전개되고, 결과가 어떠했는지에 대해서는 아는 바 없다. 북한의 이 내분 사태는 체제 발족 이래 김일성과 조선노동당 지도부가 공개적으로 비판받은 유일무이한 사건이었다. 지도자가 절대권력을 행사해 온 북한에서 권력에 도전한 사건이 일어났다는 것은 그 자체만으로도 연구할 가치가 있다.
북한사를 전공한 저자는 “1960년 4·19의거가 민주화 물꼬를 트면서 ‘대한민국’의 토대를 일궈냈듯, ‘8월 종파사건’은 북한의 유일 체제가 확립되는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고 정리한다. 남북대립의 분단시대 역사에서 크나큰 분수령이 되었다는 의미다. 북한의 기원과 현황을 파악하기 위해서는 ‘8월 종파사건’을 들여다봐야 한다.
1956년 8월 30일 개막한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전원회의를 전후해 북한 지도층 내에서 벌어진 이 사건은 단순한 권력투쟁이 아니다. 학계에서는 경제노선을 둘러싼 갈등이 불러온 분파투쟁으로 바라보는 경향이 있었다. 그러나 저자는 김일성 개인숭배, 실무능력을 고려하지 않은 간부 선발정책, 당내 민주주의와 집단지도체제 와해, 민족해방운동사를 김일성의 항일투쟁사로 대체한 역사관 등 복합적 원인이 뒤얽혀 있었다고 진단한다. 따라서 이 사건을 북한 내부에서 태동한 ‘민주화를 향한 몸부림’이라는 의미를 부여해 ‘8월 사건’ 또는 ‘8월 전원회의 사건’이라 부르자고 제안한다.
‘종파’는 북한체제 출범 직후부터 김일성이 경쟁자들에게 씌운 낙인이었다. 오기섭, 허가이, 박일우, 최창익 등이 그 오명을 뒤집어쓴 대표적 인사들이었다. 북한체제의 형성 과정에서 두각을 나타낸 유능한 정치인들이자 신망 높은 간부들이었던 그들은 모두 ‘종파행위’를 저질렀다는 혐의를 받고 숙청되었다. 곧 ‘종파’는 김일성이 정적을 제거하기 위해 씌운 전통적 프레임으로서 철저히 권력투쟁 승자의 관점에서 고안된 용어였다.
저자는 역사의 큰 흐름을 살피면서도, 당시 주소련 북한대사 이상조가 남긴 자료를 바탕으로 사건의 추이를 세밀하게 추적한다. 이를테면 흐루쇼프의 스탈린 비판 연설, 폴란드의 포즈난 폭동 등 잇따라 일어난 일련의 동유럽 사태, 중소분쟁 등 국제 사태가 이 사건의 추이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살피는 ‘망원경식’ 조망이 그 하나다. 이로써 김일성이 스탈린주의 비판을 어떻게 피해 갔는지, 당초 공동대표단을 파견해 김일성 견제에 나섰던 중국과 소련이 나중에는 왜 북한 망명객들을 외면하기에 이르렀는지를 설명한다.
그런가 하면 사건의 내밀한 전개를 촘촘히 뜯어보는 ‘현미경식’ 서술도 놓치지 않는다. 비판세력이 힘들게 설복한 최용건이 사건 주역 중 한 명인 윤공흠의 전원회의 발언을 빌미로 ‘변심’한 대목이 그 예다. 이상조의 기록 덕분에 이제까지 알려지지 않았던 권력투쟁의 이면이 생생하게 드러난다.
‘이상조는 연안 종파로 지목된 자신과 동지들을 다음과 같이 변호했다. “그들이 죽음을 무릅쓰고 김일성 동지와 아첨분자들을 비판한 행위는 오로지 당의 이익을 위해서였을 뿐, 결코 당내 수령이나 내각 수상직을 탐내 일으킨 행동이 아니었다.” 그는 모든 당원은 이유와 근거가 있는 한 어떠한 직위의 간부도 비판할 수 있다는 당 규약을 거론하며, 당 지도부를 비판한 동지들의 행위가 합법적이었다고 역설했다. ··· 비판세력의 도전이 실패한 결정적 원인은 소련의 태도 변화에 있었다. 그들은 처음부터 소련의 지지를 등에 업어야만 승산이 있다고 보았다. ··· 그러나 동유럽 사태의 심각성에 위기의식을 느낀 소련이 그(김일성)를 지지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아가자 전세는 단번에 역전되었다.’(336, 337쪽)
‘9월 20일 ··· 김일성은 일시적 분노에 사로잡혀 신중한 고려 없이, 최창익 일파에게 과중한 책벌을 부과했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는 ··· 건의를 받아들여 8월 전원회의 결정을 재심사해, 책벌을 받은 동지들에게 관용을 베풀자고 제안했다.’(371쪽)
진지하되 전혀 딱딱하지 않다는 점은 이 책의 또 다른 매력이다. 600쪽을 가뿐히 넘기게 하는 힘으로 작용한다. 가히 역사와 서사의 행복한 만남이라 할 만한 이야기를 곳곳에 배치해 놓았다. “김일성 초상화가 실린 신문으로 책을 싼 이들이 처벌받았다”(130쪽)는 대목, 김일성이 집체적 지도에 대해 “집체적 영도도 별것 없어! 어디 말하는 사람이 있어야지!”(202쪽)라고 평했다는 에피소드도 그러하다. 이 같은 ‘이야기’는 제4부 ‘공멸의 길’에서 사건 주역들이 후일담을 들려줄 때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허정숙이 “종래의 여걸다운 모습을 잃고 당과 국가가 제공해 준 특혜가 끊어지지 않을까 걱정한 나머지” 사건의 리더인 전 남편 최창익 비판에 나선 부분(459쪽)은 안타까움을 자아낸다. 또한 비판세력에 협조적이었던 김두봉이 실각한 뒤, 젊은 아내와 향락에 빠져 지방 당 간부에게 “해구신을 구해 달라” 지시했다든지 황진이 묘소에 참배하며 “세상에서 제일 가는 여걸”이란 반혁명적 언사를 했다는 등 추문이 돌았다(501쪽)는 내용에선 씁쓸한 세태를 실감케 한다.
책은 북한사 대중화의 탁월한 성취라 해도 지나침이 없다. 북한사의 흐름을 따라가면서, 읽는 재미 또한 놓치지 않기 때문이다. “일단 펼치면 쉽게 덮을 수 없다”고 평가받는 이유다. 마치 16부작 드라마를 보는 것만 같다. 한여름 무더위와 맞짱 뜰 만한 흥미로운 역사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