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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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탄소 올림픽’ 에어컨도 안 켠다?…채식 중심 식단에 선수들은 죽을 맛 [미드나잇 이슈]

파리올림픽 폭염 우려 현실화… 조직위 뒷북 대응
점점 더워지는 유럽… 에어컨 보급률은 19% 불과
무조건 저탄소 아닌 ‘RE100’ 등 대안 마련했어야

2024 파리올림픽을 앞두고 제기됐던 폭염 우려가 현실화하고 있다. 더위를 호소하는 사람이 많아지고 ‘찜통 버스’에 불만도 커지자 올림픽 조직위원회는 한발 물러서 셔틀버스를 추가 투입하는 등 조치를 취했다. 그럼에도 한여름 더위를 달래기엔 역부족이라는 우려가 여전하다. ‘저탄소 올림픽’이라는 목적은 좋지만 대회 운영에서 선수 및 관중의 수용성까지 배려가 부족했고 다른 대안을 충분히 고려하지 못했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했다.

 

30일(현지시간) 프랑스 파리 레쟁발리드에 설치된 양궁 경기장 앞에서 관람객들이 쿨링포그 앞에 서 있다. 파리=연합뉴스

◆프랑스 폭염 본격화…‘가장 더운 올림픽’ 목소리 커져

 

지난달 29일(현지시간) 프랑스 45개 지역에 올해 첫 폭염주의보가 발효됐다. 프랑스 매체 리베라시옹은 현지 기상청 예보관을 인용해 이번 폭염이 다음주 중반까지 지속될 수 있다는 전망을 전했다. 축구(니스·마르세유)와 세일링(마르세유) 경기가 개최되는 남프랑스는 이미 인근 지역 최고기온이 40도를 넘어선 상황이라고 보도됐다. 

 

폭염주의보가 발표되기 전까지 올림픽 초반 파리는 낮 최고기온이 30도를 넘지 않는 정도로 비교적 선선했다. 그러나 탄소 배출을 줄이겠다며 숙소뿐 아니라 셔틀버스에서도 에어컨을 틀지 않으면서 선수단에서부터 더위로 불만이 터져나왔다. 버스에 많은 사람이 몰리고 창문은 못 열게 막아둬 버스 안이 찜통이라는 것이다. 한국 수영 국가대표 김우민(22·강원도청)은 지난 25일 훈련이 끝난 뒤 “버스가 너무 덥다”며 “창문도 못 열게 막아놨다”고 불편을 전했다.

 

결국 에티엔느 토부아 조직위원장이 지난달 29일 기자회견에서 “운영 초기에, 특히 대회가 시작되기 전 선수들 이동과 관련한 문제가 있었다”며 “선수들에게 최선의 방법을 제공하기 위해 예비버스를 제공하는 조치를 취했고 이제는 그 시스템이 완벽하게 작동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같이 더위로 끊임없이 문제가 제기되는 배경에는 파리올림픽이 저탄소 올림픽을 지향하며 실내 냉방을 최소화하는 데 있다. 올림픽 탄소발자국을 줄이기 위해 프랑스는 새 경기장 건설을 2곳으로 최소화하고 나머지 경기장은 기존 시설이나 장소를 활용했다. 숙소와 셔틀버스에 에어컨을 설치하지 않고 선수촌에 마련한 침대는 골판지로 만들었으며 선수들 식단도 음식을 준비하는 전 과정상 탄소 배출이 육식보다 적은 채식 위주로 구성했다.

 

◆유럽 여름, 전처럼 시원하지 않은데…“막아서만 될 일 아냐”

 

문제는 유럽의 여름이 점점 더워지고 있다는 점이다. 국제에너지기구(IEA)에 따르면 2022년 기준 전 지역 에어컨 보급률이 19%에 불과할 만큼 유럽은 에어컨 수요가 높지 않았고 과거에는 한여름 폭염일도 7∼8월 중 며칠 수준으로 많지 않았다. 그러나 최근 들어 유럽도 폭염이 극심해졌다. 다국적 기후 연구자 모임 ‘세계기상특성(WWA)’ 공동 창립자인 기상학자 프리데리케 오토는 지난달 31일(현지시간) 지중해 국가 7월 폭염 연구 결과를 발표하며 “기후변화로 올림픽이 망가졌다”며 “대기가 화석연료 연소로 인한 배출물로 과부하되지 않았다면 파리는 약 3도 더 시원했을 것이고 스포츠를 하기에 훨씬 안전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탄소배출량을 줄인다는 취지 자체는 좋아도 조직위가 참가자들을 섬세하게 배려하는 태도는 미흡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윤순진 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는 “대규모 행사를 주최하면 건축자재 운송부터 건설 과정에 투입되는 에너지, 이후 운영·관리까지 건축물로 배출되는 온실가스가 많은데 이를 최소화한 것은 바람직하다”며 “육식단보다 탄소배출이 적은 채식단을 제공하고, 플라스틱 사용을 줄인 것 또한 국제대회에서 주목할 만한 의미있는 시도”라고 높이 평가했다.

 

다만 일방적인 냉방 억제나 선택권을 보장하지 않은 식단은 부적절했다고 밝혔다. 윤 교수는 “우리나라만큼 덥지 않던 유럽도 최근에는 폭염이 심한데 사람들이 힘들어할 만큼 냉방을 무조건 안 하면 선수들이 기량을 발휘하기 어렵고 비효율적”이라며 “식단도 육식과 채식, 대체단백질을 같이 제공했다면 반발을 줄였을 텐데 선택 여지가 없는 채식 식단은 사람들에게 수용되기 쉽지 않다”고 꼬집었다. 

 

30일(현지시간) 프랑스 파리 레쟁발리드에 설치된 양궁 경기장 앞에서 관람객들이 더위를 식히기 위해 모자를 물에 담그고 있다. 파리=AP연합뉴스

◆“기후친화적인 스포츠 행사, 그래도 가능하고 해야 해”

 

윤 교수는 무조건적인 저탄소 올림픽이 아니라 ‘RE100 올림픽’을 지향했어도 충분히 기후 친화적이라는 가치를 지킬 수 있었을 것이라고 제시했다. RE100은 재생에너지로 만들어진 전기만 사용해 발전 과정에서 탄소 배출을 없애자는 캠페인이다. 그는 “에어컨을 아예 가동하지 않는 올림픽보다 ‘RE100 올림픽’을 표방해 재생에너지 전기로 냉방을 했어도 친환경을 원하는 사람의 지지와 호응을 끌어냈을 것”이라며 “파리올림픽의 친기후적 노력은 의미 있지만 ‘친환경은 어렵고 힘들고 구질구질하다’고 생각하지 않게, 충분히 할 만하다고 느끼고 폭력적이지 않게 선택지를 점점 넓혀가는 대안도 있었다”고 조언했다.

 

파리올림픽으로 배출되는 온실가스는 프랑스 배출량으로 산정되게 된다. 파리올림픽 조직위는 유럽의 2030 국가온실가스감축목표(NDC) 및 2050탄소중립 목표 등을 고려해 올림픽 배출량 목표를 175만t으로 과감하게 설정했다. 가장 친환경적 올림픽이라고 할 만한 2012 런던올림픽, 2016 리우데자네이루올림픽의 350만t보다 훨씬 적다.

 

박진희 동국대 다르마칼리지 교수는 “최근 유럽 기온 상승을 고려해 선수촌 설계 시 공조설비 강화 등을 더 고려했다면 탄소 배출 절감과 쾌적한 거주가 모두 가능했을 것이라는 아쉬움이 있다”며 “육류 식단을 반드시 필요로 하는 선수를 충분히 고려하지 못한 것으로 보여 탄소배출량 175만t 목표 달성과 올림픽의 특성을 동일한 수준에서 고려했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스포츠대회뿐 아니라 대형 국제행사에서 변화는 필수적이라고 강조했다. 박 교수는 “세계 스포츠 행사와 각종 국제대회 배출량 절감 없이 2050년 탄소중립은 힘들다”며 “이제는 대회 조직위도 행사 준비만 아니라 전 과정상 온실가스량을 추정하고 대회 본래 취지와 어긋나지 않게 배출량을 어떻게 줄일지 세밀한 고민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박유빈 기자 yb@segye.com